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제 중동지역의 사고와 사망소식에는 습관이라도 된 듯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중동지역 문화의 ‘변천’과 ‘몰락’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온 인류 공동의 재산이며 노력의 결실임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문화는 소외되고 있다. /편집자주
<이라크>
포화 속 신음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참수’된 바빌론 사자상 … 문화재 1만4천점 약탈
지난해 폭도들의 무차별 약탈로 이라크 박물관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니게 되었다. 1년 만에 찾은 박물관은 깨끗이 정리된 상태였으나 많은 전시대가 텅 빈 채 방치되어 있었다. 조각상 진열장에는 안내카드 한 장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바빌론문명 전시관을 채우고 있던 5천년 역사의 고성 우루크의 수메르니아인 군화와 검 역시 이미 약탈당하고 없었다. 다행히 함무라비법전의 석조 복제품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었던 관계로 약탈자들의 손을 벗어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약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시물의 훼손이다. 4천년이 넘은 바빌론 사자토(土)상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등 다수의 조각상이 파손되었다. 박물관 직원은 “약탈자들은 무겁거나 옮기기 힘든 문화재는 훼손시켰는데 이보다 가슴 아프고 분노가 치미는 일은 없다”고 한숨지었다. 고대 이집트 도둑이 법로(法老)의 금가면과 금장신구들을 녹여 금덩이를 만들었던 것과 같이, 현대사회에도 인류문명에 무지한 날강도들이 있다.
이라크 유물 손실에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이라크가 4대 문명 중 최고(古)로 6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자 세계적 유산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박물관 직원들이 전쟁 전 옮기기 쉬운 보물들을 비밀저장소에 숨겨 약탈 손실이 그나마 적은 것이라고 했다.
박물관 직원들은 전쟁 발발 후 연료가 끊겨 나무와 대추야자나뭇잎으로 불을 피워야 하는 악조건에서 24시간 교대근무를 서는 등 문화재 사수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박물관 부근에서 이라크군과 미군이 교전을 벌여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박물관이 무방비로 노출되자 3일 간에 걸쳐 무자비한 약탈이 자행되었다.
이라크박물관은 당시 약탈로 1만4000여 점의 문화재를 도둑맞았고 회수한 물품은 그 중 5000여점이다. 미국에서 1000점, 요르단에서 700점, 프랑스에서 500점, 스위스에서 250점이 회수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터키, 이란 등은 자국으로 유입된 이라크 유물의 회수와 반환에 소극적을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물관 뿐 아니라 유적지들의 약탈과 훼손도 큰 문제다. 이라크의 치안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현존 유적지의 보호는 물론 새로운 발굴탐사가 거의 불가능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연구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작년 5월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총 400만 달러의 박물관 복구자금이 조성되어 세계인의 이라크 유산보존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박물관은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전기회로, 조명, 에어컨 등 여러 시설과 인터넷 설치작업이 진행 중이다. 복구작업은 이탈리아 전문가들의 기술자문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보수작업에만 최저 5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황은하·윤명지 리포터 china@naeil.com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불교유적 집중파괴
바미얀석불·고미술품 등 수난 … 복구작업 더뎌
2001년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수십세기 이상 존재하다 파괴된 역사와 문화는 복구되지 않고 있다.
당시 아프간에서 파괴된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바미얀 석불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국무부는 500명의 경찰을 동원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유산 보호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바미얀 석불을 포함한 문화유산들이 다시 한번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바미얀 석불이 파괴되었을 때, 주변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그 잔해를 기념품으로 하나씩 주어 갔다.
현재 정부는 불상주변에 울타리를 만들고 문화유산에 대한 더 이상의 파괴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복구작업은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미얀 석굴의 문화유산적 가치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김 전대통령은 바미얀 석불이 파괴되기 전인 2001년 3월, “바미얀 석불을 포함한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불상들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보존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유엔에 보내, 탈레반 정권의 문화유산 파괴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사이더 마하도모 라신 아프간 문화정보부 장관도 “내 인생에 가장 괴로웠던 시간은 바미얀 석불의 파괴소식을 들었을 때”라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2003년도 제27차 세계유산문화위원회에서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 석불을 ‘세계문화유산’과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동시에 등록했다.
