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알라위 총리는 지난 5월 과도정부의 총리로 임명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권만 이양되면 무장세력을 단시간 내에 섬멸하고 이라크의 치안을 공고히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주권이양 후에도 13만명의 미군은 계속 주둔하겠지만 그는 “강력한 이라크는 이라크인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고있는 폭력사태를 보면 그런 희망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무질서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종교적인 극단주의자들과 새로운 테러리스트들을 끌어들여 알카에다의 새로운 기지가 될지 모른다는 주장과 함께 이라크가 안고있는 문제에 대해 칼럼니스트 로우라 칼라프가 27일자 파이낸셜타임스지에 기고하였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
미군의 실정과 알라위 정부의 과제
미국의 이라크 정책의 기본적인 잘못은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배척에서 나왔다.
미국의 ‘바트당제거정책’은 모든 바트당 당원을 정부조직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아주 잘못된 정책이었다. 미국의 이 정책으로인해 바트당의 주축을 이루었던 수니파는 미국의 침공이후 계속 위기감을 느껴왔고 이는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졌다.
알라위정부는 수니파에 대한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각료 가운데 과거 바트당원들을 소수 참여시키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관리들과 전기부 직원들 중의 대부분이 과거 바트당원이었지만 지금은 재고용되고있다.
극단적인 시아파 지도자 알사드르와 그가 지난 4월 일으킨 소요사태에 대해서도 미국은 알사드르가 항복하고 그의 무장세력을 해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알라위정부는 알사드르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정치적 지위를 인정하고 그를 국회에 참여하도록 초청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알사드르는 정당을 설립하여 내년 1월의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비추었다. 이런 정치적인 움직임은 이라크과도정부에 대한 압력을 다소 완화시켰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무장세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공격빈도와 폭력성을 감소시키는데도 실패했다. 무장세력들이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미군통치에 대한 불만과 임시정부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수니파 지도자들은 알라위 내각을 이전에 미국이 지명했던 통치위원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실망스럽게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미군의 바트당제거정책으로 위기를 맞은 수니파는 계속해서 미군의 철수시점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치안능력의 부재와 지역의 분열
미군은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임시방편만 취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폭력을 억제하겠지만 국가의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 팔루자에서 이런 문제가 확인됐다. 팔루자의 저항세력을 잠재우지 못하게 되자 미군은 전 후세인 육군소속의 지휘관을 불러들여 팔루자 여단의 지휘를 맡겼다. 그 후 팔루자는 상대적으로 조용해 졌지만 그 도시를 무장 세력에게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방법으로는 어떤 지역을 고립시키고 억제할 수는 있지만 효율적인 중앙정부를 수립하거나 다양한 종교적 인종적 차이점을 아우르는 합의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쿠르드지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잠복하고 있다. 미국은 ‘페시메르가‘라고 불리는 쿠르드족 무장세력이 쿠루드 자치지역의 치안을 맡는데 동의하였다. 쿠루드족 자치정부의 수반인 니제르반 바르자니는 “페시메르가가 없으면 이라크 북부지역은 치안 공백상태가 될 것이다. 이라크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북부지역 뿐이다”면서 페시메르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라크의 화약고, 키르쿠크
가장 위험한 화약고는 다인종이 모여 있는 키르쿠크지역이다. 쿠루드족은 이라크 최대 유전지인 키르쿠크를 그들의 관할 아래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라크의 아랍계는 이점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지난 3월 통치위원회가 승인한 임시헌법에서 보장된 쿠루드족의 자치권이 유엔결의안에 명시되지 않은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 조항이 삭제된 것은 시아파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알시스타니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라크 북부지역의 쿠르드족과 남부와 중부의 시아파는 후세인 치하에서는 같은 처지였다. 후세인 정권이 그들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박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1년 후세인의 군대가 쿠웨이트에서 패전한 후 쿠르드족과 시아파 지도자들은 함께 연대하여 지하세력을 키워 후세인에 대항했다.
