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심리가 돈을 해외로 쫓는다
김영호 시사평론가
돈은 높은 이윤을 찾아 움직인다. 수익만 크다면 험로를 마다 않고 법망도 뚫지만 불안은 싫어한다.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면 그냥 도망간다. 그 까닭에 옛날에는 돈이 장판 밑으로 꼭꼭 숨었지만 요즈음은 바다 건너로 훌쩍 날라 간다. 기업들이 높은 지대와 임금 탓에 돈벌이가 어렵다고 해외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이제는 개인 돈이 그 대열에 끼어 나라 밖으로 줄줄이 새어나간다.
시중에 유동자금이 40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마땅히 머물 곳이 없다. 금리가 너무 낮아 은행에 맡기거나 채권을 사봤자 물가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주식시장은 장기침체에 빠져 들어가 봤자 빈손 들고 나오기 일쑤이다. 부동산은 잘못 샀다가 세금벼락을 맞을 판이다. 세무조사니 뭐니 해서 자금추적을 한다니 뒤탈이 무섭다. 오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결국 해외로 튄다.
해외 부동산 사재기 성행
미국 한인촌에는 서울 돈이 몰려 부동산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뛴다고 한다.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난 1~2년 새 서울 돈이 밀물처럼 몰려온단다. 언론보도나 현지교포의 말을 들으면 미국 고급주택가에서는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저택을 서울 사람들이 마구 사들인다는 것이다. 캐나다, 호주에서도 집사재기가 성행한다고 한다. 이제 중국 상하이에도 그 바람이 분다고 한다. 더러는 골프장도 사고 일본에서는 골프회원권이 인기란다.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로스엔젤레스 한인촌에 있는 주유소, 술집 값이 지난 3년 새 2배나 올랐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 부동산회사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25개의 지사를 두고 있는데 2001년부터 연평균 15% 이상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올해 계약고가 17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 회사 웹사이트에는 하루 5,000여건이 접속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서울에서 온다고 한다. 실제 문의가 홍수를 이룬단다.
돈 많은 사람만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40세만 넘기면 앞날이 캄캄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집을 팔아서 해외로 떠난다. 잘못된 교육제도가 봉급의 절반 가량을 사교육비로 뺏어간다. 차라리 유학이 싸다며 자식을 해외로 보낸다. 기러기 아빠들이 허리가 휘도록 벌어봤자 그것이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간다. 국내에서 돈 쓰려면 눈치 보인다며 해외나들이가 뻔질나다. 이래저래 외화탈출이 러시를 이룬다.
지난 1~7월 해외여행, 유학-연수를 포함한 여행수지 대외지급액이 65억2071만 달러나 된다. 연말에는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추산이다. 지난 1~4월 경상이전 대외지급액은 39억656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2% 늘어났다. 이 돈은 국내에서 해외친척이나 가족에게 보낸 증여성 개인송금이다. 또 이민자의 해외 이주비와 해외교포 반출재산이 대부분인 자본이전 대외지급액이 5억5660억 달러다. 이것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2% 증가한 것이다. 이런 합법적인 외화유출만으로는 해외에서 투기가 성행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외환거래가 자유화되어 마음만 먹으면 외화유출이 용이하다. 해외여행을 목적으로 여러 차례 환전한 외화를 휴대반출하면 그만이다. 이 방식은 원시적인 만큼 적발위험도 크다. 대외거래를 위장하면 간단하다. 수입가격을 과다계상하여 송금하고 현지에서 차액을 받는다. 수출가격을 과소계산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수령한다. 선임지급도 이런 방식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이보다는 전문적인 환치기가 성행하고 있다. 현지에서 달러를 받고 서울에서 원화로 갚는 수법이다.
불법 환치기 10배 증가
이 방식은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 그럼에도 지난 1~7월 적발된 환치기를 통한 불법외환거래만 304건, 1조1241억원이나 된다. 이는 작년동기에 비해 건수로 2배, 금액으로 10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중 환치기를 포함한 전체 불법외환거래는 1013건, 2조7555억으로 이미 작년 1년간의 규모를 넘어섰다. 불법유출이 쉽기 때문에 실제 적발건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려면 기업은 외환사용에 제한이 없고 개인은 한도가 30만 달러다. 그런데 한국은행에 신고한 개인거래는 한 건도 없다. 이 사실이 그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이런 판에 느닷없는 화폐개혁론이 불거졌다. 많은 국민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경제부총리가 한가하게 던진 말이 가관이다. “연구단계를 넘어 구체적 검토의 초기단계에 와있다”는 것이다. 불길이 번지자 서둘러 껐지만 뭉칫돈의 불안감을 얼마나 덜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경제가 어떤 꼴인지 아는가 싶다. 불안심리가 돈을 해외로 쫓고 있다는 사실이나 알기 바란다.
