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범죄 새벽대기 없앤다

경찰청, 경미사건 피의자 출석요구제도 6월초 전국시행

지역내일 2004-06-23
‘지난 달 30일 술에 취한 김 모씨가 야밤에 택시를 불렀다. 만취한 그는 사소한 시비 끝에 택시기사를 폭행했다. 찰과상을 약간 입은 택시기사는 인근 순찰지구대에 사건을 신고했다.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후 소속 경찰서 형사계에 인계했다. 형사계 사무실은 김씨와 같은 취객들이 사소한 폭행건으로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경찰은 술에 취한 김씨에게 조사순서를 기다리도록 하고 바쁘게 다른 피의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김씨는 새벽까지 기다리다 조사를 받느라 이튿날 출근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출석요구제도 전국 시행= 김씨와 같은 상황은 전국 경찰서에서 거의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다. 이때 조사를 간단히 마치고 김씨를 일단 집에 귀가시킨 후 다음 날 불러 조서를 작성하는 길이 새로 열렸다.
경찰청은 최근 ‘형사피의자 장시간 대기관행 개선제도(일명 출석요구제도)’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내렸다. 경미한 범죄의 경우 피의자로부터‘출석확약서’를 받고 일단 귀가 조치한 후 출석을 요구해 다시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중순 각 지방경찰청에 공문서를 통해 시달된 이 지침은 6월 초부터는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거에도 경미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술에 만취하는 등 조사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신원보증인을 받고 귀가조치하는 관행이 있었지만 신원보증인은 피의자 출석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효력이 거의 없었다”며 “새로운 제도는 과거의 관행을 정비해서 구체화하고 출석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현행 출석요구제에 따르면 경찰은 피의사실을 인정하는 자에 한해 ‘출석확약서’를 만들어 피의자를 즉시 귀가조치할 수 있다. 출석 일시와 함께 약속일시에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는 내용등이 적힌 출석확약서를 통해 출석을 강제할 수 있도록 보완한 것이다.
경찰청 관계는 이를 두고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그 동안 새벽까지 불필요하게 형사피의자를 대기시키던 관행을 개선해 국민불편을 해소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수사행정을 구현하자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당직계 업무량 폭증 우려=하지만 이 제도에는 맹점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선 경찰서 형사계 형사들은 업무량 폭증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형사계 당직을 서던 서울지역 ㄱ경찰서 한 형사는 “일단 한 숨 재우고 술이 깨길 기다린 다음에 조사하고 집으로 보내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직 사건은 모두 술이 취해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한 달에 한 번이면 모를까, 당직하는 날 한 건씩만 쌓여도 나중에 대단히 큰 업무부담으로 다가온다”고 염려했다.
법규정이 모호하고 제도취지가 널리 국민들에게 홍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경찰관 법집행에 대해 형평성 논란 등 분란의 소지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 제도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경찰관들에게 없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국민들에게도 없어 제도시행 초기 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ㄴ경찰서 강력계장은 “우리 경찰은 임의수사로 전환되는 강제수사를 경험한 적이 없다”며 “어느 사안은 출석요구를 해야 하는지 어느 사안은 강제수사를 해야 하는지 그 기준이 되는 ‘경미한 사건’의 범위가 애매해서 그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찰관들에게 수사방법이란 임의수사와 강제수사 두 가지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출석요구제도는 현행범 체포로 시작한 강제수사를 출석요구를 통해 임의수사로 전환시키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인권을 위한 제도인데도 이해부족으로 시행과정에서 저항에 부딪힐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지역 ㄷ경찰서 한 형사는 “가해자가 조사를 받지 않고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어느 피해자가 고운 눈으로 지켜보겠는가”며 “국민들은 불신의 눈으로 경찰을 보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찰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협조가 제도성공 관건 =경찰청도 형사부서의 업무량 가중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경미한 사건은 순찰지구대에서 정식형사사건화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즉결 혹은 훈방하는 권한을 주어서 경찰서 형사부의 업무부담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자발적 협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이 출석을 약속했음에도 출석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아지면 결국 이 제도는 실효성을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출석요구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출석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는 성숙한 국민 법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미 기자 pj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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