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치자금 ‘관대’, 뇌물수수 ‘중형’
두 범죄 법정형량 큰 차이 … ‘뇌물 아닌 정치자금 처벌’호소 사례도
지역내일
2004-05-04
(수정 2004-05-04 오후 3:04:25)
법원이 형사재판제도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진술을 최대한 듣고 수사기록에 의존하지 않는 공판중심주의를 본격 시행하는가 하면 부패사건 전담재판부를 출범, 부패사범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말부터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형량을 낮추는 관행을 없애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항소심에서 형량이 낮추는 관행은 항소율을 높이고 1심 재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법원의 변화는 재판결과에 반영돼 전체적인 판결 경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법원의 판결 경향을 두 차례에 걸친 기획으로 준비했다. /편집자 주
최근 법원이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지난해 말 부패전담재판부를 출범한 법원은 뇌물, 알선, 배임수재 등 금품 관련 부패사범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선언한 후 이 같은 판결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불법정치자금을 주고 받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는 처벌이 관대하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해말 대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을 주고 받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에 대해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해 약 20명을 기소했지만 이들에 대한 선고 결과는 대부분 집행유예나 1년 정도의 실형에 그치고 있다.
◆ 뇌물사범 실형선고 잇따라 = 지난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공무원의 뇌물수수나 알선수재에 대한 1심 법원의 실형선고율은 17%에 그쳐 전체 평균(25.2%) 대비 8.2%포인트 낮고 대산 집행유예 선고율(58.5%)은 전체 범죄(43.3%)보다 15.2%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법원이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엄정 처벌을 논의한 이후 올해부터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다.
현대비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광태 광주시장이 지난 3월2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 시장은 첫 공판에서 법정구속돼 시장직이 정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재판부는 “누구보다 청렴성과 도덕성이 유지해야 하는데도 그 의무를 망각하고 돈을 받은데다 검찰진술을 번복하면서까지 범행을 부인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날인 26일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안종길 경남 양산시장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7000여만원을 확정지었다. 같은 날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된 박주선 의원 역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박주천 의원이 현대비자금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5년에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는 등 뇌물 사범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 정치자금법 위반 처벌 약해 = 이와 달리 지난 대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 형량은 높지 않다. 수수금액은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지만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원의 관대한 처벌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원에서는 법정형의 차이가 판결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뇌물사건의 경우 1000만원 이상을 받을 경우 법정형이 5년 이상이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은 3년 이하다.
기업 등에서 10억원을 각각 받은 이재정 전 의원이나 신경식 의원 등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이나 32억6000만원을 받은 이상수 의원이 1년형을 받은 것은 처벌의 수위가 뇌물사범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현 한나라당 전 재정국장은 총 372억원을 받았으나 ‘단순전달자’로 분류돼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모 부장판사는 “불법정치자금법 위반이라도 수수시기(선거 전·후), 수수한 주체(정당인 등), 개인착복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며 “처벌이 일률적으로 관대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풍토가 앞으로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중인 남기춘 대검찰청 중수1과장은 지난달 27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법원은 불법정치자금 수수에 대해 검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용적 입장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수수한 불법자금이 수억 정도인 경우는 (영장을) 기각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해 검찰과 법원이 바라보는 불법정치자금 수수에 견해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 가벼운 처벌받으려 정치자금법 악용 = 현대비자금 6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6억원이 선고된 김용채 전 건교부 장관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이 일은 저 혼자 한 것도 아니고 총리를 포함한 4명이 공동으로 당을 위해 정치자금을 모아 전달한 것”이라며 “제가 대가성 있는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므로 특가법상 뇌물죄가 아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같은 현상은 포괄적 뇌물과 정치자금법 위반 사이에 잣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역시 ‘먼 장래의 대가’를 바란다는 점에서 포괄적 뇌물죄와 구분이 어렵다.
따라서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사이에 확연한 처벌 차이를 입법과정과 사법적용을 통해 개선하고 불법정치자금 처벌을 강화한다면 정계와 재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또한 지난해 말부터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형량을 낮추는 관행을 없애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항소심에서 형량이 낮추는 관행은 항소율을 높이고 1심 재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법원의 변화는 재판결과에 반영돼 전체적인 판결 경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법원의 판결 경향을 두 차례에 걸친 기획으로 준비했다. /편집자 주
최근 법원이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지난해 말 부패전담재판부를 출범한 법원은 뇌물, 알선, 배임수재 등 금품 관련 부패사범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선언한 후 이 같은 판결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불법정치자금을 주고 받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는 처벌이 관대하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해말 대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을 주고 받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에 대해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해 약 20명을 기소했지만 이들에 대한 선고 결과는 대부분 집행유예나 1년 정도의 실형에 그치고 있다.
◆ 뇌물사범 실형선고 잇따라 = 지난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공무원의 뇌물수수나 알선수재에 대한 1심 법원의 실형선고율은 17%에 그쳐 전체 평균(25.2%) 대비 8.2%포인트 낮고 대산 집행유예 선고율(58.5%)은 전체 범죄(43.3%)보다 15.2%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법원이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엄정 처벌을 논의한 이후 올해부터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다.
현대비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광태 광주시장이 지난 3월2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 시장은 첫 공판에서 법정구속돼 시장직이 정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재판부는 “누구보다 청렴성과 도덕성이 유지해야 하는데도 그 의무를 망각하고 돈을 받은데다 검찰진술을 번복하면서까지 범행을 부인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날인 26일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안종길 경남 양산시장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7000여만원을 확정지었다. 같은 날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된 박주선 의원 역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박주천 의원이 현대비자금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5년에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는 등 뇌물 사범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 정치자금법 위반 처벌 약해 = 이와 달리 지난 대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 형량은 높지 않다. 수수금액은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지만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원의 관대한 처벌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원에서는 법정형의 차이가 판결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뇌물사건의 경우 1000만원 이상을 받을 경우 법정형이 5년 이상이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은 3년 이하다.
기업 등에서 10억원을 각각 받은 이재정 전 의원이나 신경식 의원 등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이나 32억6000만원을 받은 이상수 의원이 1년형을 받은 것은 처벌의 수위가 뇌물사범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현 한나라당 전 재정국장은 총 372억원을 받았으나 ‘단순전달자’로 분류돼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모 부장판사는 “불법정치자금법 위반이라도 수수시기(선거 전·후), 수수한 주체(정당인 등), 개인착복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며 “처벌이 일률적으로 관대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풍토가 앞으로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중인 남기춘 대검찰청 중수1과장은 지난달 27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법원은 불법정치자금 수수에 대해 검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용적 입장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수수한 불법자금이 수억 정도인 경우는 (영장을) 기각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해 검찰과 법원이 바라보는 불법정치자금 수수에 견해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 가벼운 처벌받으려 정치자금법 악용 = 현대비자금 6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6억원이 선고된 김용채 전 건교부 장관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이 일은 저 혼자 한 것도 아니고 총리를 포함한 4명이 공동으로 당을 위해 정치자금을 모아 전달한 것”이라며 “제가 대가성 있는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므로 특가법상 뇌물죄가 아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같은 현상은 포괄적 뇌물과 정치자금법 위반 사이에 잣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역시 ‘먼 장래의 대가’를 바란다는 점에서 포괄적 뇌물죄와 구분이 어렵다.
따라서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사이에 확연한 처벌 차이를 입법과정과 사법적용을 통해 개선하고 불법정치자금 처벌을 강화한다면 정계와 재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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