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발언이 간첩과 빨치산 활동에 대한 정치적 면죄부를 선언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던 세력을 비호한 것이 아닌 지 묻고 싶다”(한나라당 임태희 대변인)
“우리는 일하는 여름을 보내는 개미처럼 민생으로 계속 갈 것이며, 사상전을 벌이며 놀고먹는 한나라당 베짱이에게 어떤 겨울이 올지 궁금하다”(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
여의도는 시끄럽다.
이념과 가치, 철학과 정책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치보다 겉도는 ‘말의 정치’가 무성할 때면 더욱 그렇다. 이 한가운데 항상 존재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바로 ‘대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당의 이익을 위해 피터지게 경쟁한다. 때로는 독이 되고 때로는 약이 되는 경쟁이다.
일반 조직과 달리 정당 대변인의 성격은 매우 독특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변인들은 ‘정치적 맷집’을 키우며 유명정치인으로 발돋움하기도 한다. 정동영·남경필 의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들이 치러야 하는 정치수업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과거와 현재
“최근 정치가 신문 중심에서 방송 중심으로 가는 현상 때문에 대변인들의 특징도 변하는 것 같습니다.”
언론인 출신인 열린우리당 박영선 원내대변인은 최근 대변인들이 ‘내용보다는 이미지로 흐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과거와 달리 신문보다 방송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고, 따라서 사회 현상에 대한 피드백이 방송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치도 거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뜻이다.
독특한 언어 구사로 대변인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이미지 차용”이라고 지적한다.
이 원내대표는 “과거와 다른 최근의 특징은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의 유명인사나 인기인을 대변인에 기용하는 일이 무척 늘었다는 점”이라며 “정치가 늘 식상함을 주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치권 바깥의 인기와 지명도를 차용하려는 것이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결국 정치현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특히 야당의 경우, 정당의 웬만한 결정은 대변인이 하고 정당이 그것을 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정당이 오히려 대변인의 대변인 노릇을 했던 것.
또한 과거에는 지금처럼 ‘초선 일색’이 아니라 재선 이상급의 정치인들이 대변인을 맡았다. 그 ‘무게감’ 때문인지 당시 대변인들이 정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와 관련 16대 국회 첫 여당 대변인을 지낸 열린우리당 박병석 의원은 “과거 대변인들은 당의 주요 의제를 설정해 나가는 핵심 구성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를 감동시켜라’
“요즘 같은 세상에 중년 남녀가 호텔에서, 그것도 대낮에 1시간씩이나 단 둘이 만났다는 게 참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지난 3월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문재인 대통령 대리인단 간사가 만난 것에 대해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내놓은 ‘논평’이다.
당시 이 논평을 접했던 다수의 국민들은 ‘촌철살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보다 ‘저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논평에서 묻어나는 나름의 개성도 좋지만, 핵심은 국민들이 가장 편하게 듣고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을 망각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 이낙연 대표는 ‘소비자론’을 제시한다. 즉 “가장 중요한 역할은 ‘논평보다 설명’”이며, “어떤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팔 듯, ‘무심한 보통 국민’들에게 당의 입장을 쉽게 설명하고 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져오는 것이 대변인의 승부”라고 강조했다.
회사에 비유한다면, 물건을 파는 사람(대변인)은 자기 회사(자당)도 경쟁회사(상대 당)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일반 국민)를 바라보며 이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변인, 그들의 ‘고뇌’
직업상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변인. 이들이 다소 화려하게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많다.
영국 신사와 같은 면모로 일각에서는 ‘너무 점잖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던 한나라당 박 진 전 대변인은 올 초 대변인직을 그만두며 인간적인 고뇌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박 의원은 “개인적인 소신과 당의 입장이 같지 않을 때 인간적으로 고민과 갈등을 겪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런 점은 많은 대변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도 “개인적인 의견이 다를 때 무척 힘들다”며 “그렇다고 일일이 내 의견을 따로 말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싸우고 싶지 않아도 싸워야 하는 대변인의 ‘운명’ 때문에 고달프기도 하다.
김현미 대변인은 “정치권에 들어오면 대변인이 단순한 ‘전달자’에 그칠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며 “모든 말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정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고 밝혔다.
“대변인, 부대변인 할 것 없이 대부분은 소송에 열댓 개 씩 걸려있어요. 나중에 보면 검찰청 들락거리고... 저도 한 10개 정도 걸렸던 적이 있었죠. 대변인에게 이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돼버렸습니다.”
이어진 김 대변인의 말은 ‘그들만의 애환’이 무엇인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대변인들은 잠재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되는 경우도 있지만 거꾸로 대변인이라는 정치수업을 통해 대중정치인으로서 능력을 배가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변인을 하면서 내가 인간이 되더라”고 회고한 모 정치인의 말이 귓가를 맴도는 이유다.
