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옥 경위
양천경찰서 마약반장. 경찰이 되고 싶어 대구여고 2학년 때부터 ‘악착같이’ 준비했다. 여경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지만 경찰관이 되고픈 열정은 자리보전하고 누운 어머니도 꺾지 못했다. 88년 경찰 입문 후 강력반 형사로 일한 지 10년 세월이 넘었다. 요즘은 대림동 조선족 부녀자 피살사건 수사본부로 파견 나가 있다.
김정자 경사
마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박 반장처럼 경찰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대학 4학년 때 별 ‘뜻’없이 경찰시험에 응시했다가 덜컥 합격했다. 벌써 16년이 흘렀다. 지금? 그 친구에게 너무 감사한다. ‘경찰인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도훈이도 그에겐 기쁨이다.
이은실 경장
경찰청 특수수사과.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1년간 ‘무료한’ 조교 생활을 하다 ‘뭐 다른 일이 없을까’ 할 때, 경찰청 ‘사이버 전문수사요원’을 뽑는다는 공고문이 확 눈에 띠었다.
경찰이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2001년 경장 특채로 뽑혀 지금은 ‘수사의 꽃’이라는 특수수사과에서 일하고 있다.
이은실 : 그러고 보니 김 선배님은 ‘연예인 진출’이셨네요. 오디션 보는 친구 따라갔다가 우연히 연예인이 됐다니.(웃음) 헌데 경찰이 되고 싶어 했던 그 친구는 어찌 되셨나요.
김정자 : 친구는 꼭 경찰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나보고, 먼저 가 있어라, 곧 뒤 따라가마, 이러면서 망설이는 나를 ‘경찰’로 떠밀었죠.(웃음) 벌써 서른아홉이니 이제는 꿈을 접었지만 친구는 지금도 경찰 관련 기사는 빼놓지 않고 스크랩하고 있어요. 여경의 날이면 축하 메시지도 보내와요.
박미옥 : 우리 어머니는 둘째 언니가 맞선 본 남자 직업이 경찰관이라는 걸 알고는 시집도 안 보냈을 정도였어요. 일제시대 순사를 기억하고 있는 분이셨으니…. 경사계급을 달고 나서야 제 직업을 ‘인정’해주셨어요. 손수 축하금도 보내시고 오빠들에게 전화해서 격려금 보내라 하시고 말이죠.(웃음)
이 : 제 외모를 보고 ‘경찰’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시는데요, (단호하게) 절대! 아니에요. 경찰학교에서 합숙할 때 동기들이 “넌 딱 경찰이 체질이다. 나중에 교관으로 오지 마라. 후배 다 잡겠다” 할 정도였다니까요. 제가 ‘각 잡힌’ 생활을 좀 했거든요.(일동 믿을 수 없다는 표정)
박 : 이 경장은 체력검사 받았으면 못 들어왔을 거 같은데.(특급 내지 1급은 받을 수 있다는 이 경장 말에, 일동 웃음) 우리 여경들은 평소 체력관리가 참 중요해요. 특히 외근 형사 생활하려면 더 그렇죠.
전설적인 소매치기 체포에서 반도체 해외유출사건까지
이 : 박 반장님은 여경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선배로 뽑힐 만큼 ‘전설적’인 분인데, 형사생활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박 : 서울청 강력계 여자기동수사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강력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은, 종로파 소매치기 두목이 을지로 구역을 ‘접수’하러 들어온 것이었어요. ‘1호선 지하철 두목이 2호선 먹으러 들어온다’는 첩보가 흘러 들어온 거죠.
그 첩보는 뭐랄까, 일종의 미끼 같은 거였는데, 여경이 소매치기를 잡은 일이 소매치기 업계에선 충격이었나봐요. 여자도 소매치기를 잡는구나, 그 여경들의 얼굴을 어떻게 익힐 것이냐, 그래서 던진 미끼였죠. 결국 보름이 지나 검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조 과장’이라는 전설적인 소매치기였어요. 그 사람 잡은 덕분에 4년 후 특진할 때 지휘관이 아무 말 없이 사인해줬죠.
끝내 범인을 놓치긴 했어도 ‘무식하게’ 끈질겼던 경험, 지금 서울청 수사부장 작품인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살인 사건에서는 대형사건이 짜임새 있게 해결되는 걸 보면서, 살인사건 수사본부라는 게 얼마나 큰 영역인지 배우기도 했죠.