바미얀에는 2개의 입불(서있는 불상)과 1개의 와불(누워있는 불상)로 구성된 3개의 불상이 있었으나, 입불 2개는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와불은 탈레반 정권 붕괴 뒤인 2002년에 발견되어 파괴를 면했다. 와불은 중국 승려로 서유기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묘사된 불상으로, 높이 200m의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파괴된 기존의 입불이 높이가 55m, 38m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많은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모인 아프가니스탄 고고학탐사대가 탐사와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3년도 일본연구팀의 복구작업 중에는 불교경전이 발굴되기도 했다. 하지만 라신 장관은 탐사복구작업에 회의를 나타냈다. 그는 “보호조치와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복인지 화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고대미술품 2700여점도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됐다. 목격자들은 탈레반 정권이 자신들이 믿는 신을 모욕한다며, 미술작품을 파괴했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역사학자 야햐 모헤브자다는 “탈레반 병사들이 큰 망치로 미술품을 파괴했다”며 “미술품 파괴를 막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4년에 출판한 관광안내책자를 뒤져보지 않으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재를 찾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고고학자 압둘 라우프 자케르는 “탈레반이 집권한 1996년부터 3년 동안은 이슬람 율법을 극단적으로 해석한 정부에 의해 서양문화가 배척됐다”고 말했다.
/황은하 리포터 china@naeil.com
<팔레스타인>
최고 유행음악은 공습경고
장례식이 문화행사 … 복장으로 주권 상징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고 매일매일 죽음의 검은 그림자와 마주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인 문화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장례는 팔레스타인의 중요한 문화행사다. 급진세력들이 주도하는 장례식에서 평범한 팔레스타인 시민들도 행렬에 끼어 울분을 토해낸다.
이스라엘 탱크가 유니스로 진입할 때 ‘아만 파리스’라는 아이가 자기 집 문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팔레스타인측은 탱크가 ‘무차별 발사’를 했다고 하고 이스라엘측은 누군가 탱크를 공격했기 때문에 방어차원에서 응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누가 먼저 쏘았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파리스의 장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장례는 시신을 묘지로 보내는 간단한 행사가 아니다. 먼저 거리를 시위한 뒤 영구를 집으로 옮겨 가족과 영결식을 한다. 그다음 시위행렬은 이슬람사원으로 가서 죽은이를 위해 기도한다. 기도가 끝나면 장례행렬은 시신을 묘지로 옮겨 안장을 하는 긴 절차를 거친다.
장례식에 시위절차가 생기면서부터 장례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이 힘을 과시하는 장으로 자리잡았다. 팔레스타인국기를 두른 뒤 파리스의 시체는 들것 위에 놓여지고 수천명의 주민들이 병원 밖에서 시신을 기다린다. 녹색, 검은색, 노란색의 깃발들이 휘날린다. 녹색은 하마스를, 검정색은 지하드를, 노란색은 파타하를 상징한다.
영안실 문이 열리면서 시신을 담은 들것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움직인다. 수없이 많은 손길들이 머리 위의 ‘어린 열사’ 파리스의 몸을 만지고 사람들의 무리는 순간 술렁댄다.
‘땅땅땅’하는 세발의 총성과 함께 시위가 시작된다. 트럭 한대가 앞장서 길을 인도하면, 파리스의 시신을 둘러멘 사람들이 그 뒤를 잇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 “알라는 위대하다.” 확성기에서 구호가 흘러나오면 거리의 모든 이들이 따라 외치고, 이따금 총소리도 들려온다.
