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수사권독립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 경찰이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미군정 하에서 새롭게 출발할 때 경찰의 수사권은 독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아니한 사실이기에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군정 초기, 미군정은 경찰관에게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조치라고 생각하고 범죄수사 업무를 경무국에 설치된 형사조사과의 임무로 규정하였다(미군정법령 제20호 제1조 a호,1945.10.30). 그러나 일제 하에서 오랫동안 검사의 수사지휘체제에 익숙해진 한국인 법률가들에게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은 매우 생소한 것이어서 여러 가지 혼선과 갈등을 빚게 되자, 마침내 미군정은 이러한 혼란상황을 제거하기 위하여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고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전면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법무국 검사에 대한 훈령 제3호(1945,12,29)"를 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훈령은 경찰에게는 전면적인 수사권을, 검사에게는 공소의 제기 및 유지의 권한을 각각 분배한 것으로 그 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검사의 직무는 사건을 공소함에 있을 뿐 세밀한 조사는 검사의 책무가 아니다.
둘째, 검사는 통상적인 수사가 경무국에 의하여 수행되도록 요청하여야 한다. 이러한 일(수 사활동)은 검사가 아니라 경찰의 기능이다. 다만 증거의 불비를 경찰관에게 지적하고 증거의 정정을 의뢰할 수 있으며 특별히 법적 분석이 실제로 요구되는 부분에 대해서 만 수사에 관여할 수 있다.
셋째, 검사는 조사 사건에 관하여 경찰서장과 연락을 취하여야 하며 공소유지에 필요한 증 거에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 특히 연락을 취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수사권의 재분배는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경찰과 검찰이 상명하복 관계로 결합하여 거대한 권력기구로 되었던 것을 해체하고 강제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는 양대 수사기관을 분리하여 검찰권의 견제를 달성한다는 미국측의 일관된 정책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정책은 미군정하의 일본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실제로 일본의 신형사소송법에 입법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군정의 확고한 방침이 한국에서는 일본과는 다른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일본의 경우 경찰과 검찰이 모두 군국주의 일본의 첨병으로 기능하였다는 점이 주목되어 신속한 과거청산이 이루어지고 경찰의 조직도 지방분권화함으로써 권력의 비대화를 방지하려 한 반면, 한국의 경우 해방이후 좌익에 의한 혼란한 치안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일제에 협력하였던 과거의 경찰관들이 중용되었으며 "국립경찰"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매우 낮았고 권한남용에 대한 우려는 매우 높아 경찰은 스스로 떳떳하게 자기 주장을 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검찰조직은 일본인 법률가들이 해임되고 그 자리에 과거 독립투사들의 변론을 담당하였던 한국인 법률가들이 임명되었고, 그들은 한결같이 대륙법계 형사사법체계인 종전의 검사수사지휘체제에 익숙해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수사권의 배분은 혼란스러운 시책으로 시급히 종전체제로 환원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당시의 검사총장이었던 이인은 좌익에 의한 치안질서의 교란사태를 맞이하여 "치안의 최고책임자는 경찰이 아니고 검찰"이라는 논리를 펴며 우선 치안유지와 경찰과 검찰의 유기적인 협조가 시급했던 미군정당국과 당시의 경무부장 조병옥을 설득하여 검사의 독자적인 수사권을 일부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시발로 이인은 끈질기게 미군정을 설득하여 검사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들을 계속 추진하여 모든 것이 과거수준으로 회귀하는 상황이 되었고, 나아가 미군정법령 제176호(1948,3.20)에 의해 영장제도가 도입될 때에는 경찰의 강제수사가 검사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정부수립후 초대 법무부장관이 된 이인에 의해 검찰청법에 검사의 수사지휘가 명문화되기에 이르러 최초 미군정의 경찰과 검찰의 역할 분리로 인한 견제와 균형추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일본에서도 미군정방침에 대한 검찰의 반발은 격렬하였으며 오히려 사법경찰을 분리하여 법무성에 소속시켜야 한다는 검찰측 주장이 적극 전개되었으나,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경찰측의 입장 또한 전달되어 미군정 당국은 시종일관 확고부동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수사권의 재분배라는 대변혁을 성공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우리의 경찰조직에 검찰조직의 이인과 같은 인물이 있었더라면 또는 미군정당국이 일본에서처럼 과거청산과 신질서 정립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더라면 오늘날 [경찰수사권독립]이라는 해묵은 과제가 경찰과 검찰 모두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수립 후, 형사소송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1954.1.9)에서도 "권력이 한군데 집중되면 남용되기 쉬우므로 ...... 결국 검찰팟쇼를 가지고 오는데 이것이 경찰팟쇼 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범죄수사의 주도권은 검찰이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장래에 우리나라도 조만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엄상섭의원), "우리나라의 실정은 ...... 수사의 일원화 또는 검사의 지휘권을 강화해야 된다는 것은 여러분이 다 추측하실 줄...... 그러나 이론적으로 말하면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사에게는 기소권만 주자는 것이 타당합니다"(한격만검찰총장)등과 같이 결국 검찰측의 입장이 적극 전개된 내용만 있을 뿐 경찰측의 주장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은 아쉽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위 주장들을 살펴보면 결국 ''지금은 아니지만 장래에는 경찰수사권독립이 옳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특수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든 분야에서 천지개벽할 만큼 변화가 거듭되었다. 아직도 그때의 상황논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우리의 현재의 제반 여건이 50여년전의 패망직후의 일본만도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도대체 가능할 수 있는가?
