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명감 … ‘청산에 살어리랏다’

자연의 장엄함·사고의 긴장감 교차 … 암벽등반 유명한 인수봉서 종일 대기 // 가족적 분위기 자랑하는 10명의 대원 … “‘오만함’은 산악사고의 지름길”

지역내일 2004-08-30
<편집자 주="">
산행철인 요즘 하루 최대 15만명의 인파가 북한산을 찾는다. 북한산은 수도 서울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다 깎아지른 듯한 산세, 풍부한 유량(流量)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춰 국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오르기 쉬운 산이란 없는 법. 북한산의 아름답고 웅장한 산세 뒤엔 추락과 골절 등 위험이 상존한다. 지난해 북한산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 8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올해의 경우 8월까지만 6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일 새 없는 북한산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 평소 산행때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접질림이나 골절, 추락 등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할 때 찾게 되는 산악구조대가 바로 그것. 10명의 단촐한 인원으로 구성된 북한산 구조대는 산악사고를 당한 이에게는 구세주와 다름 없다.
여름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듯 화창한 날씨를 보인 29일, 기자는 북한산 인수봉에서 산악구조대의 하루를 체험했다. 최근 산행의 즐거움을 깨친 기자로서는 이번 체험이 취재 업무로서 보다는 선배의 뛰어난 기량을 등너머라도 배워보겠다는 치기어린 ‘지적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본 기사="">
백운대피소 옆 망바위에서 바라볼 때만 해도 암벽타기란 조금 어려운 수준의 산행으로만 느껴졌다. 직각에 가까운 80~90도의 깎아지른 산세와 최대 250여미터에 이르는 암벽길이가 두렵긴 했지만 줄(자일)을 연결하는 선두만 따라간다면 초보라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또한 ''남녀 할 것 없이 인수봉 암벽등반에 도전하는 200여명의 사람들, 그중에 내가 못낄소냐’ 하는 치기도 발동했다.
이런 기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김창곤 산악구조대 대장(36·서울북부경챁서·경사)이 날렵한 동작으로 암벽에 줄을 걸기 시작했다. 90여개의 등벽코스가 있다는 인수봉, 그 가운데 빨간 스프레이로 ''여정(女情)''이라고 쓰인 곳에서 난생 처음 암벽타기에 도전하게 됐다.
구조대 대원들이 챙겨준 허리띠와 신발, 송진가루 등 장비를 착용한 후 암벽앞에 섰다. "출발"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이용해 바위 틈(크랙)을 단단히 부여잡고 움푹 패인 곳을 찾아 몇차례 발을 내디뎠다. 10미터나 올랐을까. 올랐다기 보다 버둥거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선선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부는데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만 내려가고 싶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 아래서 줄을 잡아주는 대원에게 애원조로 말했다. 목소리는 가느다란데다 심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10분만에 상황종료. 땅에 내려와 장비를 풀어헤치는 기자에게 김 대장은 한마디했다. "백견이 불여일행(百見 不如一行)이지요."
구조대원들은 이런 힘든 암벽훈련을 거의 하루에 한번, 적어도 이틀에 한번씩은 꼭 한다. 암벽 중간에서 일어나는 추락사고가 많기 때문이다.

◆ 신뢰.협동감으로 뭉쳐야 구조 가능
북한산 산악구조대는 정규직원인 2명의 대장과 육군 소속인 8명의 전경 등 10명으로 구성돼있다. 단촐한 인원이다보니 위계질서의 엄격함보다는 가족적인 친근함이 두드러졌다. 그래서일까. 모두들 구릿빛 건강한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특히 김창곤 대장은 산을 오르내리며 만나는 등산객들에게 연신 안부를 전할만큼 여유 있어 보였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2년전 구조대를 맡은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산이 좋고 사람들을 돕는 게 좋아 경찰에 입문했다는 김 대장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생계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즐거운 사명감''인 셈. 8명의 대원들도 전경 입소교육을 마친 뒤 구조대에 자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조작업은 서로간의 신뢰와 협동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산이라는 지형적 특성상 한적한 곳에서 등을 떼밀거나 암벽타는 도중 위에서 줄을 끊어버리는 완전범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구조대에게는 ''One for all, all for one(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정신이 강조된다.
김 대장은 "선.후참 가릴 것 없이 돌아가면서 밥을 짓고 청소를 하는 등 모두가 형제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 24시간 긴장속 대기 ... "사명감 없인 못해요"
구조대의 으뜸 임무는 역시 등산객의 안전을 기하는 일이다. 암벽등반이나 암릉등반(릿지 : 기존 등산로 외에 경사가 가파른 바위만을 골라 걸어오르는 등산의 한 방법), 워킹등반 등 다양한 산행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사고후 처리를 전담한다. 특히 암벽타기 등산객이 많은 인수봉이나 암릉타기가 많은 염초봉 만경대는 요주의 장소이다. 올해 일어난 6건의 사망사고 가운데 자살 1건을 제외한 5건이 염초봉과 만경대에서 일어났다. 전문장비를 갖추고 암벽을 타는 인수봉의 경우 심각한 장애를 남기는 중상이 많다.
구조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백운대피소 옆 망바위에서 보낸다. 망바위에서는 인수봉을 지척에 두고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추락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즉각 출동이 가능하기 때문. 북한산의 중앙지점에 해당한다는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대원들은 사고장소가 멀 경우 최대 2시간 거리도 뛰어가야 한다. 한 구조대원은 "소방서 출동이 더 빠른 불광동쪽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이 구조대 지역"이라며 "보통 사람이 1시간 걸어가야할 거리를 대원들은 3분의 1로 단축, 20분만에 뛰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긴급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구조대라는 직업은 특히나 사명감이 중요하다. 추락 등 산에서의 사고는 등산객의 목숨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아 24시간 내내 긴장감의 연속이다. 김 대장은 "요즘같은 때는 비박이나 야영을 하는 등산객들이 많아 구조요청이 있을 경우 밤낮없이 출동한다"며 "산에서의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사명감 없이는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겸손해야 사고 막을 수 있어
김창곤 대장은 요즘 등산객들의 안전의식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암벽이나 암릉타기가 유행하고 있는 데 비례해 안전사고가 점차 늘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짜릿한 스릴을 즐기려면 그에 맞는 전문교육을 받거나 장비를 갖춰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암릉타기의 경우 줄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오르는 사례가 많아 고민이다.
김 대장은 "추락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보면 ''산 좀 탔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연의 웅장함 앞에 겸손할 줄 아는 자세는 나약한 인간이 꼭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라고 조언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취재후기>
현장체험에 들어가기 전 기자는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구조사고가 나면 헬기가 바로 출동하고, 덩달아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헬기를 타보겠구나'' 하는. 그러나 그것은 몽상이었다. 구조대원들은 사고가 나면 먼저 뛰어서 현장에 도착, 등산객의 상태를 파악한다. 환자를 엎고 가거나 부축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중상일 경우, 또는 사망했을 때에만 헬기를 요청한다.
기자가 현장체험을 실시한 29일은 다행히 별 다른 사건.사고가 나지 않았다. 물론 등산객들에게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지만 기자 역시 대원들의 재빠른 출동에 따라 나서지 않아 내심 안도했다. 3분의 1 축지법을 쓰는 대원들을 따라 나섰다가 오히려 헬기에 실려가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닥치지 않아서였다.
바쁜 업무시간을 할애해 기자에게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김창곤 대장 이하 전 대원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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