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군인들이 왜 죽어야 하나”

자이툰 부대 앞 파병반대 시위 현장에 가다

지역내일 2004-08-03
“파병에 대해서는 몰라요. 하지만 같은 또래 얘들끼리 왜 이래야 하는지”(경찰기동12중대원)
“왜 저 담 뒤에 있는 젊은 군인들이 죽으러 가야 합니까. 태극기에 뒤덮인 관은 싫습니다."(통일선봉대 학생)
“…”(20대 자이툰 부대원 추정)
경기도 광주시 매염리. 이웃 용인시와 경계를 맞닿은 이곳에는 한국 육군의 간판 부대인 백마부대가 있다. 해마다 6월이면 수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은 이곳에 때늦은 8월, 언론사 카메라와 차량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들고 있다. 이달 초 어느 날, 이라크에 추가 파병될 ‘자이툰’부대원들이 막바지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일 오후 6시 30분. 백마 부대 정문 담벼락 주변에는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세 부류의 20대 젊은이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담 안쪽에는 “자이툰 부대 파병반대”를 외치는 스피커 소리에 다소 굳어 있는 표정의 군인들이 서너겹의 벽을 쌓고 서 있었다. 옅은 황색 바탕의 군복에 베레모를 쓴 그들은 뭔가 할말이 있는지 입을 씰룩댔지만 자신들끼리도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벽 앞에는 검은색 티와 방화바지, 헬멧을 쓴 경찰기동대원 500여명이 연신 땀을 흘리며 스크린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이날 여름 기온은 최고 34도. 아침부터 진을 쳤던 이들의 얼굴은 빨갛게 익었다 못해, 갈색으로 그을렀다. 이들은 자신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저들이라는 듯, 자기 또래의 시위대 학생들을 원망 어린 눈초리로 쳐다봤다. 경찰 12중대 소속 이 모 전경은 “경찰에 오기 전에 대학에 다녔다”며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은색 띠를 이루고 있는 전경들 앞에는 서부총련 경기남부총련 서울지역학생회 등의 깃발이 나부꼈다. 이들 가운데서도‘통일선봉대’로 불리는 학생 200여명은 흰색티를 받쳐 입고 전경들과 한참 몸싸움을 벌였다. 이들은 연신 ‘파병반대’를 외치며 수시로 대오의 순서를 바꾸며 검은색 띠를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쏟았다. 가끔씩은 제 나이 또래 전경들과 거칠게 옷을 잡아뜯으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남학생들 뒤에서 응원을 하던 서울지역 학생회 소속 지 모(대학교 4년)양은 “오늘이 토익강의 첫날이었는데 빼먹고 왔다”면서 “같은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 전쟁을 대신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8월 더위같이 뜨거운 이들 뒤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자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0일 넘게 파병철회 단식을 하고 있는 박석운 민중연대 위원장은 한상렬 목사와 함께 “파병만은 막아야 하는데,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끝을 흐렸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서로 다치면 안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의지는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온 이수영(70·여) 할머니는 “천주교 인권위 소속 신자들과 함께 왔다”며 “우리 군인들이 자기 나라 독립하겠다는 이라크인들을 죽이는 것은 절대 못 본다”고 파병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부대 진입로에 있는 시골 마을 주민들은 낯선 소동이 싫지만은 않다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파병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일치했다. 마을주민 김 모(57)씨는 “남의 나라 침략에 우리가 괜히 왜 나서나…대통령이 너무 약해서”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해가 진 밤 8시. 오후 3시 20분부터 시작한 몸싸움과 대치가 대략 끝나자 시위의 주인공들은 교대로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각자 흩어졌다. 잠시 긴장을 풀고 나면 또 다른 긴장이 이어질 것이다. 쉬고 있는 이들에게 어둠이 깔리자 낮에 보였던 여러 차이는 다소 싱거워 보였다.

/김남성 기자 kns1992@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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