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한 직원이 은행내에서 투자자를 모집, 선물옵션 투자에 나섰다가 수십억원의 피해를 보고 잠적한 일이 발생했다. 그 전에는 우리은행 직원이 선물옵션 때문에 고객 돈에 손을 댔다가 피해를 보고 잠적한 사건도 있었다.
선물옵션은 레버리지(투자한 돈과 벌 수 있는 돈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투기성도 짙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큰 돈을 잃은 투자자는 ‘한 방에 만회하기 위해’ 선물옵션에 뛰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수익률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도 높다는 뜻.
1년여만에 선물에서만 3억5000만원을 손해본 서모씨 사례를 통해 개인 선물 투자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짚어봤다.
/편집자주
1998년 12월부터 선물 투자를 시작, 12개월여만에 총 3억5000만원을 날린 서모씨. 그는 속이 쓰라렸지만 ‘내 잘못’만 탓하고 4년 세월을 보냈다. 2004년 3월. 투자금의 일부를 댔고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면목은 없지만 3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날렸다고 설명은 해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거래 내역을 정리하던 서씨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주문과 거래 내역표에 표시된 주문이 틀린 것이다. 그 숫자는 선물 40계약이 넘었다. 어림 계산으로도 선물 40계약이면 40*70*50만원=14억원이 넘는다. (물론 선물은 계약금의 15%만 위탁증거금으로 내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돈은 2억원이지만).
서씨는 증권사에 따졌지만 증권사는 정상거래됐다고 말했다. 직접 지점까지 나와서 거래를 하고 갔잖느냐는 대답도 돌아왔다. 서씨 자신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흐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게다가 전산상의 오류도 발견됐다.
1998년 12월 선물거래를 했다면 당연히 거래대상은 1999년물이어야 한다. 선물이라는 게 미래에 있을 지수를 거래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래내역표에는 서씨가 1998년 12월에 선물 1998년 3월물을 거래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서씨는 더더욱 의심이 높아졌다. 그는 지금도 전산 조작이 있다고 믿고 있다. 만약 전산 장애라면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이 서씨 주장이다. 피해자가 자신 뿐 아니라 더욱 늘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은 서씨. 서씨는 S증권사 감사실을 상대로 민원을 넣는 한편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실에도 질의를 했다. 주문을 내지도 않은 선물 계약이 체결됐으며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됐는지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 민원 요지였다.
이에 대해 증권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증권사는 서씨가 돈을 잃고 나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생떼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S 증권사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통화에서 “서씨의 주문표도 갖고 있고 프로그램도 정상 작동됐다”고 말했다. 다만 전산상 자금결제 순서에서 아주 사소한 표기 잘못은 있었지만 무시할만한 정도라고 덧붙였다.
감독당국은 일단 전산 오류 민원에 대한 대질조사 등을 마치고 빠르면 다음주경에 민원 회신을 서씨에게 보낼 계획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양쪽 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S증권사는 서씨가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거래했던 증거만 내놓는다면 모든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서씨가 주문을 직접 냈던 매매 주문표만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9년을 1998년으로 표기한 것쯤은 단순 표기 잘못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증권사는 아직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일임 매매가 공공연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설사 서씨가 주문을 냈다 하더라도 서씨의 자필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분쟁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갈 모양이다. 서씨는 증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씨는 서씨대로, 증권사는 증권사대로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S증권 감사실 관계자는 “서씨가 손실이 나니까 뒤늦게 민원도 넣고 금감원 분쟁조정도 요구하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3월 25일 발송된 민원회신에서 “업무착오로 인해 결제처리가 지연되면서 예탁잔고에 차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법정에서 가릴 사안이기는 하지만 증권사도 결코 떳떳한 입장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이 관계자는 서씨가 냈던 주문에 대해 증명자료를 제시하기보다는 “고객께서 내방해서 매매하는 등 정상적인 선물매매를 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회신을 보내왔다.
이 모든 분쟁의 씨앗에는 일임 매매라는 열쇠가 숨어 있다. 선물옵션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이 거래에 익숙치 못한 고객들이 사실상 증권사 직원에게 매매를 내맡기는 것.
한 대형 증권사 선물옵션 담당 펀드매니저는 “개인 고객은 물론 심지어 법인 경리 담당자로 선물 거래내역서를 갖고와 얼마나 손실을 본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물어온다”고 말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돈을 투자하면서도 어디에 투자하고 얼만큼 수익이 났는지 정작 투자자는 모른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직원은 “밥 먹을 때는 몇 천원도 따지는 사람들이 선물 투자를 하면 몇 백만원을 우습게 생각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익숙치 못한 매매를 통해 큰 돈을 벌겠다는 투자자와, 그를 이용해 수수료를 챙겨보겠다는 증권사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탓이다.
