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통합·겸손 … 드골, 비전의 리더십

참여정부 1년 6개월·탄핵복귀 100일, 노 대통령 역사인물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지역내일 2004-08-24 (수정 2004-08-24 오후 3:12:38)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에서 돌아온 지 100일이 되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도 1년 6개월이 지났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직무정지에 들어가면서 이순신 장군의 고독한 내면을 그린 소설 《칼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도 이때 읽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드골’을 쓴 외교통상부 심의관 이주흠씨를 청와대 리더십비서관에 임명했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에는 직접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을 펴냈다.
링컨과 드골 그리고 이순신. 노 대통령은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노 대통령이 만난 그들 =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인 노 대통령에게 미 합중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각별한 역사 인물이다. 노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성공한’ 링컨 대통령을 부각하며 후보시절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직접 펴냈다. 통합과 겸손의 리더십이 이 책의 주제다.
지난 95년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이 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만들어 분당했을 때 따라가지 않았던 김원기 이부영 노무현 등은 96년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를 만들었다. ‘3김의 분열주의’에 반대한 이들의 정치적 목표는 통합이었고, 노 대통령도 동·서 지역갈등의 극복을 정치의 중심 이슈로 삼았다.
이 책은 노무현이 대통령감이 되느냐 하는 세간의 의문을 해소하고 대통령감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프랑스 대통령 드골은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하면서 주목받았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정지에 내몰린 2004년 봄, 노 대통령은 ‘통념을 조롱하고 힘의 현실과 그 논리를 거부한 주동적 인간 드골의 이단(異端)의 리더십’에서 공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드골 리더십…》의 저자 이주흠 비서관은 “어떤 언론에서 프랑스와 우리는 다르다고 지적했던데 그러면 고전을 왜 읽는가”라며 지정학적으로 위기가 잠재되어 있는 우리가 드골의 리더십에서 구할 수 있는 ‘주동적 리더십’을 강조했다.
직무정지 기간 동안 《칼의 노래》를 다시 읽는 노 대통령을 보며 이순신의 절대 고독을 빗대어 노 대통령의 소명의식을 해석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일본군 뿐 아니라 자신의 수군을 의심하는 선조와 조정의 적의까지 감내하며 사명을 완수해야 했던 이순신이 노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노 대통령이 만나야 할 그들=노 대통령은 탄핵극복, 총선 승리 등을 통해 강력한 힘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복귀 후 100일이 지난 지금은 바닥을 헤어나지 못하는 국정 수행 지지도에 묶여 있다. 노 대통령이 배우고 공감했던 위인들은 현재의 노 대통령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링컨은 대통령에게 ‘당신이 읽었던 나의 특징을 그대로 실천하라’고 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 서문에 “편을 갈라서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고 나를 중심으로 단결하라고 하는 것은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링컨은 불의와 정의, 승리와 패배 같은 용어를 멀리하려 했다. 남과 북을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하고 자기의 고민을 끌어안듯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증오가 아닌 애정을, 내침이 아닌 관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노 대통령은 ‘인간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로 담담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링컨’과 ‘전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상대를 어떻게 껴안을지 구상하고 있는 링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통나무집 출신의 링컨은 재임 당시 ‘긴 팔 원숭이’로 조롱 당하기도 했으나 연방의 수호를 위해 정치적 반대자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그 결과 미합중국은 6·25 전쟁 못지 않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지만 해체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보 노무현’에게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 노 대통령이 ‘분열의 화신’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드골은 자신의 저서 《칼날》에서 “지도자가 지도자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비전에 있다”고 강조한다. 드골은 프랑스가 독일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괴뢰정권이 들어섰을 때 레지스탕스를 이끌며 프랑스를 2차 대전의 전승국으로 만들었고, 미·소 양국으로 갈라진 냉전시대에도 시종 독자적인 프랑스를 고집하여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과거사보다 지금 성공해야 =노무현 대통령의 비전은 무엇일까. 반칙이 통하지 않고 원칙이 승리하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그가 후보시절부터 이야기하는 ‘정치하는 이유’이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무엇일까. 너무 많아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많다.
노 대통령에게 집중된 과제가 없다는 것은 지지자들도 인정한다. 노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활동했던 한 기업체 간부는 “대통령이 뚜렷하고 집중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은 △반부패 투명사회 구축 △국가균형발전 △선진화를 위한 동북아 거점국가 건설에다 정부혁신을 더하여 4가지 주제에 ‘집중과 선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여전히 모든 과제에 우선하는 최우선 과제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순신은 “일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배우라”고 하지 않을까. 조정의 도움은커녕 박해받고 백의종군해야 했던 고독한 이순신은 도움 받을 곳이 연안의 백성들과 지리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육지 사람이었고, 함경도에서 여진족과 전투를 치렀던 육군이었다.
백의종군 후 열두 척의 배로 300여척 적과 맞서야 했던 그는 울돌목의 물길을 이용하여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다. 그는 전투의 방책을 묻는 권 율에게 “방책은 물가에 있든지 없든지 할 것입니다. 연안을 다 돌아보고 나서 말씀 올리겠사오이다”(칼의 노래 1편)라고 답한다. 안개 낀 연안을 돌며 전투를 할 때는 어김없이 늙은 어부를 함대의 선두에 태워 물길을 밝힌다.(칼의 노래 2편)
노 대통령은 민생 경제를 챙기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는 일정을 잡지 않는다. 그 시간에 정책을 만드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을 챙기는 노 대통령이 ‘해답을 알 수 없는 요구를 접했을 때’ 현장을 찾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답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이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세종이 아니라 태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임무를 규정한 노 대통령에 대해 한 측근 인사는 “노 대통령의 당선은 원칙이 성공하는 사회가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오히려 과거사 시비에 휩싸여 경제를 놓쳐 ‘역사와 정의가 밥먹여 주냐’는 패배주의를 다시 심화시킬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한 분명한 비전을 걸고 통합의 리더십으로 현장에서 배우는 노 대통령을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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