‘파리스는 열사다!’ 옆모습을 그린 초상화에서 파리스는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찬란한 얼굴, 그 뒤로 꽃과 예루살렘의 황금사원이 보인다. 열사의 초상화는 장례문화의 중요한 소품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화는 동일한 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문자에서 음식 전통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복장을 통해서 팔레스타인들은 그들이 영토의 소유권자임을 나타내고자 한다. 옷 가게에는 흰색 붉은색 녹색 분홍색 검정색 등 수많은 색상의 아랍 두루마기들이 걸려있다. 가게주인은 각각의 색상이 팔레스타인인의 서로 다른 지역을 상징한다고 설명해준다. 과거 팔레스타인은 도시마다 심지어 작은 마을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두루마기만을 입었다고 한다.
비상사태는 일상의 모든 생활양식을 바꾼다. ‘자유의 목소리’방송국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위해 무장헬리콥터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때 폭격소리가 타이틀곡으로 나온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자주 당하는 가자지구에서 ‘공습경고’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현지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자유의 목소리’방송에서 ‘투투투’ 타이틀곡이 울리면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앵커의 역할은 뉴스방송 외에도 공습경보를 통해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공습이 끝난 뒤에는 청취자들에게 “사고현장에 구경하러 가지말고 교통이 막히지 않도록 경찰의 지시에 따라줄 것”을 방송한다. 팔레스타인의 공습경보는 다른 나라의 교통방송과 같다.
/황은하 리포터 china@naeil.com
<이스라엘>
개방적이지만 팔레스타인엔 배타적
농촌 곳곳까지 예술조각품 이스라엘문화는 여전히 대학살의 아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테러’까지 더해 더할나위 없이 불안하다. 4천여년의 문명에 2500년간 고향을 등진 이별, 100년 유대복귀운동과 반세기가 넘는 생존과 발전의 국가발전사 등이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종교충돌과 영토분쟁이라는 선혈의 낙인이 찍혀있다.
이스라엘은 ‘예술가 과잉’현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농촌과 마을 곳곳에서 예술조각품을 볼 수 있다. 황량한 야외뿐 아니라 심지어 길가에 모아놓은 돌멩이들에서도 예술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지뢰위험’구역을 표기해놓은 고지대에도 전쟁이 남긴 고사포가 방치된채 예술품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엘 회화와 조소는 국제적으로 상당한 지명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추상파화가들의 작품은 세계소장전문가들의 선망대상이다. 예술가들은 4000여군데의 역사유적지에서 창작의 영감을 찾고, 성경이야기와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기록한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 줄곧 전쟁상태에 처해있으며 최근 몇년간 끊임없는 테러습격을 당하고 있다. 이런 생존환경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현실에서 도피하게 된다.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초현실과 추상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고등학교 학업을 마친후 우선 군복무를 해야 한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이며, 퇴역후 복학하거나 대학교에 진학한다. 일부 명절은 이들이 자신의 정서를 폭발시키고 자아를 표현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유대교의 대표적 명절의 하나인 부림절은 사실상 카니발이다. 사람들은 기상천외한 화장과 복장을 하고 유대인 대도살에서 벗어났음을 경축한다. 종교색채가 농후한 예루살렘마저 예외가 아니다.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이트에서 밤새 춤을 추거나 번화한 거리에서 떼를 지어 행진한다. 정신없이 뛰놀면서 공포의 습격과 어두운 그림자속의 생활에서 비롯된 억압된 정서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카니발 외에도 농구를 통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중요한 시합이 있을 경우 체육장뿐 아니라 술집에도 사람들로 넘친다. 체육장 밖의 경찰과 술집문어귀의 보안인원들도 라디오를 통해 시합설명을 놓치지 않는다.
사실상, 전쟁과 자살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인들은 이미 초월한 듯 태연하기만 하다. “두려울 게 없다. 이스라엘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전쟁으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많다”는 게 그들의 해석이다.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이민 국가로서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온 이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생활환경의 관계로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동시에 다양한 언어구사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문화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중심거리에는 세계 유수오케스트라의 공연과 동성애자들의 파티 포스터가 눈에 띈다.
이렇게 다양한 이민기반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전통을 창조 계승해가는 이스라엘이지만 팔레스타인문화만은 수용할 수 없다는 배타적 태도다.