김영호 시사평론가
돈은 높은 이윤을 찾아 움직인다. 수익만 크다면 험로를 마다 않고 법망도 뚫지만 불안은 싫어한다.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면 그냥 도망간다. 그 까닭에 옛날에는 돈이 장판 밑으로 꼭꼭 숨었지만 요즈음은 바다 건너로 훌쩍 날라 간다. 기업들이 높은 지대와 임금 탓에 돈벌이가 어렵다고 해외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이제는 개인 돈이 그 대열에 끼어 나라 밖으로 줄줄이 새어나간다.
시중에 유동자금이 40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마땅히 머물 곳이 없다. 금리가 너무 낮아 은행에 맡기거나 채권을 사봤자 물가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주식시장은 장기침체에 빠져 들어가 봤자 빈손 들고 나오기 일쑤이다. 부동산은 잘못 샀다가 세금벼락을 맞을 판이다. 세무조사니 뭐니 해서 자금추적을 한다니 뒤탈이 무섭다. 오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결국 해외로 튄다.
해외 부동산 사재기 성행
미국 한인촌에는 서울 돈이 몰려 부동산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뛴다고 한다.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난 1~2년 새 서울 돈이 밀물처럼 몰려온단다. 언론보도나 현지교포의 말을 들으면 미국 고급주택가에서는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저택을 서울 사람들이 마구 사들인다는 것이다. 캐나다, 호주에서도 집사재기가 성행한다고 한다. 이제 중국 상하이에도 그 바람이 분다고 한다. 더러는 골프장도 사고 일본에서는 골프회원권이 인기란다.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로스엔젤레스 한인촌에 있는 주유소, 술집 값이 지난 3년 새 2배나 올랐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 부동산회사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25개의 지사를 두고 있는데 2001년부터 연평균 15% 이상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올해 계약고가 17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 회사 웹사이트에는 하루 5,000여건이 접속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서울에서 온다고 한다. 실제 문의가 홍수를 이룬단다.
돈 많은 사람만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40세만 넘기면 앞날이 캄캄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집을 팔아서 해외로 떠난다. 잘못된 교육제도가 봉급의 절반 가량을 사교육비로 뺏어간다. 차라리 유학이 싸다며 자식을 해외로 보낸다. 기러기 아빠들이 허리가 휘도록 벌어봤자 그것이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간다. 국내에서 돈 쓰려면 눈치 보인다며 해외나들이가 뻔질나다. 이래저래 외화탈출이 러시를 이룬다.
지난 1~7월 해외여행, 유학-연수를 포함한 여행수지 대외지급액이 65억2071만 달러나 된다. 연말에는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추산이다. 지난 1~4월 경상이전 대외지급액은 39억656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2% 늘어났다. 이 돈은 국내에서 해외친척이나 가족에게 보낸 증여성 개인송금이다. 또 이민자의 해외 이주비와 해외교포 반출재산이 대부분인 자본이전 대외지급액이 5억5660억 달러다. 이것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2% 증가한 것이다. 이런 합법적인 외화유출만으로는 해외에서 투기가 성행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외환거래가 자유화되어 마음만 먹으면 외화유출이 용이하다. 해외여행을 목적으로 여러 차례 환전한 외화를 휴대반출하면 그만이다. 이 방식은 원시적인 만큼 적발위험도 크다. 대외거래를 위장하면 간단하다. 수입가격을 과다계상하여 송금하고 현지에서 차액을 받는다. 수출가격을 과소계산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수령한다. 선임지급도 이런 방식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이보다는 전문적인 환치기가 성행하고 있다. 현지에서 달러를 받고 서울에서 원화로 갚는 수법이다.
불법 환치기 10배 증가
이 방식은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 그럼에도 지난 1~7월 적발된 환치기를 통한 불법외환거래만 304건, 1조1241억원이나 된다. 이는 작년동기에 비해 건수로 2배, 금액으로 10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중 환치기를 포함한 전체 불법외환거래는 1013건, 2조7555억으로 이미 작년 1년간의 규모를 넘어섰다. 불법유출이 쉽기 때문에 실제 적발건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려면 기업은 외환사용에 제한이 없고 개인은 한도가 30만 달러다. 그런데 한국은행에 신고한 개인거래는 한 건도 없다. 이 사실이 그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이런 판에 느닷없는 화폐개혁론이 불거졌다. 많은 국민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경제부총리가 한가하게 던진 말이 가관이다. “연구단계를 넘어 구체적 검토의 초기단계에 와있다”는 것이다. 불길이 번지자 서둘러 껐지만 뭉칫돈의 불안감을 얼마나 덜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경제가 어떤 꼴인지 아는가 싶다. 불안심리가 돈을 해외로 쫓고 있다는 사실이나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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