최근 검찰은 상황논리중 대표격이었던 소위 자질론 주장을 슬그머니 감추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검사의 수사지휘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 ''경찰의 자질향상과 관계없는 만고불변 원리''는 등의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절대권력의 끝없는 욕심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우리나라 경찰이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미군정 하에서 새롭게 출발할 때 경찰의 수사권은 독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아니한 사실이기에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군정 초기, 미군정은 경찰관에게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조치라고 생각하고 범죄수사 업무를 경무국에 설치된 형사조사과의 임무로 규정하였다(미군정법령 제20호 제1조 a호,1945.10.30). 그러나 일제 하에서 오랫동안 검사의 수사지휘체제에 익숙해진 한국인 법률가들에게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은 매우 생소한 것이어서 여러 가지 혼선과 갈등을 빚게 되자, 마침내 미군정은 이러한 혼란상황을 제거하기 위하여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고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전면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법무국 검사에 대한 훈령 제3호(1945,12,29)"를 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훈령은 경찰에게는 전면적인 수사권을, 검사에게는 공소의 제기 및 유지의 권한을 각각 분배한 것으로 그 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검사의 직무는 사건을 공소함에 있을 뿐 세밀한 조사는 검사의 책무가 아니다.
둘째, 검사는 통상적인 수사가 경무국에 의하여 수행되도록 요청하여야 한다. 이러한 일(수 사활동)은 검사가 아니라 경찰의 기능이다. 다만 증거의 불비를 경찰관에게 지적하고 증거의 정정을 의뢰할 수 있으며 특별히 법적 분석이 실제로 요구되는 부분에 대해서 만 수사에 관여할 수 있다.
셋째, 검사는 조사 사건에 관하여 경찰서장과 연락을 취하여야 하며 공소유지에 필요한 증 거에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 특히 연락을 취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수사권의 재분배는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경찰과 검찰이 상명하복 관계로 결합하여 거대한 권력기구로 되었던 것을 해체하고 강제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는 양대 수사기관을 분리하여 검찰권의 견제를 달성한다는 미국측의 일관된 정책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정책은 미군정하의 일본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실제로 일본의 신형사소송법에 입법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군정의 확고한 방침이 한국에서는 일본과는 다른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일본의 경우 경찰과 검찰이 모두 군국주의 일본의 첨병으로 기능하였다는 점이 주목되어 신속한 과거청산이 이루어지고 경찰의 조직도 지방분권화함으로써 권력의 비대화를 방지하려 한 반면, 한국의 경우 해방이후 좌익에 의한 혼란한 치안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일제에 협력하였던 과거의 경찰관들이 중용되었으며 "국립경찰"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매우 낮았고 권한남용에 대한 우려는 매우 높아 경찰은 스스로 떳떳하게 자기 주장을 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검찰조직은 일본인 법률가들이 해임되고 그 자리에 과거 독립투사들의 변론을 담당하였던 한국인 법률가들이 임명되었고, 그들은 한결같이 대륙법계 형사사법체계인 종전의 검사수사지휘체제에 익숙해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수사권의 배분은 혼란스러운 시책으로 시급히 종전체제로 환원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당시의 검사총장이었던 이인은 좌익에 의한 치안질서의 교란사태를 맞이하여 "치안의 최고책임자는 경찰이 아니고 검찰"이라는 논리를 펴며 우선 치안유지와 경찰과 검찰의 유기적인 협조가 시급했던 미군정당국과 당시의 경무부장 조병옥을 설득하여 검사의 독자적인 수사권을 일부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시발로 이인은 끈질기게 미군정을 설득하여 검사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들을 계속 추진하여 모든 것이 과거수준으로 회귀하는 상황이 되었고, 나아가 미군정법령 제176호(1948,3.20)에 의해 영장제도가 도입될 때에는 경찰의 강제수사가 검사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정부수립후 초대 법무부장관이 된 이인에 의해 검찰청법에 검사의 수사지휘가 명문화되기에 이르러 최초 미군정의 경찰과 검찰의 역할 분리로 인한 견제와 균형추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일본에서도 미군정방침에 대한 검찰의 반발은 격렬하였으며 오히려 사법경찰을 분리하여 법무성에 소속시켜야 한다는 검찰측 주장이 적극 전개되었으나,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경찰측의 입장 또한 전달되어 미군정 당국은 시종일관 확고부동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수사권의 재분배라는 대변혁을 성공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우리의 경찰조직에 검찰조직의 이인과 같은 인물이 있었더라면 또는 미군정당국이 일본에서처럼 과거청산과 신질서 정립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더라면 오늘날 [경찰수사권독립]이라는 해묵은 과제가 경찰과 검찰 모두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수립 후, 형사소송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1954.1.9)에서도 "권력이 한군데 집중되면 남용되기 쉬우므로 ...... 결국 검찰팟쇼를 가지고 오는데 이것이 경찰팟쇼 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범죄수사의 주도권은 검찰이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장래에 우리나라도 조만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엄상섭의원), "우리나라의 실정은 ...... 수사의 일원화 또는 검사의 지휘권을 강화해야 된다는 것은 여러분이 다 추측하실 줄...... 그러나 이론적으로 말하면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사에게는 기소권만 주자는 것이 타당합니다"(한격만검찰총장)등과 같이 결국 검찰측의 입장이 적극 전개된 내용만 있을 뿐 경찰측의 주장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은 아쉽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위 주장들을 살펴보면 결국 ''지금은 아니지만 장래에는 경찰수사권독립이 옳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특수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든 분야에서 천지개벽할 만큼 변화가 거듭되었다. 아직도 그때의 상황논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우리의 현재의 제반 여건이 50여년전의 패망직후의 일본만도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도대체 가능할 수 있는가?
최근 검찰은 상황논리중 대표격이었던 소위 자질론 주장을 슬그머니 감추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검사의 수사지휘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 ''경찰의 자질향상과 관계없는 만고불변 원리''는 등의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절대권력의 끝없는 욕심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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