/황은하 리포터 china@naeil.com분쟁으로 불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아프가니스탄>이라크>
<이라크>
포화 속 신음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참수’된 바빌론 사자상 … 문화재 1만4천점 약탈
지난해 폭도들의 무차별 약탈로 이라크 박물관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니게 되었다. 1년 만에 찾은 박물관은 깨끗이 정리된 상태였으나 많은 전시대가 텅 빈 채 방치되어 있었다. 조각상 진열장에는 안내카드 한 장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바빌론문명 전시관을 채우고 있던 5천년 역사의 고성 우루크의 수메르니아인 군화와 검 역시 이미 약탈당하고 없었다. 다행히 함무라비법전의 석조 복제품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었던 관계로 약탈자들의 손을 벗어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약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시물의 훼손이다. 4천년이 넘은 바빌론 사자토(土)상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등 다수의 조각상이 파손되었다. 박물관 직원은 “약탈자들은 무겁거나 옮기기 힘든 문화재는 훼손시켰는데 이보다 가슴 아프고 분노가 치미는 일은 없다”고 한숨지었다. 고대 이집트 도둑이 법로(法老)의 금가면과 금장신구들을 녹여 금덩이를 만들었던 것과 같이, 현대사회에도 인류문명에 무지한 날강도들이 있다.
이라크 유물 손실에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이라크가 4대 문명 중 최고(古)로 6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자 세계적 유산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박물관 직원들이 전쟁 전 옮기기 쉬운 보물들을 비밀저장소에 숨겨 약탈 손실이 그나마 적은 것이라고 했다.
박물관 직원들은 전쟁 발발 후 연료가 끊겨 나무와 대추야자나뭇잎으로 불을 피워야 하는 악조건에서 24시간 교대근무를 서는 등 문화재 사수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박물관 부근에서 이라크군과 미군이 교전을 벌여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박물관이 무방비로 노출되자 3일 간에 걸쳐 무자비한 약탈이 자행되었다.
이라크박물관은 당시 약탈로 1만4000여 점의 문화재를 도둑맞았고 회수한 물품은 그 중 5000여점이다. 미국에서 1000점, 요르단에서 700점, 프랑스에서 500점, 스위스에서 250점이 회수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터키, 이란 등은 자국으로 유입된 이라크 유물의 회수와 반환에 소극적을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물관 뿐 아니라 유적지들의 약탈과 훼손도 큰 문제다. 이라크의 치안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현존 유적지의 보호는 물론 새로운 발굴탐사가 거의 불가능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연구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작년 5월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총 400만 달러의 박물관 복구자금이 조성되어 세계인의 이라크 유산보존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박물관은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전기회로, 조명, 에어컨 등 여러 시설과 인터넷 설치작업이 진행 중이다. 복구작업은 이탈리아 전문가들의 기술자문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보수작업에만 최저 5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황은하·윤명지 리포터 china@naeil.com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불교유적 집중파괴
바미얀석불·고미술품 등 수난 … 복구작업 더뎌
2001년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수십세기 이상 존재하다 파괴된 역사와 문화는 복구되지 않고 있다.
당시 아프간에서 파괴된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바미얀 석불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국무부는 500명의 경찰을 동원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유산 보호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바미얀 석불을 포함한 문화유산들이 다시 한번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바미얀 석불이 파괴되었을 때, 주변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그 잔해를 기념품으로 하나씩 주어 갔다.
현재 정부는 불상주변에 울타리를 만들고 문화유산에 대한 더 이상의 파괴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복구작업은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미얀 석굴의 문화유산적 가치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김 전대통령은 바미얀 석불이 파괴되기 전인 2001년 3월, “바미얀 석불을 포함한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불상들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보존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유엔에 보내, 탈레반 정권의 문화유산 파괴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사이더 마하도모 라신 아프간 문화정보부 장관도 “내 인생에 가장 괴로웠던 시간은 바미얀 석불의 파괴소식을 들었을 때”라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2003년도 제27차 세계유산문화위원회에서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 석불을 ‘세계문화유산’과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동시에 등록했다.