김 : 저는 주로 내근을 많이 했지만, 시위현장에 먼저 도착해 폴리스라인을 치는 것으로 유명해진 여경기동대에서 1년 정도 근무하면서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주도’하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죠.
지금은 마포서 여청계에서 상담을 전담하고 있는데 보람을 많이 느껴요. 얼마 전에 만13살 된 여자아이를 유인해 ‘원조교제 보도방’을 차린 범인을 체포한 적이 있는데 ‘외근 형사 일의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됐죠. 이 사건을 보면서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 저는 서울청 사이버수사대에 2년쯤 근무하다가 6개월 전에 경찰청 특수수사과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통신수사, 금융계좌 추적수사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지난해 12월에 특수수사과로 오자마자 ‘불량방독면 사건’이 터졌고 그 다음에 민경찬 펀드, 반도체기술 일본 유출 사건, 국무총리실 4급 비서관 뇌물수수사건 등 정신없었어요. 그 바람에 특수수사과 온 지 한 달 만에 몸무게가 3kg나 빠졌더라구요.
김 : 특수수사과는 수사 경력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이제 2년 8개월이? 기업형 비리를 파고들고 고위층 빙자 사기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를 다루는 곳인데 정말 대단하네. 특수수사과 이래로 최연소지 아마?
이 : 네. 사이버 수사 영역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죠. 수사할 때마다 느끼는 건 정말 비양심적인 사람이 많구나 하는 거예요. 반도체 유출 사건만 해도 우리 기술을 일본으로 팔아넘기려는 건데 어떻게 한국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국민윤리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니까요. 박 선배님은 수사하면서 겪는 어려움 없으세요?
신창원도 인사한 탈주범 전담 여경
박 : 98년 신창원 사건 때 8개월간 전국을 돌며 수사를 했던 적이 있어요. 첫 투입되니까 신창원 일기장 하나를 던져주면서 연구를 하라는 거예요. 마치 내가 신창원이 된 양 오늘은 된장찌개를 먹을까, 김치찌개를 먹을까, 은신처는 어디로 할까? 이런 걸 생각해 보는 거죠. 제가 내린 결론은 도피처로 ‘여자’를 택했고 주택가가 될 거라는 거였어요.
나중에 순천에서 잡혔는데 수사반장이 전화를 해서는 “박 형사 분석이 적중했어” 하시더군요. 비록 내 손으로 잡지는 못했지만 뿌듯했죠. 하지만 맘 고생도 심했어요. 청주에서 강도강간 피해자가 나왔는데 언론은 경찰이 조작했다 뭐 이렇게 대서특필하는 하는 바람에 나로서는 아주 원통했었거든요.
김 : 신창원이 박 반장한테 인사를 했다는 건 뭐죠?
박 : 부산교도소로 피해 여성을 데리고 갔는데 갑자기 나를 보면서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아세요?” 했더니 “미용실 잡지에서 봤습니다” 이러는데, 내가 강력반 형사하면서 이렇게 얼굴 알리는 거 싫은 이유기도 하다니까.(웃음)
그 후로 ‘탈주범 전담 여경’이 돼 버리고 말았죠. 신창원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을 해결하면서 느낀 건 정말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여경은 ‘여친소의 전지현’
이 : 제 자랑 같은데요,(웃음) 지난해 정보검색사 시험에서 전국 1등을 해 라스베가스 컴퓨터전시회에도 다녀왔어요. 아마 특수수사과 오게 된 것도 다 그 덕분 아닌가 싶어요. 근데 제가 1등을 하니까 상을 주며 한다는 말이 “아니 경찰이?” 이러는 거예요. 나 참, 경찰도 공부 많이 한다고요!!
박 : 우와~ 좀 늙은 나이(?)에 대학생들과 경쟁해서 이겼다니 역시 여경들은 대단하단 말씀이야.
이 : 한 가지 섭섭한 건요, <여친소>의 전지현은 다들 좋아하면서 왜 여경은 무서워하나 모르겠어요. 현실에서도 많은 여경들이 ‘여친소의 전지현’ 같거든요.(일동 ‘맞아 맞아’ 하며 파안대소. 기자, 분위기에 압도돼 동의!)
