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식물 ‘들통발’이 발견되는 등 생태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동해안 일대 소규모 석호 및 연안습지들이 심각한 훼손 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석호나 해안사구 등 해안 가까이 있는 자연유산의 경우 환경부와 해양부, 문화재청, 지자체의 통합적인 보전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충남 태안군의 신두리해안사구의 경우,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환경부 지정 자연생태계보전지역, 해양부 지정 해양생태계보전지역으로 보호하고 있으나 보호구역 바로 인근에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서고 있고, 천연기념물 보호를 위한 완충지역 안에 골프장이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3월 습지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인 람사(Ramsar)협약에 가입, 대암산 용늪 및 창녕 우포늪을 람사협약 등록습지로 지정하는 등 습지보전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1999년 2월에는 ‘습지보전법’을 제정, 내륙습지는 환경부에서 관리하고 갯벌을 포함한 연안습지는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계적인 역할분담 때문에 동해안 석호의 경우 항구로 개발된 청초호는 해양부, 나머지 석호들은 환경부가 관리하는가 하면, 소규모 습지 형태의 석호들은 아예 보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소각재 매립으로 사라지기도
1960년대 왕골 산지로 유명했던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의 ‘풍호’.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영동화력발전소가 무연탄재 매립지로 사용하는 바람에 무연탄재 360만t에 뒤덮여 평지로 변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경포호 절반 정도는 됐다”는 거대한 자연호수 풍호는 이제는 남쪽 언저리에 몇 백평 남짓 남아 있는 늪에서만 옛 호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강원도 지방기념물 1호인 ‘경포호’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면적이 53만여평에 이르렀으나 1960년대 호안공사에 이어 70년대 이후 유원지 개발로 크기가 절반(현재 26만여평)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속초시 조양동 등에 위치한 자연 석호인 ‘청초호’는 준설 후 항구로 사용되고 있다.
1993년 이후 유원지 개발 및 1999강원관광엑스포 개최지 부지조성을 목적으로 호수의 남-서쪽 공유수면 25만여평을 매립하는 바람에 호수의 1/3 가량이 사라졌다.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1리, 향호2리에 위치한 ‘향호’는 유역면적 8.06㎢, 면적 34만 5000㎡의 작은 석호이다.
원래 향호의 수심은 2~3m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규사(모래) 채취로 인해 깊은 곳의 수심이 12m에 이른다. 당연히 호수 바닥의 저서생물을 먹이로 삼는 잠수성 조류들의 회귀율이 떨어지고 있다.
양양군 상운리 7번국도 변에 있는 ‘궁개호’는 수로의 변경으로 현재 거의 말라버렸다.
속초시 영랑동에 위치하고 있는 ‘영랑호’는 대규모 유원지로 개발되어 매년 부영양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랑호에서 북쪽으로 2㎞ 남짓 거리에 있는 고성군 토성면의 ‘광포호’는 1960년대부터 매립되기 시작, 현재 절반 정도만 남아 있다. 호수 남쪽에 짓다만 대형 콘도건물이 바다와 호수 사이를 가로막아 호수 전체가 짙은 갈색빛으로 썩어가고 있다.
◆연간 5회 조사비용 1500만원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는 지난 2001년 개괄적인 실태조사 이후 별다른 보전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규모가 큰 10개의 석호에 대해 연 5회 정례 조사를 하고 있으나 예산이 1500만원에 불과, 대부분의 연구인력을 자원봉사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은 해양수산부도 마찬가지다. 연안에서 500미터까지는 해양부가 보전·관리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해놓고도 청초호(속초항) 준설 이외에는 한 일이 없다.
규모와 생태적 중요도에 관계없이 동해안 석호들은 지금까지 단 1곳도 환경부나 해양부로부터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동해안 석호에 대해서는 현재 추진 중인 전국자연환경조사 사업이 완료된 후 종합적인 보전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동해안 석호는
빙하기 끝나고 약 3000년 전 형성
동해안의 석호들은 내륙의 자연호수와는 달리 해수 및 담수가 섞인 기수호로서 매우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약 6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강 하구가 침수되고 강어귀에 모래가 쌓여 해안사주(wave-bulit sand bar)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주가 점점 발달하면서 약 3000년 전에는 지금과 같은 호수의 형태를 갖춘 석호(Bar bulit lagoon)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호에는 거센 파도와 해일로 바닷물이 호수로 들어오는 ‘갯터짐’ 현상이 일어난다. 반대로 장마철에는 민물이 모래언덕을 넘어 바다로 나가는 갯터짐 현상도 일어난다. 이때 민물과 바닷물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민물과 바닷물이 공존하는 석호에는 특수하게 적응된 일부 생물만 서식하므로 생물다양성은 낮다. 그러나 영양이 많으므로 일단 기수에 적응된 동물들은 매우 빠르게 생장한다. 또한 경쟁자가 없으므로 동물 개체군의 폭발적 증가가 나타나기도 한다.
낮은 생물다양성, 단순한 먹이 그물, 개체군의 역동성 등과 같은 기수호의 이러한 생태적 성질은 생물학적 연구에 적합한 여러 가지 조건을 제공한다.
