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병력실상 한국정부도 몰라”

한국 동의없이 미군 차출·전쟁발발 가능 … 방위조약 치명적 결함

지역내일 2004-05-24 (수정 2004-05-24 오후 2:17:43)
“솔직히 우리 정부는 오늘 현재 주한미군의 정확한 병력규모와 현황을 알 수 없다.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문제도 미국이 당장 내일 결행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정부에 알려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그렇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움직임을 둘러싸고 23일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전제로 국방전력을 짜고 있는데 한미간 방위조약 상으로는 미군이 언제든지 한국에 통보하지 않고 병력을 움직일 수 있고 철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이 ‘5년내 자주국방 기틀마련’을 강조한 대목도 이같은 고민이 반영됐다는 전언이다.
최근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결정을 계기로 ‘한미동맹의 헌법’격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변화된 국제상황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5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화된 국제정세와 한미관계를 담지 못해 불평등 논란은 물론, 자칫 한반도 안보에 치명적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7일 미국은 동두천 일대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2사단 2여단 병력 3600여명을 이라크로 차출키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우리 정부와 아무런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가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주둔의 근거규정만을 두고 있을 뿐, 주한미군의 이동이나 철수에 대한 한국의 권리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국의 군사상황에 대한 중대한 상황변화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무력한 사후 동의를 했을 뿐이다.
따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 내에 한미 양국이 미군병력 배치와 이동을 사전 협의토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 미군 다 빼가도 아무 말 못해= 미 의회예산국(CBO)이 19일 공개한 ‘미 육군 해외 주둔 변경의 선택 방안들’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주둔 미 육군 병력을 1000명만 남기고 2만7000명을 미 본토로 불러들인 뒤 1개 전투여단을 한국에 순환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주한미군이 1000명만 남게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한국은 미국의 결정에 아무런 제지 권한이 없다.
한미양국이 53년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이후 미국은 4차례에 걸쳐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했다.
1950년대에 단행된 1차 철수는 한국전 종료 뒤에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1971년과 78년, 92년에 단행된 3차례에 걸친 철수는 미국의 일방적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현 방위조약 체제하에서는 급작스런 주한미군 이동 및 철수에 따른 안보공백이 필연적으로 우려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경우 주일미군의 국내외 배치 이동에 대한 사전 협의 장치가 돼 있다는 것과 비교된다.
‘미일안전보장조약’(52년 발효)의 경우 미군이 전투지역에 출동하기 위해 주일미군 기지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돼 있다.
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 위해 일본과 ‘사전 협의’ 절차를 준비했던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반면 당시 미국은 정작 폭격시 직접 피해를 입을 한국과는 아무런 협의조차 않고 북폭을 준비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국내에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 일방적 전쟁도발에도 동참해야= 국내 군사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이 신속대응군으로서 동아시아지역 분쟁에 적극 개입할 경우 한반도 안보공백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과 주변국의 외교관계도 문제가 된다고 보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상호조약의 특성상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과 함께 한국의 대미동맹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2조 규정에 따르면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미국이 판단한 국제분쟁에 한국군을 파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받지 않은 월남전이나 이라크전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것이 유엔의 목적과 의무에 배치되는 무력행사를 금지한 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도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더구나 주한미군을 대북 인계철선에서 동아시아 기동타격대로 재규정하려는 미군 재배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어 상호방위조약 개정을 통해 한국군의 파병요건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주한미군이 역내외 사태에 대응하는 신속기동군의 성격으로 변화되면 한국은 방위조약을 개정해 주한미군의 작전출동을 통제하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원치 않는 분쟁에 휩쓸릴 위험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방위조약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 변화된 국제환경 맞게 개정해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지난 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의 결과물로서 10월 1일 맺어졌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듬해 11월 교환된 한미 합의의사록과 어우러지면서 지난 50년 동안 한미동맹구조를 이루는 기본틀을 형성했다.
한국과 미국은 전쟁을 통해 ‘혈맹’으로 묶였지만 처음부터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관계로 맺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 없이는 한국의 안보가 위태로웠고 한국민들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냉전의 해체와 남북화해 시대의 도래, 거대국가 중국의 부상에 따라 한미관계도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거기에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로 되살아난 한국민의 민족적 자긍심은 더 이상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지난 해 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이로 인한 촛불시위, 노무현 정부 출범은 동맹의 변화를 몰고 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같은 요인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과거 수직직인 관계와는 다른 수평적 관계수립을 위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 군사·외교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도 지난 19일 주한미군 차출에 대한 공식설명문에서 “50여년간 사전협의 절차 없이 주한미군의 감축 등 주요 변화가 일방적으로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라며 ‘사전 협의 제도의 정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이다.

/박정미 기자 pj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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