김 : 남편이 대구 사람인데, 대구쪽에서는 여자 경찰을 상당히 좋아한대요. 그래서 여경들 사이에서는 대구가 인기죠. 발령 나면 대구 유지들이 찾아와 새로 온 여경이 있다는데 며느리 좀 삼읍시다, 할 정도로 여경에 대한 인식이 좋아요. 남편도 여경이 좋아서 저랑 결혼했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이 : 소개팅에 나가면, 제 자신보다는 제 직업만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범인을 잡았냐, 놓쳤냐 이것부터 물어보는 사람들 말예요.정말 괴로워요.(웃음)
박 : 사람들은 경찰이 험한 일, 안 좋은 일을 하느라 피폐해질 거라 생각하지만 저희들은 그 험한 일, 안 좋은 일을 정리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을 하잖아요. 세태에 찌들어 있는 모습, 타성에 젖어 보이는 경찰이 있다면 개인 인성의 문제지 경찰관이라는 직업 때문은 아닌 거 같아요. 정자 언니(김 경사 지칭) 보면 아직 소녀 같잖아요.(일동 웃음)
여경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김 : 문제가 있어 여성청소년계로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경찰관으로서 대하는 게 아니라, 이모처럼 엄마처럼 푸근하게 안아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그래서 아동심리학도 공부해보려 해요.
이 : 여경으로 사는 건 분명 평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자로 태어나서 권총을 잡아본 사람, 수갑을 채워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저는 지금의 제 삶이 즐겁고 재밌고 좋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사이버수사의 전문가가 되고 현장 수사 능력도 키워가려고 해요.
박 : 저는 NGO와 경찰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NGO 활동가들 중에는 경찰에 대해 너무 몰라서 비판하고 욕하는 경우가 많아요. NGO와 경찰의 손발이 맞을 때, 피해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굉장히 많거든요.
이제는 법이 복지·인권적 관점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시대가 됐어요. 여경은 ‘진흙’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잘 섞이게 하고 단단하게 뭉칠 수 있도록 만들죠. 여경이 하니까 믿고 신뢰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강하거든요.
그래서 경찰처럼 딱딱한 집단에는 여경이 많아야 해요.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말이죠.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
● 이 기사는 미즈엔 184호에 실은 기사입니다여친소>
양천경찰서 마약반장. 경찰이 되고 싶어 대구여고 2학년 때부터 ‘악착같이’ 준비했다. 여경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지만 경찰관이 되고픈 열정은 자리보전하고 누운 어머니도 꺾지 못했다. 88년 경찰 입문 후 강력반 형사로 일한 지 10년 세월이 넘었다. 요즘은 대림동 조선족 부녀자 피살사건 수사본부로 파견 나가 있다.
김정자 경사
마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박 반장처럼 경찰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대학 4학년 때 별 ‘뜻’없이 경찰시험에 응시했다가 덜컥 합격했다. 벌써 16년이 흘렀다. 지금? 그 친구에게 너무 감사한다. ‘경찰인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도훈이도 그에겐 기쁨이다.
이은실 경장
경찰청 특수수사과.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1년간 ‘무료한’ 조교 생활을 하다 ‘뭐 다른 일이 없을까’ 할 때, 경찰청 ‘사이버 전문수사요원’을 뽑는다는 공고문이 확 눈에 띠었다.
경찰이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2001년 경장 특채로 뽑혀 지금은 ‘수사의 꽃’이라는 특수수사과에서 일하고 있다.
이은실 : 그러고 보니 김 선배님은 ‘연예인 진출’이셨네요. 오디션 보는 친구 따라갔다가 우연히 연예인이 됐다니.(웃음) 헌데 경찰이 되고 싶어 했던 그 친구는 어찌 되셨나요.
김정자 : 친구는 꼭 경찰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나보고, 먼저 가 있어라, 곧 뒤 따라가마, 이러면서 망설이는 나를 ‘경찰’로 떠밀었죠.(웃음) 벌써 서른아홉이니 이제는 꿈을 접었지만 친구는 지금도 경찰 관련 기사는 빼놓지 않고 스크랩하고 있어요. 여경의 날이면 축하 메시지도 보내와요.
