갈등없이 발전없다[수사연구 2003.1.]

지역내일 2004-04-18
갈등없이 발전없다.

경찰수사권독립 논의가 한창이다.
언제나처럼 경찰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검찰이 이에 대응하는 식이다.

지난 1999년에도 경찰은 오랜 세월 한 맺힌 염원으로 계속되어 온 이 문제를 모처럼 공개적으로 추진하였고 검찰은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내려 하였다.
한창 논의가 무르익어 갈 즈음, 언론은 이 문제를 흥미위주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다룬 측면이 없지 않았고 양 기관의 싸움은 다소 자극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 시점에 언론은 특장인 양비론의 입장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니 이전투구를 그만 두라''며 대안제시의 부담을 털어내고 모두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보도하여 안타깝게도 해묵은 이 문제는 바야흐로 공론화의 열린 광장으로 나오기 직전 다시 수면하로 잠복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검찰은 결과적으로 방어에 성공하게 되었고 경찰은 상처만 입은 채 한편으로 허무한 마음을 달래며 분을 삭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흥미위주의 ''싸움붙이기식'' 언론보도는 반복되었고 거기에는 지난 번에 달콤한 맛을 본 검찰의 숨은 의도(?)가 개재되었다는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경찰은 행여 지난 번의 그 쓰라린 낭패감을 다시 겪을까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하루가 다르게 성숙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가 열린 광장에서의 성숙하고도 활발한 논의를 거쳐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여기서 이미 오래전에 우리와 같은 수사권독립 논쟁을 겪은 일본의 사례를 살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 당시 과정과 논쟁의 주요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하기 전까지의 일본은 현재의 우리와 똑같은 검사수사주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패전 후 일본은 미군정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맥아더의 미군정당국은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그리고 공소권을 독점한 일본 검찰의 권한집중체제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와 같은 검찰제도가 군국주의 일본을 지탱시켜 온 주 요인중의 하나로 생각하게 되었다.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온 미군정측은 모든 것을 민주주의 원리에 맞게 정상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의미에서 수사권과 공소권을 각각 경찰과 검찰에 철저하게 분점시켜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 하였고 이에 당시의 일본 검찰 및 법조계에서는 기득권 침해에 대해 극렬하게 반발하였다.

성공적인 일본의 재편을 위해 일정부분 달랠 필요를 느낀 미군정측은 마지못해 그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여 경찰을 본래의 수사기관으로 하고 검사는 소추업무에 전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검사도 이차적, 보충적으로는 수사를 할 수도 있고 공소업무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일반적 준칙의 형태로 경찰에게 지시권을 행사할 수도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신 형사소송체계를 만들게 되었다.(1948년)

수사권의 일부라도 확보하고 수사지휘권의 실낱같은 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검찰측의 끈질긴 요구로 모법격인 영·미법계에는 없는 다소 애매한 규정들이 생기게 된 것이긴 하나 이 시점부터 일본에서는 바야흐로 명실상부한 경찰수사권독립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패전 직후의 일본 경찰은 오늘 날의 일본경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질이나 인권의식등이 낮았었고 그로 인해 갑자기 주어진 독립적인 수사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기는 커녕 그 의미조차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곳곳에서 경찰수사권의 남용사례가 빈발하였고 호시탐탐 반전을 노리던 검찰측과 변호사협회측 등에서는 그 사례를 수집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952년 미군정이 철수하고 당시의 혼란스러운 치안의 확보를 위해 <파괴활동방지법>이 제정 시행될 즈음 일본 검찰은 『일반적지시권』에 근거한다며 위 법률위반사범의 수사에 있어서는 사전에 검사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며 영장의 청구시에도 사전에 검사와 협의할 것을 지시하였고 이에 경찰은 경찰수사의 독립성을 해친다며 그 지시를 즉각적으로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자신들의 의도가 좌절되는 것을 경험한 일본 검찰은 마침내 1953년 경찰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입법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게 되었다.
그 주된 내용은 1)일반적지시권의 내용을 공소수행에 필요한 범위외에 수사의 적정을 기하기 위해서도 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과 2)체포영장 청구시 검사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일본 열도는 찬성과 반대의 양측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검찰측은 소추권자로서 최소한의 수사지휘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경찰의 체포장 청구 남용등 수사상 인권침해 우려를 주로 제기하였고 경찰측은 검찰이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것은 권력의 분점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며 검찰의 수사지휘나 체포영장 심사없이도 경찰이 독립적으로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일본의 상황이 전후 혼란스러운 치안불안이 극복되지도 않은 상태였음에도 형사사법의 양대 축이 ''나라가 두동강이 날 정도의''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언론도 학계도 정치인도 모두 다 그 논쟁에 가세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밥그릇 싸움을 그만두라''든지 ''국민이 불안해 하니 논의를 그만두라''든지 하며 논쟁을 중지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문헌과 자료상 나타난 논의의 내용은 우리처럼 ''협박성 길들이기 시도''나 논쟁의 핵심과 관련없는 ''생트집잡기''를 통한 저질스러운 수준이하의 논쟁이 있었다는 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격렬한 논쟁 끝에 결론은 경찰측의 승리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1)검찰측이 일반적 지시를 하려면 경찰과 사전에 긴밀하게 연락하고 상호 협력하여야 하며 그 내용이 개개의 사건수사를 직접 지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야 하며 2)체포영장 청구는 경부(우리의 경감)이상을 청구권자로 하되 종전과 같이 판사에게 직접 청구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경찰수사권독립의 틀이 그대로 유지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경찰과 검찰이 상호 존중하며 형사사법의 동반자로서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발전시켜 왔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러운 경찰과 검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무릇 성숙한 개인이나 사회일수록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을 슬기롭게 순화시키거나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수 있어야 한다.
경찰수사권독립 논쟁은 우리사회에서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불가피한 사회적 갈등현상이라고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이며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갈등을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으로 극복하여 근원적으로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논의의 당사자들은 이기심을 최대한 억제하고 감정을 자제하며 성숙한 자세로 열린 마음으로 열린 광장에서 진지하게 논의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논의의 핵심은 무엇이 민주주의 제도하에서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이로운 점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기조를 유지하며 활발한 논의가 전개될 때 우리는 갈등을 발전의 계기로 삼는 성숙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갈등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섣불리 논의를 중단시키려 해서는 더욱 안된다.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갈등을 미봉책으로 덮어두려 해서는 언젠가 그 갈등은 더욱 심화된 형태로 다시 나타나고 갈등의 처리비용은 늘어나고 강압적으로 갈등을 누르려 하는 사회에서는 희망이 없어지게 된다.

모처럼 경찰수사권독립 논쟁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쪼록 이번만큼은 해묵은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논쟁을 벌여 가장 바람직한 형사사법 모델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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