바미얀에는 2개의 입불(서있는 불상)과 1개의 와불(누워있는 불상)로 구성된 3개의 불상이 있었으나, 입불 2개는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와불은 탈레반 정권 붕괴 뒤인 2002년에 발견되어 파괴를 면했다. 와불은 중국 승려로 서유기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묘사된 불상으로, 높이 200m의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파괴된 기존의 입불이 높이가 55m, 38m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많은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모인 아프가니스탄 고고학탐사대가 탐사와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3년도 일본연구팀의 복구작업 중에는 불교경전이 발굴되기도 했다. 하지만 라신 장관은 탐사복구작업에 회의를 나타냈다. 그는 “보호조치와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복인지 화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고대미술품 2700여점도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됐다. 목격자들은 탈레반 정권이 자신들이 믿는 신을 모욕한다며, 미술작품을 파괴했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역사학자 야햐 모헤브자다는 “탈레반 병사들이 큰 망치로 미술품을 파괴했다”며 “미술품 파괴를 막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4년에 출판한 관광안내책자를 뒤져보지 않으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재를 찾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고고학자 압둘 라우프 자케르는 “탈레반이 집권한 1996년부터 3년 동안은 이슬람 율법을 극단적으로 해석한 정부에 의해 서양문화가 배척됐다”고 말했다.
/황은하 리포터 china@naeil.com
<팔레스타인>
최고 유행음악은 공습경고
장례식이 문화행사 … 복장으로 주권 상징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고 매일매일 죽음의 검은 그림자와 마주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인 문화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장례는 팔레스타인의 중요한 문화행사다. 급진세력들이 주도하는 장례식에서 평범한 팔레스타인 시민들도 행렬에 끼어 울분을 토해낸다.
이스라엘 탱크가 유니스로 진입할 때 ‘아만 파리스’라는 아이가 자기 집 문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팔레스타인측은 탱크가 ‘무차별 발사’를 했다고 하고 이스라엘측은 누군가 탱크를 공격했기 때문에 방어차원에서 응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누가 먼저 쏘았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파리스의 장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장례는 시신을 묘지로 보내는 간단한 행사가 아니다. 먼저 거리를 시위한 뒤 영구를 집으로 옮겨 가족과 영결식을 한다. 그다음 시위행렬은 이슬람사원으로 가서 죽은이를 위해 기도한다. 기도가 끝나면 장례행렬은 시신을 묘지로 옮겨 안장을 하는 긴 절차를 거친다.
장례식에 시위절차가 생기면서부터 장례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이 힘을 과시하는 장으로 자리잡았다. 팔레스타인국기를 두른 뒤 파리스의 시체는 들것 위에 놓여지고 수천명의 주민들이 병원 밖에서 시신을 기다린다. 녹색, 검은색, 노란색의 깃발들이 휘날린다. 녹색은 하마스를, 검정색은 지하드를, 노란색은 파타하를 상징한다.
영안실 문이 열리면서 시신을 담은 들것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움직인다. 수없이 많은 손길들이 머리 위의 ‘어린 열사’ 파리스의 몸을 만지고 사람들의 무리는 순간 술렁댄다.
‘땅땅땅’하는 세발의 총성과 함께 시위가 시작된다. 트럭 한대가 앞장서 길을 인도하면, 파리스의 시신을 둘러멘 사람들이 그 뒤를 잇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 “알라는 위대하다.” 확성기에서 구호가 흘러나오면 거리의 모든 이들이 따라 외치고, 이따금 총소리도 들려온다.