박미옥 : 우리 어머니는 둘째 언니가 맞선 본 남자 직업이 경찰관이라는 걸 알고는 시집도 안 보냈을 정도였어요. 일제시대 순사를 기억하고 있는 분이셨으니…. 경사계급을 달고 나서야 제 직업을 ‘인정’해주셨어요. 손수 축하금도 보내시고 오빠들에게 전화해서 격려금 보내라 하시고 말이죠.(웃음)
이 : 제 외모를 보고 ‘경찰’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시는데요, (단호하게) 절대! 아니에요. 경찰학교에서 합숙할 때 동기들이 “넌 딱 경찰이 체질이다. 나중에 교관으로 오지 마라. 후배 다 잡겠다” 할 정도였다니까요. 제가 ‘각 잡힌’ 생활을 좀 했거든요.(일동 믿을 수 없다는 표정)
박 : 이 경장은 체력검사 받았으면 못 들어왔을 거 같은데.(특급 내지 1급은 받을 수 있다는 이 경장 말에, 일동 웃음) 우리 여경들은 평소 체력관리가 참 중요해요. 특히 외근 형사 생활하려면 더 그렇죠.
전설적인 소매치기 체포에서 반도체 해외유출사건까지
이 : 박 반장님은 여경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선배로 뽑힐 만큼 ‘전설적’인 분인데, 형사생활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박 : 서울청 강력계 여자기동수사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강력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은, 종로파 소매치기 두목이 을지로 구역을 ‘접수’하러 들어온 것이었어요. ‘1호선 지하철 두목이 2호선 먹으러 들어온다’는 첩보가 흘러 들어온 거죠.
그 첩보는 뭐랄까, 일종의 미끼 같은 거였는데, 여경이 소매치기를 잡은 일이 소매치기 업계에선 충격이었나봐요. 여자도 소매치기를 잡는구나, 그 여경들의 얼굴을 어떻게 익힐 것이냐, 그래서 던진 미끼였죠. 결국 보름이 지나 검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조 과장’이라는 전설적인 소매치기였어요. 그 사람 잡은 덕분에 4년 후 특진할 때 지휘관이 아무 말 없이 사인해줬죠.
끝내 범인을 놓치긴 했어도 ‘무식하게’ 끈질겼던 경험, 지금 서울청 수사부장 작품인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살인 사건에서는 대형사건이 짜임새 있게 해결되는 걸 보면서, 살인사건 수사본부라는 게 얼마나 큰 영역인지 배우기도 했죠.
김 : 저는 주로 내근을 많이 했지만, 시위현장에 먼저 도착해 폴리스라인을 치는 것으로 유명해진 여경기동대에서 1년 정도 근무하면서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주도’하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죠.
지금은 마포서 여청계에서 상담을 전담하고 있는데 보람을 많이 느껴요. 얼마 전에 만13살 된 여자아이를 유인해 ‘원조교제 보도방’을 차린 범인을 체포한 적이 있는데 ‘외근 형사 일의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됐죠. 이 사건을 보면서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 저는 서울청 사이버수사대에 2년쯤 근무하다가 6개월 전에 경찰청 특수수사과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통신수사, 금융계좌 추적수사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지난해 12월에 특수수사과로 오자마자 ‘불량방독면 사건’이 터졌고 그 다음에 민경찬 펀드, 반도체기술 일본 유출 사건, 국무총리실 4급 비서관 뇌물수수사건 등 정신없었어요. 그 바람에 특수수사과 온 지 한 달 만에 몸무게가 3kg나 빠졌더라구요.
김 : 특수수사과는 수사 경력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이제 2년 8개월이? 기업형 비리를 파고들고 고위층 빙자 사기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를 다루는 곳인데 정말 대단하네. 특수수사과 이래로 최연소지 아마?
이 : 네. 사이버 수사 영역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죠. 수사할 때마다 느끼는 건 정말 비양심적인 사람이 많구나 하는 거예요. 반도체 유출 사건만 해도 우리 기술을 일본으로 팔아넘기려는 건데 어떻게 한국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국민윤리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니까요. 박 선배님은 수사하면서 겪는 어려움 없으세요?
신창원도 인사한 탈주범 전담 여경
박 : 98년 신창원 사건 때 8개월간 전국을 돌며 수사를 했던 적이 있어요. 첫 투입되니까 신창원 일기장 하나를 던져주면서 연구를 하라는 거예요. 마치 내가 신창원이 된 양 오늘은 된장찌개를 먹을까, 김치찌개를 먹을까, 은신처는 어디로 할까? 이런 걸 생각해 보는 거죠. 제가 내린 결론은 도피처로 ‘여자’를 택했고 주택가가 될 거라는 거였어요.
