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기행 - 충북 충주시내 고구려·백제·신라 유적을 찾아
‘삼국의 각축장’ 충주서 역사 숨결 느껴
지역내일
2004-09-17
(수정 2004-09-17 오후 12:16:43)
“신라시대, 왕은 건강하고 걷는 속도가 비슷한 사람들을 뽑아 영토의 남북 양끝에서 동시에 출발시켰다. 영토의 중앙이 어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여러차례 이같은 일을 해봤지만 건각들은 번번히 중원 탑평리에서 만났다. 그래서 당시 왕은 커다란 탑을 세우고 이곳을 영토의 중앙으로 여겼다.”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에 얽힌 전설이다. 충주시는 오래전부터 ‘영토의 중앙’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요즘도 충주 일대를 ‘중원문화권’이라고 일컫는다.
충주 일대는 2천여년 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세력을 뽐내며 각축을 벌이던 곳이다. 충주는 삼국중 가장 융성한 나라의 차지였다.
특히 충주에는 한반도 유일한 고구려비로 알려져 있는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가 있다. 삼국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곳곳에서 삼국시대 유적과 삼국문화 융합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삼국시대 민족의 기상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특히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으로 역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 여느 관광지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편의시설도 부족하지만 ‘살아있는 교실’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게 해줄 것이다.
◆‘우리민족’ 증거, 중원고구려비
중원고구려비는 전체적으로 만주 즙안현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를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지금은 국보 제205호 대접을 받고 있지만 1979년 고구려비로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장간집 기둥, 빨래터 빨래판 등으로 사용되며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래도 이 비가 있는 마을 이름이 용전리 입석마을 선돌배기라는 곳이어서 고구려비가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왔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자연석을 이용해 비면을 갈고 글자를 새겼으며 현재는 앞면과 좌측면에서만 글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비문 내용은 판독할 수 없는 글자가 있어 완전한 해석은 어렵지만 앞면 시작이 ‘고구려는 신라와 더불어 형제처럼 지냈다(如兄如弟)’, ‘신라에 고구려의 관리를 파견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는 내용(新羅土內幢主) 등이 들어있어 당시 삼국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형여제’라는 말만 봐도 고구려와 신라, 백제 모두가 한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비는 고구려 남쪽 경계선을 이루는 기념비로 장수왕의 영토확장에 대한 공을 기리기 위해 문자왕때 세워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현재는 낡은 보호각 보수공사를 진행중이며 내달께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삼국 숨결이 서린 장미산성
가금면 장천리 산77-1번지 장미산성은 충주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 하다. 총 둘레가 2940여m에 달하는 이 성은 처음에는 백제가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에서 백제 유물이 많이 발견됐다는 게 근거다. 그러나 고구려 세력이 충주지역을 차지했을 때 다시 쌓인 것으로 보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중원고구려비가 있고 이른바 6합구조 또는 품(品)자형 구조에 퇴물림(계단식) 구조로 견고하게 쌓인 점 등을 놓고 보면 그렇다.
장미산성은 현재 복원을 추진중이지만 산을 에둘러 돌다 보면 수천년 그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산성 너머로 남한강과 달천(달래강)이 만나는 지점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삼국시대 이곳에 왜 산성을 쌓았는지까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할 수도 있다.
다 무너져 돌무더기가 된 곳들은 그동안 우리가 역사에 얼마나 무심했던가를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전형적 고구려양식 마애불상군
봉황리 내동마을 입구에는 봉황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고 이 다리를 건너 오른쪽 제방을 따라가면 삼각형 모양을 한 햇골산밑에 이르는 데 이 산 중턱 바위에 양각된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보살상군과 마애여래좌상을 찾아볼 수 있다.
보살상군의 동쪽편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6구의 보살상이 연꽃덩굴로 표현된 좌대에 서 있는 모습이고 서쪽에는 여래좌상과 무릎을 꿇고 앉은 공양상이 조각돼 있다.
충주시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이 마애불상군은 가늘고 긴 세장형 얼굴과 원추형 좌대 등 고구려풍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고구려 장인의 작품이 아닌가 추정된다.
