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마음 속, 천 갈래의 감정을 끌어올려 몸으로 표현한다. 자기 극복의 처절한 훈련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고난도의 춤동작과, 쉼 없는 반복을 통해 신경 세포 하나하나에 기억시킨 섬세한 몸짓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 한국 최고의 무용수 자리를 지켜왔던 유니버설 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부드럽고 담담한 목소리, 과장 없는 표정, 절제된 어휘를 구사해 말하고 있지만 그 어떤 미사여구의 웅변보다 선명하고 확실하게 심중을 전달한다.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심청>의 리허설을 막 끝내고 마주앉은 참이다.
“문훈숙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기적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았던 발레리나였다. 그런 그가 2년 전 무대를 떠났다. 사람들은 부상 때문에 발레를 그만 뒀다고 알고 있지만 그는 “지금이라도 하려 들면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무대에 서지 않는 것은 “이제는 단체를 이끌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할 때”라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
“96년부터 단장직을 맡아왔지만 춤을 추는 동안은 나 스스로도 행정가로서의 발레단 단장보다는 무용수로서의 자신을 우선 앞에 뒀지요.”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 한 해의 활약상은 그의 결단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3월엔 창작발레 <심청>을 프랑스 무대에 올렸다.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페스티벌에서는 미국공연을 통해 인정받았던 <라 바야데르="">로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를 만들었다.
무료 야외공연 ‘봄빛발레축제’에 심포지엄까지, 발레 대중화를 위한 행정가로서의 노력도 돋보였다. 발레단 활동을 보다 전문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새로 만든 유니버설 문화재단도 9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무용수 시절에는 인터뷰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올해는 각종 매체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다. ‘컨템퍼러리 발레의 밤’에서는 공연 전에 직접 해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니버설발레단의 창단자는 시아버지인 문선명 총재와 친정아버지인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다. 두 아버지의 든든한 재정지원과 문훈숙이라는 세계적인 스타를 중심으로 자라온 유니버설발레단이 ‘언젠가 그가 없어져도’ 한국 발레의 주축이 되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일, 그게 지금 문훈숙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후배들을 지도하는 선생으로서, 안무가를 초청하고 좋은 창작 발레를 개발하는 단장으로서,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발레를 기획하는 사업가로서 열정을 고루 배분하고 있는 문단장이 가장 좋아하는 역할은 역시 단원들에게 무용을 지도하는 선생 역이다.
“발레를 지도하는 건 정말 좋아요. 무용 지도는 온종일 밥 안 먹고도 할 수 있어요.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고쳐주면서 향상되는 모습을 보며 연습실에 있노라면 시간 가는 걸 잊습니다.”
그에게도 오늘의 문훈숙이 있게 한 스승들이 있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에드리안 델라스 선생은 그에게 발레에 대한 열정을 심어줬다. 루마니아 출신의 제타 콘스탄틴 선생은 “보통 선생들이 가르쳐줄 수 있는 그 이상을 깨닫게 한” 아주 특별한 스승이었다.
“풍부한 감정을 갖고 있어도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는 무용수들이 있습니다.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은 많아도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선생은 드물죠. 그 분이 바로 그런 선생님이셨습니다. 저도 무한한 내면의 세계에서 춤을 이끌어내도록 가르치려 합니다.”
올해 2월에 한 살 난 조카딸을 입양하면서 그에게는 애기 엄마로서의 역할이 하나 더 늘었다.
“발레리나로 한 번 키워보고 싶어요. 다리랑 발이 괜찮더라고요. 물론 본인이 싫다면 안 되겠지만…. 피곤한 몸으로 집에 가서 그 아이를 보면 참 행복해집니다.”
/오진영 기자 ojy@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라>심청>심청>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 한국 최고의 무용수 자리를 지켜왔던 유니버설 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부드럽고 담담한 목소리, 과장 없는 표정, 절제된 어휘를 구사해 말하고 있지만 그 어떤 미사여구의 웅변보다 선명하고 확실하게 심중을 전달한다.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심청>의 리허설을 막 끝내고 마주앉은 참이다.
“문훈숙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기적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았던 발레리나였다. 그런 그가 2년 전 무대를 떠났다. 사람들은 부상 때문에 발레를 그만 뒀다고 알고 있지만 그는 “지금이라도 하려 들면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무대에 서지 않는 것은 “이제는 단체를 이끌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할 때”라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
“96년부터 단장직을 맡아왔지만 춤을 추는 동안은 나 스스로도 행정가로서의 발레단 단장보다는 무용수로서의 자신을 우선 앞에 뒀지요.”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 한 해의 활약상은 그의 결단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3월엔 창작발레 <심청>을 프랑스 무대에 올렸다.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페스티벌에서는 미국공연을 통해 인정받았던 <라 바야데르="">로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를 만들었다.
무료 야외공연 ‘봄빛발레축제’에 심포지엄까지, 발레 대중화를 위한 행정가로서의 노력도 돋보였다. 발레단 활동을 보다 전문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새로 만든 유니버설 문화재단도 9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무용수 시절에는 인터뷰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올해는 각종 매체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다. ‘컨템퍼러리 발레의 밤’에서는 공연 전에 직접 해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니버설발레단의 창단자는 시아버지인 문선명 총재와 친정아버지인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다. 두 아버지의 든든한 재정지원과 문훈숙이라는 세계적인 스타를 중심으로 자라온 유니버설발레단이 ‘언젠가 그가 없어져도’ 한국 발레의 주축이 되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일, 그게 지금 문훈숙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후배들을 지도하는 선생으로서, 안무가를 초청하고 좋은 창작 발레를 개발하는 단장으로서,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발레를 기획하는 사업가로서 열정을 고루 배분하고 있는 문단장이 가장 좋아하는 역할은 역시 단원들에게 무용을 지도하는 선생 역이다.
“발레를 지도하는 건 정말 좋아요. 무용 지도는 온종일 밥 안 먹고도 할 수 있어요.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고쳐주면서 향상되는 모습을 보며 연습실에 있노라면 시간 가는 걸 잊습니다.”
그에게도 오늘의 문훈숙이 있게 한 스승들이 있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에드리안 델라스 선생은 그에게 발레에 대한 열정을 심어줬다. 루마니아 출신의 제타 콘스탄틴 선생은 “보통 선생들이 가르쳐줄 수 있는 그 이상을 깨닫게 한” 아주 특별한 스승이었다.
“풍부한 감정을 갖고 있어도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는 무용수들이 있습니다.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은 많아도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선생은 드물죠. 그 분이 바로 그런 선생님이셨습니다. 저도 무한한 내면의 세계에서 춤을 이끌어내도록 가르치려 합니다.”
올해 2월에 한 살 난 조카딸을 입양하면서 그에게는 애기 엄마로서의 역할이 하나 더 늘었다.
“발레리나로 한 번 키워보고 싶어요. 다리랑 발이 괜찮더라고요. 물론 본인이 싫다면 안 되겠지만…. 피곤한 몸으로 집에 가서 그 아이를 보면 참 행복해집니다.”
/오진영 기자 ojy@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라>심청>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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