나중에 순천에서 잡혔는데 수사반장이 전화를 해서는 “박 형사 분석이 적중했어” 하시더군요. 비록 내 손으로 잡지는 못했지만 뿌듯했죠. 하지만 맘 고생도 심했어요. 청주에서 강도강간 피해자가 나왔는데 언론은 경찰이 조작했다 뭐 이렇게 대서특필하는 하는 바람에 나로서는 아주 원통했었거든요.
김 : 신창원이 박 반장한테 인사를 했다는 건 뭐죠?
박 : 부산교도소로 피해 여성을 데리고 갔는데 갑자기 나를 보면서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아세요?” 했더니 “미용실 잡지에서 봤습니다” 이러는데, 내가 강력반 형사하면서 이렇게 얼굴 알리는 거 싫은 이유기도 하다니까.(웃음)
그 후로 ‘탈주범 전담 여경’이 돼 버리고 말았죠. 신창원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을 해결하면서 느낀 건 정말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여경은 ‘여친소의 전지현’
이 : 제 자랑 같은데요,(웃음) 지난해 정보검색사 시험에서 전국 1등을 해 라스베가스 컴퓨터전시회에도 다녀왔어요. 아마 특수수사과 오게 된 것도 다 그 덕분 아닌가 싶어요. 근데 제가 1등을 하니까 상을 주며 한다는 말이 “아니 경찰이?” 이러는 거예요. 나 참, 경찰도 공부 많이 한다고요!!
박 : 우와~ 좀 늙은 나이(?)에 대학생들과 경쟁해서 이겼다니 역시 여경들은 대단하단 말씀이야.
이 : 한 가지 섭섭한 건요, <여친소>의 전지현은 다들 좋아하면서 왜 여경은 무서워하나 모르겠어요. 현실에서도 많은 여경들이 ‘여친소의 전지현’ 같거든요.(일동 ‘맞아 맞아’ 하며 파안대소. 기자, 분위기에 압도돼 동의!)
김 : 남편이 대구 사람인데, 대구쪽에서는 여자 경찰을 상당히 좋아한대요. 그래서 여경들 사이에서는 대구가 인기죠. 발령 나면 대구 유지들이 찾아와 새로 온 여경이 있다는데 며느리 좀 삼읍시다, 할 정도로 여경에 대한 인식이 좋아요. 남편도 여경이 좋아서 저랑 결혼했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이 : 소개팅에 나가면, 제 자신보다는 제 직업만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범인을 잡았냐, 놓쳤냐 이것부터 물어보는 사람들 말예요.정말 괴로워요.(웃음)
박 : 사람들은 경찰이 험한 일, 안 좋은 일을 하느라 피폐해질 거라 생각하지만 저희들은 그 험한 일, 안 좋은 일을 정리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을 하잖아요. 세태에 찌들어 있는 모습, 타성에 젖어 보이는 경찰이 있다면 개인 인성의 문제지 경찰관이라는 직업 때문은 아닌 거 같아요. 정자 언니(김 경사 지칭) 보면 아직 소녀 같잖아요.(일동 웃음)
여경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김 : 문제가 있어 여성청소년계로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경찰관으로서 대하는 게 아니라, 이모처럼 엄마처럼 푸근하게 안아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그래서 아동심리학도 공부해보려 해요.
이 : 여경으로 사는 건 분명 평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자로 태어나서 권총을 잡아본 사람, 수갑을 채워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저는 지금의 제 삶이 즐겁고 재밌고 좋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사이버수사의 전문가가 되고 현장 수사 능력도 키워가려고 해요.
박 : 저는 NGO와 경찰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NGO 활동가들 중에는 경찰에 대해 너무 몰라서 비판하고 욕하는 경우가 많아요. NGO와 경찰의 손발이 맞을 때, 피해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굉장히 많거든요.
이제는 법이 복지·인권적 관점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시대가 됐어요. 여경은 ‘진흙’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잘 섞이게 하고 단단하게 뭉칠 수 있도록 만들죠. 여경이 하니까 믿고 신뢰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강하거든요.
그래서 경찰처럼 딱딱한 집단에는 여경이 많아야 해요.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말이죠.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
● 이 기사는 미즈엔 184호에 실은 기사입니다여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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