대변인 출신 정치인들이 후에 얻게 되는 나름의 성과는, 바로 이같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한 뒤 찾아오는 정당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이숙현 기자 shlee@naeil.com
“우리는 일하는 여름을 보내는 개미처럼 민생으로 계속 갈 것이며, 사상전을 벌이며 놀고먹는 한나라당 베짱이에게 어떤 겨울이 올지 궁금하다”(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
여의도는 시끄럽다.
이념과 가치, 철학과 정책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치보다 겉도는 ‘말의 정치’가 무성할 때면 더욱 그렇다. 이 한가운데 항상 존재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바로 ‘대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당의 이익을 위해 피터지게 경쟁한다. 때로는 독이 되고 때로는 약이 되는 경쟁이다.
일반 조직과 달리 정당 대변인의 성격은 매우 독특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변인들은 ‘정치적 맷집’을 키우며 유명정치인으로 발돋움하기도 한다. 정동영·남경필 의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들이 치러야 하는 정치수업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과거와 현재
“최근 정치가 신문 중심에서 방송 중심으로 가는 현상 때문에 대변인들의 특징도 변하는 것 같습니다.”
언론인 출신인 열린우리당 박영선 원내대변인은 최근 대변인들이 ‘내용보다는 이미지로 흐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과거와 달리 신문보다 방송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고, 따라서 사회 현상에 대한 피드백이 방송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치도 거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뜻이다.
독특한 언어 구사로 대변인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이미지 차용”이라고 지적한다.
이 원내대표는 “과거와 다른 최근의 특징은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의 유명인사나 인기인을 대변인에 기용하는 일이 무척 늘었다는 점”이라며 “정치가 늘 식상함을 주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치권 바깥의 인기와 지명도를 차용하려는 것이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결국 정치현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특히 야당의 경우, 정당의 웬만한 결정은 대변인이 하고 정당이 그것을 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정당이 오히려 대변인의 대변인 노릇을 했던 것.
또한 과거에는 지금처럼 ‘초선 일색’이 아니라 재선 이상급의 정치인들이 대변인을 맡았다. 그 ‘무게감’ 때문인지 당시 대변인들이 정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와 관련 16대 국회 첫 여당 대변인을 지낸 열린우리당 박병석 의원은 “과거 대변인들은 당의 주요 의제를 설정해 나가는 핵심 구성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를 감동시켜라’
“요즘 같은 세상에 중년 남녀가 호텔에서, 그것도 대낮에 1시간씩이나 단 둘이 만났다는 게 참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지난 3월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문재인 대통령 대리인단 간사가 만난 것에 대해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내놓은 ‘논평’이다.
당시 이 논평을 접했던 다수의 국민들은 ‘촌철살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보다 ‘저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논평에서 묻어나는 나름의 개성도 좋지만, 핵심은 국민들이 가장 편하게 듣고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을 망각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 이낙연 대표는 ‘소비자론’을 제시한다. 즉 “가장 중요한 역할은 ‘논평보다 설명’”이며, “어떤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팔 듯, ‘무심한 보통 국민’들에게 당의 입장을 쉽게 설명하고 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져오는 것이 대변인의 승부”라고 강조했다.
회사에 비유한다면, 물건을 파는 사람(대변인)은 자기 회사(자당)도 경쟁회사(상대 당)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일반 국민)를 바라보며 이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변인, 그들의 ‘고뇌’
직업상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변인. 이들이 다소 화려하게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많다.
영국 신사와 같은 면모로 일각에서는 ‘너무 점잖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던 한나라당 박 진 전 대변인은 올 초 대변인직을 그만두며 인간적인 고뇌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박 의원은 “개인적인 소신과 당의 입장이 같지 않을 때 인간적으로 고민과 갈등을 겪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런 점은 많은 대변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도 “개인적인 의견이 다를 때 무척 힘들다”며 “그렇다고 일일이 내 의견을 따로 말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싸우고 싶지 않아도 싸워야 하는 대변인의 ‘운명’ 때문에 고달프기도 하다.
김현미 대변인은 “정치권에 들어오면 대변인이 단순한 ‘전달자’에 그칠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며 “모든 말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정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고 밝혔다.
“대변인, 부대변인 할 것 없이 대부분은 소송에 열댓 개 씩 걸려있어요. 나중에 보면 검찰청 들락거리고... 저도 한 10개 정도 걸렸던 적이 있었죠. 대변인에게 이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돼버렸습니다.”
이어진 김 대변인의 말은 ‘그들만의 애환’이 무엇인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대변인들은 잠재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되는 경우도 있지만 거꾸로 대변인이라는 정치수업을 통해 대중정치인으로서 능력을 배가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변인을 하면서 내가 인간이 되더라”고 회고한 모 정치인의 말이 귓가를 맴도는 이유다.
대변인 출신 정치인들이 후에 얻게 되는 나름의 성과는, 바로 이같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한 뒤 찾아오는 정당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이숙현 기자 s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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