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 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갈 수 있다. 서울 내곡동에 있는 국정원 안보전시관은 국정원의 비밀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1999년 9월 말 개관한 후 연간 2만 여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기자도 최근 5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한 안보전시관을 둘러보고 왔다. (관람신청 : 인터넷 www.nis.go.kr, 전화 02-3461-6613. 초등학교 4학년 이상 누구나 신청 가능)
전시관을 돌아보며 방문객들은 대통령의 직속 통치기구인 국정원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구한말 고종의 밀사들이나 상해 임시정부 김 구 주석의 명을 받든 정보원들의 유품들도 있고,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만든 김종필씨의 취임사 장면도 보고 들을 수 있다.
특히 위성사진으로 북한의 전 구역을 들여다볼 수도 있어 현대 정보전의 한 단면을 짐작할 수도 있다. 전시관에 기록되어 있는 국정원의 역사에는 과거사를 다시 규명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사건들도 많이 있다.
전시관은 간첩의 해안 침투장비, ‘삐라’를 뿌리던 북한의 조악한 열기구 등 지금 30~40대가 어린시절 보던 반공전시물들부터 사이버 정보보안의 중요성을 체험하게 만든 ‘스파이메일 시뮬레이션 2’라는 첨단 게임 서비스까지 다양한 기록물과 볼거리, 체험거리들도 제공하고 있다. 시간을 넉넉히 잡으면 사격도 즐길 수 있다.
기자는 안보전시관을 둘러본 후 바로 옆에 있는 헌릉과 인릉을 걸으며 묘한 상념에 잠겼다. 방문객들도 헌릉이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종 이방원의 묘이고 인릉이 조선왕조가 망국의 길로 들어가기 시작하던 때인 순조의 묘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곳이 국정원과 어우러진 기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세종’이 아닌 ‘태종’이 될 운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그 운명을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한 것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다양한 권력 수단을 동원하였고, 노 대통령은 분권의 시대 흐름에 맞게 국정원을 포함한 권력기관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헌릉과 인릉은 한 울타리 안에 있지만 판이하게 다르다. 인릉은 쇠망기의 왕답게(?) 왕과 왕비가 한 봉분 안에 묻혀 있다. 봉분도 크지 않다.
그러나 태종의 묘인 헌릉은 왕과 왕비의 거대한 묘가 나란히 놓여 있다. 양지바른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6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봉분은 튼튼하고, 도굴당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처럼 언젠가 국정원과 헌·인릉을 다녀갔을 노 대통령도 태종과 순종의 운명을 빗대어 상념에 젖지 않았을까.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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