그러나 후세인이 축출되자 쿠르드족과 시아파 사이의 정치적인 입장차이는 갈등으로 번지게 되었고 새로운 이라크를 건설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김광호 리포터 grinhil@hanmail.net
그러나 최근 진행되고있는 폭력사태를 보면 그런 희망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무질서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종교적인 극단주의자들과 새로운 테러리스트들을 끌어들여 알카에다의 새로운 기지가 될지 모른다는 주장과 함께 이라크가 안고있는 문제에 대해 칼럼니스트 로우라 칼라프가 27일자 파이낸셜타임스지에 기고하였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
미군의 실정과 알라위 정부의 과제
미국의 이라크 정책의 기본적인 잘못은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배척에서 나왔다.
미국의 ‘바트당제거정책’은 모든 바트당 당원을 정부조직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아주 잘못된 정책이었다. 미국의 이 정책으로인해 바트당의 주축을 이루었던 수니파는 미국의 침공이후 계속 위기감을 느껴왔고 이는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졌다.
알라위정부는 수니파에 대한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각료 가운데 과거 바트당원들을 소수 참여시키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관리들과 전기부 직원들 중의 대부분이 과거 바트당원이었지만 지금은 재고용되고있다.
극단적인 시아파 지도자 알사드르와 그가 지난 4월 일으킨 소요사태에 대해서도 미국은 알사드르가 항복하고 그의 무장세력을 해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알라위정부는 알사드르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정치적 지위를 인정하고 그를 국회에 참여하도록 초청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알사드르는 정당을 설립하여 내년 1월의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비추었다. 이런 정치적인 움직임은 이라크과도정부에 대한 압력을 다소 완화시켰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무장세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공격빈도와 폭력성을 감소시키는데도 실패했다. 무장세력들이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미군통치에 대한 불만과 임시정부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수니파 지도자들은 알라위 내각을 이전에 미국이 지명했던 통치위원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실망스럽게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미군의 바트당제거정책으로 위기를 맞은 수니파는 계속해서 미군의 철수시점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치안능력의 부재와 지역의 분열
미군은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임시방편만 취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폭력을 억제하겠지만 국가의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 팔루자에서 이런 문제가 확인됐다. 팔루자의 저항세력을 잠재우지 못하게 되자 미군은 전 후세인 육군소속의 지휘관을 불러들여 팔루자 여단의 지휘를 맡겼다. 그 후 팔루자는 상대적으로 조용해 졌지만 그 도시를 무장 세력에게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방법으로는 어떤 지역을 고립시키고 억제할 수는 있지만 효율적인 중앙정부를 수립하거나 다양한 종교적 인종적 차이점을 아우르는 합의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쿠르드지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잠복하고 있다. 미국은 ‘페시메르가‘라고 불리는 쿠르드족 무장세력이 쿠루드 자치지역의 치안을 맡는데 동의하였다. 쿠루드족 자치정부의 수반인 니제르반 바르자니는 “페시메르가가 없으면 이라크 북부지역은 치안 공백상태가 될 것이다. 이라크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북부지역 뿐이다”면서 페시메르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라크의 화약고, 키르쿠크
가장 위험한 화약고는 다인종이 모여 있는 키르쿠크지역이다. 쿠루드족은 이라크 최대 유전지인 키르쿠크를 그들의 관할 아래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라크의 아랍계는 이점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지난 3월 통치위원회가 승인한 임시헌법에서 보장된 쿠루드족의 자치권이 유엔결의안에 명시되지 않은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 조항이 삭제된 것은 시아파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알시스타니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라크 북부지역의 쿠르드족과 남부와 중부의 시아파는 후세인 치하에서는 같은 처지였다. 후세인 정권이 그들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박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1년 후세인의 군대가 쿠웨이트에서 패전한 후 쿠르드족과 시아파 지도자들은 함께 연대하여 지하세력을 키워 후세인에 대항했다.
그러나 후세인이 축출되자 쿠르드족과 시아파 사이의 정치적인 입장차이는 갈등으로 번지게 되었고 새로운 이라크를 건설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김광호 리포터 grin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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