‘파리스는 열사다!’ 옆모습을 그린 초상화에서 파리스는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찬란한 얼굴, 그 뒤로 꽃과 예루살렘의 황금사원이 보인다. 열사의 초상화는 장례문화의 중요한 소품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화는 동일한 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문자에서 음식 전통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복장을 통해서 팔레스타인들은 그들이 영토의 소유권자임을 나타내고자 한다. 옷 가게에는 흰색 붉은색 녹색 분홍색 검정색 등 수많은 색상의 아랍 두루마기들이 걸려있다. 가게주인은 각각의 색상이 팔레스타인인의 서로 다른 지역을 상징한다고 설명해준다. 과거 팔레스타인은 도시마다 심지어 작은 마을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두루마기만을 입었다고 한다.
비상사태는 일상의 모든 생활양식을 바꾼다. ‘자유의 목소리’방송국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위해 무장헬리콥터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때 폭격소리가 타이틀곡으로 나온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자주 당하는 가자지구에서 ‘공습경고’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현지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자유의 목소리’방송에서 ‘투투투’ 타이틀곡이 울리면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앵커의 역할은 뉴스방송 외에도 공습경보를 통해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공습이 끝난 뒤에는 청취자들에게 “사고현장에 구경하러 가지말고 교통이 막히지 않도록 경찰의 지시에 따라줄 것”을 방송한다. 팔레스타인의 공습경보는 다른 나라의 교통방송과 같다.
/황은하 리포터 china@naeil.com
<이스라엘>
개방적이지만 팔레스타인엔 배타적
농촌 곳곳까지 예술조각품 이스라엘문화는 여전히 대학살의 아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테러’까지 더해 더할나위 없이 불안하다. 4천여년의 문명에 2500년간 고향을 등진 이별, 100년 유대복귀운동과 반세기가 넘는 생존과 발전의 국가발전사 등이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종교충돌과 영토분쟁이라는 선혈의 낙인이 찍혀있다.
이스라엘은 ‘예술가 과잉’현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농촌과 마을 곳곳에서 예술조각품을 볼 수 있다. 황량한 야외뿐 아니라 심지어 길가에 모아놓은 돌멩이들에서도 예술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지뢰위험’구역을 표기해놓은 고지대에도 전쟁이 남긴 고사포가 방치된채 예술품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엘 회화와 조소는 국제적으로 상당한 지명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추상파화가들의 작품은 세계소장전문가들의 선망대상이다. 예술가들은 4000여군데의 역사유적지에서 창작의 영감을 찾고, 성경이야기와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기록한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 줄곧 전쟁상태에 처해있으며 최근 몇년간 끊임없는 테러습격을 당하고 있다. 이런 생존환경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현실에서 도피하게 된다.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초현실과 추상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고등학교 학업을 마친후 우선 군복무를 해야 한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이며, 퇴역후 복학하거나 대학교에 진학한다. 일부 명절은 이들이 자신의 정서를 폭발시키고 자아를 표현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유대교의 대표적 명절의 하나인 부림절은 사실상 카니발이다. 사람들은 기상천외한 화장과 복장을 하고 유대인 대도살에서 벗어났음을 경축한다. 종교색채가 농후한 예루살렘마저 예외가 아니다.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이트에서 밤새 춤을 추거나 번화한 거리에서 떼를 지어 행진한다. 정신없이 뛰놀면서 공포의 습격과 어두운 그림자속의 생활에서 비롯된 억압된 정서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카니발 외에도 농구를 통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중요한 시합이 있을 경우 체육장뿐 아니라 술집에도 사람들로 넘친다. 체육장 밖의 경찰과 술집문어귀의 보안인원들도 라디오를 통해 시합설명을 놓치지 않는다.
사실상, 전쟁과 자살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인들은 이미 초월한 듯 태연하기만 하다. “두려울 게 없다. 이스라엘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전쟁으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많다”는 게 그들의 해석이다.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이민 국가로서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온 이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생활환경의 관계로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동시에 다양한 언어구사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문화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중심거리에는 세계 유수오케스트라의 공연과 동성애자들의 파티 포스터가 눈에 띈다.
이렇게 다양한 이민기반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전통을 창조 계승해가는 이스라엘이지만 팔레스타인문화만은 수용할 수 없다는 배타적 태도다.
/황은하 리포터 china@naeil.com분쟁으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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