이러한 학술적 가치 외에도 석호 주변의 경관은 대개 특징적인 모습이어서 관광적 가치가 크다. 나아가 동해안의 석호들은 철새의 영양 공급처이자 이동을 위한 기착지, 환경 보존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석호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주위 환경의 변화로 하구의 모래언덕이 턱없이 높아지고 오랜 가뭄으로 저수량까지 줄어들어 갯터짐이 불가능해지면 석호의 생태적 생명은 끝나게 된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이와 관련, 석호나 해안사구 등 해안 가까이 있는 자연유산의 경우 환경부와 해양부, 문화재청, 지자체의 통합적인 보전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충남 태안군의 신두리해안사구의 경우,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환경부 지정 자연생태계보전지역, 해양부 지정 해양생태계보전지역으로 보호하고 있으나 보호구역 바로 인근에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서고 있고, 천연기념물 보호를 위한 완충지역 안에 골프장이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3월 습지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인 람사(Ramsar)협약에 가입, 대암산 용늪 및 창녕 우포늪을 람사협약 등록습지로 지정하는 등 습지보전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1999년 2월에는 ‘습지보전법’을 제정, 내륙습지는 환경부에서 관리하고 갯벌을 포함한 연안습지는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계적인 역할분담 때문에 동해안 석호의 경우 항구로 개발된 청초호는 해양부, 나머지 석호들은 환경부가 관리하는가 하면, 소규모 습지 형태의 석호들은 아예 보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소각재 매립으로 사라지기도
1960년대 왕골 산지로 유명했던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의 ‘풍호’.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영동화력발전소가 무연탄재 매립지로 사용하는 바람에 무연탄재 360만t에 뒤덮여 평지로 변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경포호 절반 정도는 됐다”는 거대한 자연호수 풍호는 이제는 남쪽 언저리에 몇 백평 남짓 남아 있는 늪에서만 옛 호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강원도 지방기념물 1호인 ‘경포호’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면적이 53만여평에 이르렀으나 1960년대 호안공사에 이어 70년대 이후 유원지 개발로 크기가 절반(현재 26만여평)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속초시 조양동 등에 위치한 자연 석호인 ‘청초호’는 준설 후 항구로 사용되고 있다.
1993년 이후 유원지 개발 및 1999강원관광엑스포 개최지 부지조성을 목적으로 호수의 남-서쪽 공유수면 25만여평을 매립하는 바람에 호수의 1/3 가량이 사라졌다.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1리, 향호2리에 위치한 ‘향호’는 유역면적 8.06㎢, 면적 34만 5000㎡의 작은 석호이다.
원래 향호의 수심은 2~3m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규사(모래) 채취로 인해 깊은 곳의 수심이 12m에 이른다. 당연히 호수 바닥의 저서생물을 먹이로 삼는 잠수성 조류들의 회귀율이 떨어지고 있다.
양양군 상운리 7번국도 변에 있는 ‘궁개호’는 수로의 변경으로 현재 거의 말라버렸다.
속초시 영랑동에 위치하고 있는 ‘영랑호’는 대규모 유원지로 개발되어 매년 부영양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랑호에서 북쪽으로 2㎞ 남짓 거리에 있는 고성군 토성면의 ‘광포호’는 1960년대부터 매립되기 시작, 현재 절반 정도만 남아 있다. 호수 남쪽에 짓다만 대형 콘도건물이 바다와 호수 사이를 가로막아 호수 전체가 짙은 갈색빛으로 썩어가고 있다.
◆연간 5회 조사비용 1500만원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는 지난 2001년 개괄적인 실태조사 이후 별다른 보전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규모가 큰 10개의 석호에 대해 연 5회 정례 조사를 하고 있으나 예산이 1500만원에 불과, 대부분의 연구인력을 자원봉사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은 해양수산부도 마찬가지다. 연안에서 500미터까지는 해양부가 보전·관리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해놓고도 청초호(속초항) 준설 이외에는 한 일이 없다.
규모와 생태적 중요도에 관계없이 동해안 석호들은 지금까지 단 1곳도 환경부나 해양부로부터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동해안 석호에 대해서는 현재 추진 중인 전국자연환경조사 사업이 완료된 후 종합적인 보전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동해안 석호는
빙하기 끝나고 약 3000년 전 형성
동해안의 석호들은 내륙의 자연호수와는 달리 해수 및 담수가 섞인 기수호로서 매우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약 6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강 하구가 침수되고 강어귀에 모래가 쌓여 해안사주(wave-bulit sand bar)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주가 점점 발달하면서 약 3000년 전에는 지금과 같은 호수의 형태를 갖춘 석호(Bar bulit lagoon)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호에는 거센 파도와 해일로 바닷물이 호수로 들어오는 ‘갯터짐’ 현상이 일어난다. 반대로 장마철에는 민물이 모래언덕을 넘어 바다로 나가는 갯터짐 현상도 일어난다. 이때 민물과 바닷물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민물과 바닷물이 공존하는 석호에는 특수하게 적응된 일부 생물만 서식하므로 생물다양성은 낮다. 그러나 영양이 많으므로 일단 기수에 적응된 동물들은 매우 빠르게 생장한다. 또한 경쟁자가 없으므로 동물 개체군의 폭발적 증가가 나타나기도 한다.
낮은 생물다양성, 단순한 먹이 그물, 개체군의 역동성 등과 같은 기수호의 이러한 생태적 성질은 생물학적 연구에 적합한 여러 가지 조건을 제공한다.
이러한 학술적 가치 외에도 석호 주변의 경관은 대개 특징적인 모습이어서 관광적 가치가 크다. 나아가 동해안의 석호들은 철새의 영양 공급처이자 이동을 위한 기착지, 환경 보존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석호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주위 환경의 변화로 하구의 모래언덕이 턱없이 높아지고 오랜 가뭄으로 저수량까지 줄어들어 갯터짐이 불가능해지면 석호의 생태적 생명은 끝나게 된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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