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진학하고 싶어 하는 ‘입시 명문고’의 진학률을 능가하는 ‘무명 학교’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마다 방법과 특성은 전혀 다르며 다른 학교에서 따라하기 어려운 여건을 가진 학교도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 대부분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교육만으로 사교육으로 무장한 도시 학생들을 능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편집자 주
경남 거창군,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로 꼽히는 농촌지역이다. 물론 이곳도 여느 농촌지역처럼 자꾸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각급 학교들이 학생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거창군의 작은 고등학교가 대도시에 있는 유명 학교들이 제치고 대표적인 명문 고등학교로 꼽히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 학교의 성공은 과거 김영삼 정부시절 대통령이 직접 챙길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남 거창군 거창읍의 거창고등학교.
거창고는 1953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건학 이념 아래 설립된 사립학교다. 물론 여느 시골학교처럼 이 학교도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오지 산골학교에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교사모집난도 겪어야 했다.
이런 오지 소규모학교가 90년대 이후 전국적인 입시명문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농촌지역 특성상 대도시 학생들처럼 사교육혜택을 받을 수 없었으며, 현재도 학교 교육만으로 명문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거창고 사람들은 학교에 입시를 위한 특별한 교육은 없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공교육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거창고 사람들이 말하는 ‘거창고 신화’의 비결이다. 특히 교사나 학교가 강제하지 않는 ‘자율’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 스스로 공부할 수 있어야 = 봄·가을 두 차례 3일간 열리는 예술제와 덕유산·지리산에서 펼쳐지는 1박2일 야영캠프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 학교 뒷산으로 전교생이 토끼몰이를 하러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오랜 전통은 거창고가 실시하고 있는 자율성 교육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결과는 ‘자기 주도적 학습습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매년 4월 23일경 열리는 ‘종합예술제’는 ‘거창고식 자율성 교육’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예술제가 열리는 3일간 거창고는 수업을 전폐한다. 이 기간동안 이뤄지는 운동경기와 예능경연 등은 전체 학생들이 두 종목 이상 참가해도 남을 정도로 다양하다.
반별 대항으로 이뤄지는 종합 예술제 준비는 담임교사의 간섭 없이 이뤄진다. 또 예술제 진행, 예·결산집행, 심판, 시상 등도 물론 학생회가 주관한다. 심지어 경기 중 학급 간 다툼이 나도 교사들은 나서지 않는다.
이에 대해 도재원 교장은 “신입생들의 경우, 수학시간에 노트를 가지고 오지 않고 강의만 들으려하는 학생도 있다”며 “사교육의 팽창은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남에게 의존하는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자율성 교육은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게 함으로써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특히 교사와 학부모는 청소년들이 통제의 대상만이 아니라 자율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가을 예술제, 야영캠프 등도 학생들 스스로 준비해 운영하고 있다.
이런 자율성 교육의 성과는 방과 후 자율학습 때 진가를 나타낸다.
거창고는 매일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교시설을 개방하고 있다. 거창고 자율학습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여부를 학생 스스로 결정하며 감독교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율자습을 하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가도, 공부하기 싫어 소설을 읽어도 누구하나 간섭하지 않지만 학습 분위기와 성과는 대도시 어떤 학교보다 높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간 학생들 대부분은 기숙사 자습실 등에서 계속 공부한다. 물론 기숙사 자습실에도 감독교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도 자습을 강요하지 않는다.
일부 고교들의 강제적인 보충·자율학습으로 인해 전교조가 전면거부 가능성을 제기한 현재 상황에서 거창고 사례가 교육일선에 던지는 의미는 크다.
◆ 수준별 이동수업 = 이 같은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함께 거창고 경쟁력의 또 다른 축은 수준별 이동수업이 담당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는 수준별 보충학습을 사교육비경감대책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나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교사들은 업무부담 증가와 함께 자칫 교사 간 서열화 등을 우려하고 있다. 또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온 학생들을 수준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차별로 받아들인 학생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그러나 30년 넘게 영어와 수학 등의 과목에 대해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거창고에는 별다른 마찰이 없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학교측은 수준별 이동수업이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는 비결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학생과 교사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거창고에서는 교사는 물론 교장까지 나서 학생들에게 수준별 수업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있다.
도재원 교장은 “수준별 수업을 일반적으로 우열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그러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장이 직접 나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며 “수준별 수업은 차별이 아니라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한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학생들도 수준별 수업에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2학년 남학생은 “수준별 수업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며 “수준이 낮은 반에 속하는 내가 높은 수준의 수업을 받는다면 오히려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사전에 설명해줬기 때문에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전인교육이 근간 = 거창고 출신들은 일명 ‘거고 정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렵지만 학교에 걸려있는 ‘직업 선택의 10계’가 바로 ‘거고 정신’을 가장 근접하게 설명하고 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마 거창고가 아닌 어떤 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10계는 개척과 봉사 그리고 희생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남을 배려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채용도 어려웠던 산골 고등학교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르는 데는 단지 ‘입시명문’이기 때문은 아니다. 거창고의 경쟁력인 자율성과 선의의 경쟁이 바로 이 전인교육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학교마다 방법과 특성은 전혀 다르며 다른 학교에서 따라하기 어려운 여건을 가진 학교도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 대부분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교육만으로 사교육으로 무장한 도시 학생들을 능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편집자 주
경남 거창군,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로 꼽히는 농촌지역이다. 물론 이곳도 여느 농촌지역처럼 자꾸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각급 학교들이 학생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거창군의 작은 고등학교가 대도시에 있는 유명 학교들이 제치고 대표적인 명문 고등학교로 꼽히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 학교의 성공은 과거 김영삼 정부시절 대통령이 직접 챙길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남 거창군 거창읍의 거창고등학교.
