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 북한은 변화하고 있나 (임현진 2004.07.05)

지역내일 2004-07-01 (수정 2004-07-05 오후 5:04:49)
북한은 변화하고 있나
임현진 (서울대교수 정치사회학)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 이후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남북을 왕래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북한을 방문한 남한인은 1만6천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고, 남한을 방문한 북한인은 1천명으로 16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민간교류가 학술, 체육, 문화, 의료 등 다방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물론 인구규모로 보면 새 발의 피다. 그러나 지난날 교류가 휴전선(?)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 중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기회가 주어지면 재방문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앞의 부류는 똑 같은 선전에 볼거리가 제한되어 있는데 또다시 가봐야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뒤의 부류는 그래도 자주 만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얘기해야 서로 교류와 대화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얼마전 북한을 다녀온 나로서는 감히 후자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 자주 만나야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늘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식 체제 운영과 선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주체’의 테마파크에는 오로지 혁명의 우상만 있다. 매우 일사불란한 체제다. 다양성이 안 보인다. 집단주의아래 개인의 공간은 비좁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시비 걸고 싶지 않다. 반세기라는 시간 속에 갇혀진 북한이 아닌가.

시장 300여개, 유아적 단계 공론장도
최근 북한의 모습은 ‘북한 불변론’의 예상을 뒤엎고 있다. ‘북한 변화론’이 전망했던 변화조차 뛰어넘고 있다.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사회경제적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북한은 시장경제와 시민사회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 중앙명령적 계획경제아래에서 시장은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시장은 연대를 깨고 계급을 만들어내는 나쁜 것으로 파악되었다. 국가에 의한 물자공급체제는 시장의 자연적 형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민들은 오래 세월에 걸친 경제위기에서 생존을 위해 각자 물품을 암시장에서 사고파는 요령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북한에는 300여개의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평양에만 40개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상품이 유통된다. 판매가격도 탄력적이다. 모든 곳에 인센티브제가 도입되고 있다. 종업원들의 활력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상품공급 부족과 인플레 심화다. 그럼에도 돈벌이는 거의 모든 인민들에게 번지고 있다. 이러한 초급적 형태의 시장의 발생은 기존의 도덕적 인센티브에 입각한 노동윤리와 노사관계를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북한의 사회단체들은 관변조직이다.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는 차치하고 주거와 여행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은 곳에서 시민사회를 운위하기 어렵다. 기실 인민들은 ‘시민’이라기보다 ‘신민’에 가깝다. 그러나 인민들은 경제위기를 헤쳐가는 와중에서 생존을 위하여 이곳저곳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공식적 배급체계가 무너진 마당에 북한으로서는 인민들의 이동과 이주를 단속하기 어렵다.
중국지역의 수많은 탈북자들이 웅변하듯 인민들 사이의 왕래와 거래는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이들에게 북한체제에 대한 비교감각을 갖게 해줌은 물론이다. 이른바 서로 다른 생각들이 교환되는 유아적 단계의 공론장이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형성은 요원한 것이지만 공론장의 출현은 앞으로 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모색이 이루어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옛 사회주의 나라들의 경험이 보여주듯 경제 재건과 개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정치개혁 없이 경제개혁은 불가능하다. 바로 수령사회주의체제의 유지를 위해 추구되는 북한 경제개혁의 한계다. 그럼에도 북한식의 개방과 개혁 정책은 시장과 사회의 형성을 통해 장기적으로 정치개혁에 대한 갈증을 키울 것이다.

시장경제와 시민사회의 맹아가 보인다
분명 북한에는 시장경제와 시민사회의 맹아가 보인다. 그것은 경제위기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자 또한 경제개혁의 불가피한 결과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북한은 좋건 싫건 자본주의에 의한 물질적 토대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회주의의 실리 모색을 위한 자본주의와의 제한적 동거로 집약되는 이러한 북한의 미래는 밝지 않다. 왜냐하면 물적 토대 재건과 개선만을 위한 정치주의에 의해서는 경제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을 체제전환을 위한 물적 토대의 마련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수령적 세습체제아래에서 주체사상이 체제전환을 향한 개방성과 유연성을 보이기는 거의 어렵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핵무기 포기를 전제로 체제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도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제한된 경제개혁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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