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또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집권 이후 가장 공들여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 정책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원천봉쇄’ 됐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전제로 했던 지방분권, 균형발전의 노 대통령 통치철학 자체가 도전을 받게 된 상황이다.
지난 3월 국회에서의 탄핵결정이 노 대통령에게는 더 큰 위기였겠지만, 그래도 당시는 압도적 국민의 엄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이슈 자체가 항상 국민의 50% 이상이 ‘반대’해왔던 사안이라 다른 원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 기관인 폴앤폴 조용휴 사장은 “노 대통령의 다른 정책 수행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정책적 위기지만, 본질은 정치적 위기”라고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 정책에 대한 헌재의 탄핵결정”이라고 잘라말했다.
◆20% 안팎의 지지도 한계 = 헌재 판정 이후 정치권의 관심은 ‘노 대통령이 무엇을 승부수로 던지느냐’이다. 위기의 상황마다 노 대통령은 특유의 승부수로 상황을 돌파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고(6월 15일 국무회의) 약속했던 사안이다. 그런 만큼 이런 정책적 정치적 위기를 그냥 넘어가겠냐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수 자체가 제한적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전선의 주요한 대립점이 노 대통령이 과거 언급했던 것처럼 ‘한나라당과 광화문에 빌딩을 가진 몇몇 언론’과 참여정부가 아니라, 수도권 주민과 정권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나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던 언론도 노 대통령과 대립되는 지점에 서 있었지만, ‘스스로 결정한 것을 뒤집으려고 한다’는 여권의 공격 포인트를 헌재가 말끔히 지워준 상황에서 더 이상 이들을 타깃으로 삼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보수성이나 결정을 문제삼기도 어렵다. 헌재의 결정문에 대한 법리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결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론이 나오지만 이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다.
노 대통령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정치지형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20% 안팎(5점척도)에 머물고 있는 상황인데다 ‘행정수도 이전법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이 다수의 중간층을 노 대통령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식 접근은 더 위험 = 사실 노 대통령이 어떤 승부수를 던질까보다 여권이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런 승부수가 과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들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이 선택할 수도 제한되어 있지만, 과거식 돌파수라는 것 자체가 효력을 가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디어리서치 안부근 고문은 “노 대통령의 정면승부식 돌파에 대해 국민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타깃을 만들고, 정면 승부를 걸어 지지층을 응집시키면서 상황을 돌파해왔던 노 대통령 특유의 승부수에 대해 국민들이 면역력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양치기 소년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김근태 복지부장관의 한 측근 인사도 “이 사안은 ‘탄핵’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여권 내부가 ‘위기는 기회다’라는 식의 대응을 하는 것 자체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참여정부 중반을 못 넘긴 지금의 노 대통령 지지도는 DJ나 YS의 권력누수가 일어날 때 지지도”라며 “결국 대통령은 무조건 하늘이라고 보는 5~10% 빼고 15대 85 싸움으로 가고 있는데, 15를 가지고 어떻게 이기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청와대나 여당이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국정우선순위 재점검 해야” = 현재 청와대는 고민 중이다. 헌재 결정 직후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도 “관습헌법이라는 것은 처음 듣는 이론”이라는 가벼운 언급 뿐 구체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청와대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주문은 ‘승부수’에 의한 돌파보다는 ‘나라라는 큰틀에서의 고민’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익명을 요구한 모 전직 장관은 “내가 만나는 다수의 사람들은 노 정권에 대해 거의 포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아니다”고 전제한 후 “여야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고, 자칫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인사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가 아니라,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어떻게 국민의 활력을 끌어낼 것인가를 노 대통령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의지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열린우리당 모 중진의원 보좌관은 “이번 기회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잘보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지금 수구보수 세력을 무력화하는 법안 등 부정적인 전략에 주력할 게 아니라, 긍정적 요소를 끌어올릴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지난 3월 국회에서의 탄핵결정이 노 대통령에게는 더 큰 위기였겠지만, 그래도 당시는 압도적 국민의 엄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이슈 자체가 항상 국민의 50% 이상이 ‘반대’해왔던 사안이라 다른 원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 기관인 폴앤폴 조용휴 사장은 “노 대통령의 다른 정책 수행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정책적 위기지만, 본질은 정치적 위기”라고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 정책에 대한 헌재의 탄핵결정”이라고 잘라말했다.
◆20% 안팎의 지지도 한계 = 헌재 판정 이후 정치권의 관심은 ‘노 대통령이 무엇을 승부수로 던지느냐’이다. 위기의 상황마다 노 대통령은 특유의 승부수로 상황을 돌파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고(6월 15일 국무회의) 약속했던 사안이다. 그런 만큼 이런 정책적 정치적 위기를 그냥 넘어가겠냐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수 자체가 제한적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전선의 주요한 대립점이 노 대통령이 과거 언급했던 것처럼 ‘한나라당과 광화문에 빌딩을 가진 몇몇 언론’과 참여정부가 아니라, 수도권 주민과 정권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나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던 언론도 노 대통령과 대립되는 지점에 서 있었지만, ‘스스로 결정한 것을 뒤집으려고 한다’는 여권의 공격 포인트를 헌재가 말끔히 지워준 상황에서 더 이상 이들을 타깃으로 삼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보수성이나 결정을 문제삼기도 어렵다. 헌재의 결정문에 대한 법리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결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론이 나오지만 이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다.
노 대통령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정치지형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20% 안팎(5점척도)에 머물고 있는 상황인데다 ‘행정수도 이전법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이 다수의 중간층을 노 대통령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식 접근은 더 위험 = 사실 노 대통령이 어떤 승부수를 던질까보다 여권이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런 승부수가 과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들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이 선택할 수도 제한되어 있지만, 과거식 돌파수라는 것 자체가 효력을 가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디어리서치 안부근 고문은 “노 대통령의 정면승부식 돌파에 대해 국민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타깃을 만들고, 정면 승부를 걸어 지지층을 응집시키면서 상황을 돌파해왔던 노 대통령 특유의 승부수에 대해 국민들이 면역력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양치기 소년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김근태 복지부장관의 한 측근 인사도 “이 사안은 ‘탄핵’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여권 내부가 ‘위기는 기회다’라는 식의 대응을 하는 것 자체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참여정부 중반을 못 넘긴 지금의 노 대통령 지지도는 DJ나 YS의 권력누수가 일어날 때 지지도”라며 “결국 대통령은 무조건 하늘이라고 보는 5~10% 빼고 15대 85 싸움으로 가고 있는데, 15를 가지고 어떻게 이기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청와대나 여당이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국정우선순위 재점검 해야” = 현재 청와대는 고민 중이다. 헌재 결정 직후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도 “관습헌법이라는 것은 처음 듣는 이론”이라는 가벼운 언급 뿐 구체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청와대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주문은 ‘승부수’에 의한 돌파보다는 ‘나라라는 큰틀에서의 고민’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익명을 요구한 모 전직 장관은 “내가 만나는 다수의 사람들은 노 정권에 대해 거의 포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아니다”고 전제한 후 “여야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고, 자칫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인사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가 아니라,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어떻게 국민의 활력을 끌어낼 것인가를 노 대통령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의지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열린우리당 모 중진의원 보좌관은 “이번 기회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잘보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지금 수구보수 세력을 무력화하는 법안 등 부정적인 전략에 주력할 게 아니라, 긍정적 요소를 끌어올릴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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