거창고는 1953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건학 이념 아래 설립된 사립학교다. 물론 여느 시골학교처럼 이 학교도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오지 산골학교에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교사모집난도 겪어야 했다.
이런 오지 소규모학교가 90년대 이후 전국적인 입시명문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농촌지역 특성상 대도시 학생들처럼 사교육혜택을 받을 수 없었으며, 현재도 학교 교육만으로 명문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거창고 사람들은 학교에 입시를 위한 특별한 교육은 없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공교육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거창고 사람들이 말하는 ‘거창고 신화’의 비결이다. 특히 교사나 학교가 강제하지 않는 ‘자율’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 스스로 공부할 수 있어야 = 봄·가을 두 차례 3일간 열리는 예술제와 덕유산·지리산에서 펼쳐지는 1박2일 야영캠프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 학교 뒷산으로 전교생이 토끼몰이를 하러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오랜 전통은 거창고가 실시하고 있는 자율성 교육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결과는 ‘자기 주도적 학습습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매년 4월 23일경 열리는 ‘종합예술제’는 ‘거창고식 자율성 교육’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예술제가 열리는 3일간 거창고는 수업을 전폐한다. 이 기간동안 이뤄지는 운동경기와 예능경연 등은 전체 학생들이 두 종목 이상 참가해도 남을 정도로 다양하다.
반별 대항으로 이뤄지는 종합 예술제 준비는 담임교사의 간섭 없이 이뤄진다. 또 예술제 진행, 예·결산집행, 심판, 시상 등도 물론 학생회가 주관한다. 심지어 경기 중 학급 간 다툼이 나도 교사들은 나서지 않는다.
이에 대해 도재원 교장은 “신입생들의 경우, 수학시간에 노트를 가지고 오지 않고 강의만 들으려하는 학생도 있다”며 “사교육의 팽창은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남에게 의존하는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자율성 교육은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게 함으로써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특히 교사와 학부모는 청소년들이 통제의 대상만이 아니라 자율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가을 예술제, 야영캠프 등도 학생들 스스로 준비해 운영하고 있다.
이런 자율성 교육의 성과는 방과 후 자율학습 때 진가를 나타낸다.
거창고는 매일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학교시설을 개방하고 있다. 거창고 자율학습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여부를 학생 스스로 결정하며 감독교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율자습을 하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가도, 공부하기 싫어 소설을 읽어도 누구하나 간섭하지 않지만 학습 분위기와 성과는 대도시 어떤 학교보다 높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간 학생들 대부분은 기숙사 자습실 등에서 계속 공부한다. 물론 기숙사 자습실에도 감독교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도 자습을 강요하지 않는다.
일부 고교들의 강제적인 보충·자율학습으로 인해 전교조가 전면거부 가능성을 제기한 현재 상황에서 거창고 사례가 교육일선에 던지는 의미는 크다.
◆ 수준별 이동수업 = 이 같은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함께 거창고 경쟁력의 또 다른 축은 수준별 이동수업이 담당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는 수준별 보충학습을 사교육비경감대책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나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교사들은 업무부담 증가와 함께 자칫 교사 간 서열화 등을 우려하고 있다. 또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온 학생들을 수준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차별로 받아들인 학생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그러나 30년 넘게 영어와 수학 등의 과목에 대해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거창고에는 별다른 마찰이 없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학교측은 수준별 이동수업이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는 비결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학생과 교사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거창고에서는 교사는 물론 교장까지 나서 학생들에게 수준별 수업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있다.
도재원 교장은 “수준별 수업을 일반적으로 우열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그러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장이 직접 나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며 “수준별 수업은 차별이 아니라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한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학생들도 수준별 수업에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2학년 남학생은 “수준별 수업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며 “수준이 낮은 반에 속하는 내가 높은 수준의 수업을 받는다면 오히려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사전에 설명해줬기 때문에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전인교육이 근간 = 거창고 출신들은 일명 ‘거고 정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렵지만 학교에 걸려있는 ‘직업 선택의 10계’가 바로 ‘거고 정신’을 가장 근접하게 설명하고 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마 거창고가 아닌 어떤 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10계는 개척과 봉사 그리고 희생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남을 배려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채용도 어려웠던 산골 고등학교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르는 데는 단지 ‘입시명문’이기 때문은 아니다. 거창고의 경쟁력인 자율성과 선의의 경쟁이 바로 이 전인교육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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