이런 투자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서씨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오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선물옵션은 레버리지(투자한 돈과 벌 수 있는 돈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투기성도 짙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큰 돈을 잃은 투자자는 ‘한 방에 만회하기 위해’ 선물옵션에 뛰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수익률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도 높다는 뜻.
1년여만에 선물에서만 3억5000만원을 손해본 서모씨 사례를 통해 개인 선물 투자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짚어봤다.
/편집자주
1998년 12월부터 선물 투자를 시작, 12개월여만에 총 3억5000만원을 날린 서모씨. 그는 속이 쓰라렸지만 ‘내 잘못’만 탓하고 4년 세월을 보냈다. 2004년 3월. 투자금의 일부를 댔고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면목은 없지만 3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날렸다고 설명은 해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거래 내역을 정리하던 서씨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주문과 거래 내역표에 표시된 주문이 틀린 것이다. 그 숫자는 선물 40계약이 넘었다. 어림 계산으로도 선물 40계약이면 40*70*50만원=14억원이 넘는다. (물론 선물은 계약금의 15%만 위탁증거금으로 내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돈은 2억원이지만).
서씨는 증권사에 따졌지만 증권사는 정상거래됐다고 말했다. 직접 지점까지 나와서 거래를 하고 갔잖느냐는 대답도 돌아왔다. 서씨 자신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흐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게다가 전산상의 오류도 발견됐다.
1998년 12월 선물거래를 했다면 당연히 거래대상은 1999년물이어야 한다. 선물이라는 게 미래에 있을 지수를 거래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래내역표에는 서씨가 1998년 12월에 선물 1998년 3월물을 거래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서씨는 더더욱 의심이 높아졌다. 그는 지금도 전산 조작이 있다고 믿고 있다. 만약 전산 장애라면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이 서씨 주장이다. 피해자가 자신 뿐 아니라 더욱 늘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은 서씨. 서씨는 S증권사 감사실을 상대로 민원을 넣는 한편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실에도 질의를 했다. 주문을 내지도 않은 선물 계약이 체결됐으며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됐는지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 민원 요지였다.
이에 대해 증권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증권사는 서씨가 돈을 잃고 나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생떼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S 증권사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통화에서 “서씨의 주문표도 갖고 있고 프로그램도 정상 작동됐다”고 말했다. 다만 전산상 자금결제 순서에서 아주 사소한 표기 잘못은 있었지만 무시할만한 정도라고 덧붙였다.
감독당국은 일단 전산 오류 민원에 대한 대질조사 등을 마치고 빠르면 다음주경에 민원 회신을 서씨에게 보낼 계획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양쪽 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S증권사는 서씨가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거래했던 증거만 내놓는다면 모든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서씨가 주문을 직접 냈던 매매 주문표만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9년을 1998년으로 표기한 것쯤은 단순 표기 잘못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증권사는 아직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일임 매매가 공공연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설사 서씨가 주문을 냈다 하더라도 서씨의 자필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분쟁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갈 모양이다. 서씨는 증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씨는 서씨대로, 증권사는 증권사대로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S증권 감사실 관계자는 “서씨가 손실이 나니까 뒤늦게 민원도 넣고 금감원 분쟁조정도 요구하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3월 25일 발송된 민원회신에서 “업무착오로 인해 결제처리가 지연되면서 예탁잔고에 차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법정에서 가릴 사안이기는 하지만 증권사도 결코 떳떳한 입장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이 관계자는 서씨가 냈던 주문에 대해 증명자료를 제시하기보다는 “고객께서 내방해서 매매하는 등 정상적인 선물매매를 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회신을 보내왔다.
이 모든 분쟁의 씨앗에는 일임 매매라는 열쇠가 숨어 있다. 선물옵션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이 거래에 익숙치 못한 고객들이 사실상 증권사 직원에게 매매를 내맡기는 것.
한 대형 증권사 선물옵션 담당 펀드매니저는 “개인 고객은 물론 심지어 법인 경리 담당자로 선물 거래내역서를 갖고와 얼마나 손실을 본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물어온다”고 말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돈을 투자하면서도 어디에 투자하고 얼만큼 수익이 났는지 정작 투자자는 모른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직원은 “밥 먹을 때는 몇 천원도 따지는 사람들이 선물 투자를 하면 몇 백만원을 우습게 생각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익숙치 못한 매매를 통해 큰 돈을 벌겠다는 투자자와, 그를 이용해 수수료를 챙겨보겠다는 증권사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탓이다.
이런 투자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서씨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오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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