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경찰 범인 검거위해 필사 격투

이 형사 칼날잡고 버티다 9차례 찔려 … 범인 협박에 시민 접근·신고조차 못해

지역내일 2004-08-10 (수정 2004-08-10 오후 4:37:15)
8일 경찰관 피살 사건 용의자 이학만씨의 검거과정에서 보여준 주부 박 모(48)씨의 기지가 연일 화제다. 침착하게 범인을 진정시킨 뒤,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까지 그야말로 ‘신고정신’의 총아였다는 평가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살당시 사건현장에서도 이런 용기와 기지가 발휘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 “발이라도 잡아 달라” 절규 = 목격자 진술과 경찰의 수사과정을 종합해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당시 상황이 한 눈에 드러난다. 1일 오후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심 경사와 이 순경은 커피숍에서 범인과 맞닥뜨린다. 심 경사가 신분증을 제시하며 신원을 확인하려 하자범인은 다짜고짜 흉기로 급습했다. 심장을 찔린 심 경사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를 본 이 순경이 심 경사를 잡는 순간 범인은 다시 이 순경의 등을 찔렀다. 제지할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순경은 칼에 찔리고도 범인을 검거하고자 필사의 격투를 벌였다. 한 때는 제압해 바닥에 눕히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순경은 범인에게 9군데를 찔렸다. 이런 상태에서도 이 순경은 범인 검거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다리라도 잡아 달라. 119를 불러 달라”고 절규했다.
현장에 있던 커피숍 주인과 손님 몇 명이 이 과정을 지켜본 뒤 경찰을 돕기 위해 다가섰다. 하지만 칼을 든 범인은 살기가 등등했다. 이학만은 “신고하거나 도와주면 모조리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런 위협 앞에 아무도 나설 수 없었다.
경찰 조사결과 숨진 이 순경의 손바닥에는 방어흔(흉기를 막아내기 위해 힘쓰다가 생긴 상처)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칼날을 맨손으로 잡고 범인과 대치하면서 손바닥이 다 찢긴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강희락 경찰청 수사국장은 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사건현장에서 시민들이 조금만 협조를 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의로운 행동’ 외로운 일 아니다 =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경찰청 내부 게시판과 인터넷 사이트에는 동료 경찰관들이 안타까움을 전하는 사연이 끊이질 않았다. 자신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 동료 경찰관이 인터넷에 올린 ‘심재호 경사와 이재현 순경…, 그들은 영웅이었다’는 글은 순식간에 경찰들 사이에서 퍼져갔다. 이 글에서 동료경찰관은 “정말 가슴이 미어집니다. 우리들의 일상의 모습이었기에 우리 자신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애통함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그는 “(나도) 이 형사처럼 칼에 찔리고도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계속 부여잡았을지 생각해 본다”면서 “마지막 까지 직무에 최선을 다하며 죽어간 이 형사 앞에 고개를 숙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경찰관은 당시 현장에서 이 형사를 돕지 않은 시민들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죽은 두 형사는 자신들이 범죄자의 칼에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자신들이 그토록 위했던 국가와 국민을 믿고 순직했다”면서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보상해준 것은 가혹한 매질과 매정한 등 돌림뿐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국립경찰병원 영안실에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조문을 다녀간 순수 시민들은 4300만명 중에 고작 10여명이 전부”라면서 “범죄자와 대적 중에 범인의 공격을 받고 죽어갈 때 주변에서 팔짱 끼고 방관하는 시민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시민들 탓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찰을 돕다가 피해를 입을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의로운 행동’을 장려하는 의미에서 ‘의사상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법적 근거에 따라 치료비 지원과 등급에 따른 보상금도 지급된다. 의로운 행동이 결코 외로운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의로운 시민’이라는 명예만 남을 뿐 결국 자기만 손해 볼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법무법인 대지의 이건욱 변호사는 “의로운 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죽음을 맞을 경우 지난 7월부터는 본인과 유족에 대해 의료급여를 지원하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법률 취지가 널리 알려져 개인주의적이고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회풍토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치안의 80%를 차지한다는 ‘시민정신’. 이것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결국은 국가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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