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에게도 어려운 변액보험 판매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70세 할머니 설계사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한생명 3만여 설계사 중 변액보험 시험 최고령 합격자인 일산지점 교하영업소 이영숙 FP(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변액보험 시험은 증권·채권시장이해, 정보공시, 인접금융상품 이해 등 쉽지 않은 내용이 출제되고 합격률도 평균 30%대 초반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영숙 할머니는 지난 10월에 발표한 변액보험 시험에서 세번의 고배를 마시고 네번째에 합격했다.
이영숙 FP는 지난 90년 1월 55세이던 해에 남편의 공직생활 정년퇴임에 맞춰 대한생명 설계사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
충북 단양이 고향인 이영숙 FP는 처음에는 남편의 반대가 심한데다 생면부지의 경기도 파주에서 영업을 해서 첫달 수당이 불과 18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영숙 할머니는 타고난 성실성과 온화한 품성, 진실된 고객섬김으로 열심히 활동해 10년만인 2000년에는 드디어 억대연봉 설계사 반열에 올랐다. 회사내 최고령 억대연봉설계사로 연도대상에서 상도 받았다.
이후 2년간 화려하게 인생 최정상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8월 갑자기 몸이 무겁고 피곤해 병원을 찾았는데 갑상선암 초기였다.
이영숙 FP는 수술을 받고 잠시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너무나 일하고 싶고 고객을 만나고 싶어서 며칠후 곧바로 영업소로 돌아왔다.
오히려 이 FP는 아팠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완벽한 상품설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심기일전했다.
또 일하는 것만이 병마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통해 완치를 자신했다.
2002년 9월 내친김에 그동안 미뤘던 ‘FP양성센터’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3개월의 교육을 마쳤다. 여기서 재무설계서를 활용한 금융컨설팅 능력 등으로 새롭게 무장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 조금씩 실적이 줄었지만, 매년 60여건의 신계약에 연봉 6000만~7000만원은 거뜬히 넘겼다.
2003년 보험업계에 새로운 상품트렌드 인 변액보험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중금리가 내려가고 이에 따라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고객들의 관심이 변액보험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이 상품은 ‘변액보험판매관리사’ 자격증을 가져야만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영숙FP에게 ‘변액보험판매관리사’ 합격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다만 합격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평균 합격률이 30%대에 불과해 젊은 사람들도 부담스러워하는 시험이다. 더구나 보험상품 이외에 생전 처음으로 주식이나 채권, 공시, 인접금융상품 등을 공부해야만 했다.
그녀는 2003년 3월 공부를 시작해 쉽게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도전했지만 3번에 걸쳐 불합격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냈다. 3개월에 한번인 시험이 갑자기 2004년 10월 한달만에 예정에 없이 실시됐다. 모든 것을 걸고 공부에 전념해 꿈에도 그리던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70세 현역인생이 변액보험판매관리사 시험 합격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합격소감을 밝히는 이영숙 FP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활동하고,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꼭 도전해보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대한생명 3만여 설계사 중 변액보험 시험 최고령 합격자인 일산지점 교하영업소 이영숙 FP(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변액보험 시험은 증권·채권시장이해, 정보공시, 인접금융상품 이해 등 쉽지 않은 내용이 출제되고 합격률도 평균 30%대 초반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영숙 할머니는 지난 10월에 발표한 변액보험 시험에서 세번의 고배를 마시고 네번째에 합격했다.
이영숙 FP는 지난 90년 1월 55세이던 해에 남편의 공직생활 정년퇴임에 맞춰 대한생명 설계사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
충북 단양이 고향인 이영숙 FP는 처음에는 남편의 반대가 심한데다 생면부지의 경기도 파주에서 영업을 해서 첫달 수당이 불과 18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영숙 할머니는 타고난 성실성과 온화한 품성, 진실된 고객섬김으로 열심히 활동해 10년만인 2000년에는 드디어 억대연봉 설계사 반열에 올랐다. 회사내 최고령 억대연봉설계사로 연도대상에서 상도 받았다.
이후 2년간 화려하게 인생 최정상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8월 갑자기 몸이 무겁고 피곤해 병원을 찾았는데 갑상선암 초기였다.
이영숙 FP는 수술을 받고 잠시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너무나 일하고 싶고 고객을 만나고 싶어서 며칠후 곧바로 영업소로 돌아왔다.
오히려 이 FP는 아팠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완벽한 상품설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심기일전했다.
또 일하는 것만이 병마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통해 완치를 자신했다.
2002년 9월 내친김에 그동안 미뤘던 ‘FP양성센터’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3개월의 교육을 마쳤다. 여기서 재무설계서를 활용한 금융컨설팅 능력 등으로 새롭게 무장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 조금씩 실적이 줄었지만, 매년 60여건의 신계약에 연봉 6000만~7000만원은 거뜬히 넘겼다.
2003년 보험업계에 새로운 상품트렌드 인 변액보험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중금리가 내려가고 이에 따라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고객들의 관심이 변액보험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이 상품은 ‘변액보험판매관리사’ 자격증을 가져야만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영숙FP에게 ‘변액보험판매관리사’ 합격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다만 합격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평균 합격률이 30%대에 불과해 젊은 사람들도 부담스러워하는 시험이다. 더구나 보험상품 이외에 생전 처음으로 주식이나 채권, 공시, 인접금융상품 등을 공부해야만 했다.
그녀는 2003년 3월 공부를 시작해 쉽게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도전했지만 3번에 걸쳐 불합격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냈다. 3개월에 한번인 시험이 갑자기 2004년 10월 한달만에 예정에 없이 실시됐다. 모든 것을 걸고 공부에 전념해 꿈에도 그리던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70세 현역인생이 변액보험판매관리사 시험 합격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합격소감을 밝히는 이영숙 FP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활동하고,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꼭 도전해보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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