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판결 선고 전 한번 더 숙고
문장인식기능 프로그램으로 전체 판결문 검색 … “강제력 없는 참고용”
지역내일
2004-08-06
(수정 2004-08-06 오후 12:27:52)
“피고인들이 형량이 센 재판부를 피하기 위해 사건 재배당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중견 법관의 말이다. 교도소에서 형을 복역 중인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몇 몇 판사가 형량이 세다는 소문이 금방 나돈다. 다른 재판부에서 사건을 맡았으면 집행유예를 받았을 것을 “재수없이 걸렸다”는 것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법관에 따라 형량의 편차가 있다는 것이 재판을 받아본 피고인들의 생각이다.
대법원이 도입을 검토 중인 양형정보시스템은 법관들이 판결을 선고하기 전 다른 법관들이 유사사건에서 어떻게 판결했는지 통계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피해자에게 전치 4주를 입힌 피고인에 대해 선고하려는 법관은 프로그램에 교통사고, 전치4주, 횡단보도, 합의 여부 등의 양형인자를 입력시킨다.
양형정보시스템은 전체 판결문을 검색해 유사 판결들에 대한 선고형량 편차를 보여준다.
법관은 다른 법관들의 결정을 보고 한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형량을 조정하게 된다.
법관이 개인 소신이나 신념을 갖고 의도적으로 형량을 정할 때라도 다른 법관들이 선고한 결과를 보고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형정보시스템은 ‘그렇게 판결하라’는 강제가 아닌 단순한 참고용이다.
◆판결에 대한 혼란 막아 =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수많은 판결 전체에 대한 불만이라기 보다 몇 건에 대한 예외적인 선고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법관수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앞으로 법조일원화 등을 통해 변호사 검사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이 나오면 판결 결과를 예측하기 더욱 어렵게 된다.
다양한 배경의 법관들이 같은 사안에 대해 각자 다른 형량을 선고하게 되면 재판을 받는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이나 서울중앙법원 판사들이 모여 양형실무위원회를 통해 양형 편차를 줄이고 기준을 마련하려는 논의들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양형기준표를 만들면 법관들의 재판 독립성을 침해하고 개별사건들이 갖는 특수성을 간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양형정보시스템은 강제적이지 않아 양형기준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반면 그 동안 체계적이지 않았던 판결에 대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형정보시스템은 절대 강제력을 띤 양형기준이 될 수 없다”며 “참고하라는 것일뿐 안 봐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판결에 대한 반발로 악용 우려 = 하지만 대법원이 선뜻 양형정보시스템 도입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판결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경우 법적 판단보다는 여론에 의해 법감정이 형성될 때가 많다. 선고형량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고 가벼울 때 양형정보시스템에서 나온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양형정보시스템이라는 것이 법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중간 형량만을 선고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제성을 띄게 돼 법관의 재판 독립성을 크게 훼손할 수가 있다.
◆검찰 수사기록 포함여부 논의 = 이 같은 부작용도 우려되지만 대법원은 양형정보시스템을 좀 더 큰 틀로 확대하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현재 법관들이 선고하는 모든 사건의 판결문은 전산망을 통해 중앙서버에 모인다. 따라서 판결문을 검색하는 양형정보시스템 도입이 가능하다.
대법원은 한 발 더 나아가 판결문뿐만 아니라 검찰의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전산화하려는 논의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은 판결문보다 훨씬 자세하고 방대한 양형인자를 포함하고 있어 좀 더 구체적인 통계 분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판단하기 어려운 특별법 관련 범죄들에 대해 상당한 참고가 될 수 있다”며 “법관들이 판단에 있어 터무니없는 오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형정보시스템이란
양형정보시스템은 문장분석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이 전체 판결문을 검색해 법관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을 모두 추출, 다른 사건들의 재판결과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판사가 선고할 때 다른 법관들의 판단결과를 손쉽게 참고할 수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한 중견 법관의 말이다. 교도소에서 형을 복역 중인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몇 몇 판사가 형량이 세다는 소문이 금방 나돈다. 다른 재판부에서 사건을 맡았으면 집행유예를 받았을 것을 “재수없이 걸렸다”는 것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법관에 따라 형량의 편차가 있다는 것이 재판을 받아본 피고인들의 생각이다.
대법원이 도입을 검토 중인 양형정보시스템은 법관들이 판결을 선고하기 전 다른 법관들이 유사사건에서 어떻게 판결했는지 통계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피해자에게 전치 4주를 입힌 피고인에 대해 선고하려는 법관은 프로그램에 교통사고, 전치4주, 횡단보도, 합의 여부 등의 양형인자를 입력시킨다.
양형정보시스템은 전체 판결문을 검색해 유사 판결들에 대한 선고형량 편차를 보여준다.
법관은 다른 법관들의 결정을 보고 한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형량을 조정하게 된다.
법관이 개인 소신이나 신념을 갖고 의도적으로 형량을 정할 때라도 다른 법관들이 선고한 결과를 보고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형정보시스템은 ‘그렇게 판결하라’는 강제가 아닌 단순한 참고용이다.
◆판결에 대한 혼란 막아 =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수많은 판결 전체에 대한 불만이라기 보다 몇 건에 대한 예외적인 선고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법관수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앞으로 법조일원화 등을 통해 변호사 검사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이 나오면 판결 결과를 예측하기 더욱 어렵게 된다.
다양한 배경의 법관들이 같은 사안에 대해 각자 다른 형량을 선고하게 되면 재판을 받는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이나 서울중앙법원 판사들이 모여 양형실무위원회를 통해 양형 편차를 줄이고 기준을 마련하려는 논의들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양형기준표를 만들면 법관들의 재판 독립성을 침해하고 개별사건들이 갖는 특수성을 간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양형정보시스템은 강제적이지 않아 양형기준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반면 그 동안 체계적이지 않았던 판결에 대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형정보시스템은 절대 강제력을 띤 양형기준이 될 수 없다”며 “참고하라는 것일뿐 안 봐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판결에 대한 반발로 악용 우려 = 하지만 대법원이 선뜻 양형정보시스템 도입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판결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경우 법적 판단보다는 여론에 의해 법감정이 형성될 때가 많다. 선고형량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고 가벼울 때 양형정보시스템에서 나온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양형정보시스템이라는 것이 법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중간 형량만을 선고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제성을 띄게 돼 법관의 재판 독립성을 크게 훼손할 수가 있다.
◆검찰 수사기록 포함여부 논의 = 이 같은 부작용도 우려되지만 대법원은 양형정보시스템을 좀 더 큰 틀로 확대하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현재 법관들이 선고하는 모든 사건의 판결문은 전산망을 통해 중앙서버에 모인다. 따라서 판결문을 검색하는 양형정보시스템 도입이 가능하다.
대법원은 한 발 더 나아가 판결문뿐만 아니라 검찰의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전산화하려는 논의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은 판결문보다 훨씬 자세하고 방대한 양형인자를 포함하고 있어 좀 더 구체적인 통계 분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판단하기 어려운 특별법 관련 범죄들에 대해 상당한 참고가 될 수 있다”며 “법관들이 판단에 있어 터무니없는 오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형정보시스템이란
양형정보시스템은 문장분석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이 전체 판결문을 검색해 법관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을 모두 추출, 다른 사건들의 재판결과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판사가 선고할 때 다른 법관들의 판단결과를 손쉽게 참고할 수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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