◆한반도 중앙, 중원 칠층석탑
중앙탑공원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탑평리 칠층석탑은 우리나라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다. 신라양식의 탑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 앞에는 석등의 아래부분이 남아 있어 절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절터임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강 옆 평원에 우뚝 솟아 있는 탓에 칠층석탑에 얽힌 전설도 많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전설은 나라의 중앙임을 표시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것. 중앙탑으로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또다른 전설은 충주지역에 왕기가 발흥하고 있어 이를 누르기 위해 건립했다는 것이다. 충주사람들은 이 때문에 자기네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는 우스개소리도 자주 한다. 이밖에 신라 명필 김생이 절을 짓고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설인데, 금가면 반송에 김생사지가 있었던 것이 드러나 사실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사리구나 유물이 같이 발견된 것으로 봐 과거 여러번 탑이 중수, 복원됐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고분군 등 삼국시대 유적 많아
이밖에도 충주시 곳곳에서 삼국시대 유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남한강변 가금면 루암리 마을 뒤쪽 해발 150m의 구릉에서는 200여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는 고분군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진흥왕시절, 영토확장에 따라 수도인 경주에서 이주해 온 신라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너져가는 조국 가야와 신흥강국 신라 사이에서 방황했을 법한 우륵의 사연이 담겨있는 탄금대는 이미 유명한 충주의 문화유산이다. 충주에서 수안보로 가는 국도변에 솟은 살미면 향산리 대림산성, 삼한시대 마고할미 전설이 깃든 충주시 안림동 충주산성,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돌로 소박하게 쌓아 올린 직동 창룡사의 청석탑 등도 삼국시대 유물이다.
◆찾아가는 길
충주 역사문화기행은 중앙탑공원에서부터 시작하면 좋다.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유적들이 주변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나들목에서 청주방향으로 가다가 우회전하면 찾아갈 수 있다. 특히 중앙탑공원에는 중원문화권 주변에 산재한 유물·유적과 민속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충주박물관 2관이 있으며 문화유산해설사를 찾으면 중원문화권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귀동냥할 수 있다.
문의 : 충주시청 문화관광과 043-850-5163
www.chungju.chungbuk.kr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에 얽힌 전설이다. 충주시는 오래전부터 ‘영토의 중앙’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요즘도 충주 일대를 ‘중원문화권’이라고 일컫는다.
충주 일대는 2천여년 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세력을 뽐내며 각축을 벌이던 곳이다. 충주는 삼국중 가장 융성한 나라의 차지였다.
특히 충주에는 한반도 유일한 고구려비로 알려져 있는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가 있다. 삼국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곳곳에서 삼국시대 유적과 삼국문화 융합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삼국시대 민족의 기상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특히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으로 역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 여느 관광지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편의시설도 부족하지만 ‘살아있는 교실’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게 해줄 것이다.
◆‘우리민족’ 증거, 중원고구려비
중원고구려비는 전체적으로 만주 즙안현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를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지금은 국보 제205호 대접을 받고 있지만 1979년 고구려비로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장간집 기둥, 빨래터 빨래판 등으로 사용되며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래도 이 비가 있는 마을 이름이 용전리 입석마을 선돌배기라는 곳이어서 고구려비가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왔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자연석을 이용해 비면을 갈고 글자를 새겼으며 현재는 앞면과 좌측면에서만 글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비문 내용은 판독할 수 없는 글자가 있어 완전한 해석은 어렵지만 앞면 시작이 ‘고구려는 신라와 더불어 형제처럼 지냈다(如兄如弟)’, ‘신라에 고구려의 관리를 파견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는 내용(新羅土內幢主) 등이 들어있어 당시 삼국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형여제’라는 말만 봐도 고구려와 신라, 백제 모두가 한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비는 고구려 남쪽 경계선을 이루는 기념비로 장수왕의 영토확장에 대한 공을 기리기 위해 문자왕때 세워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현재는 낡은 보호각 보수공사를 진행중이며 내달께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삼국 숨결이 서린 장미산성
가금면 장천리 산77-1번지 장미산성은 충주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 하다. 총 둘레가 2940여m에 달하는 이 성은 처음에는 백제가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에서 백제 유물이 많이 발견됐다는 게 근거다. 그러나 고구려 세력이 충주지역을 차지했을 때 다시 쌓인 것으로 보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중원고구려비가 있고 이른바 6합구조 또는 품(品)자형 구조에 퇴물림(계단식) 구조로 견고하게 쌓인 점 등을 놓고 보면 그렇다.
장미산성은 현재 복원을 추진중이지만 산을 에둘러 돌다 보면 수천년 그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산성 너머로 남한강과 달천(달래강)이 만나는 지점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삼국시대 이곳에 왜 산성을 쌓았는지까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할 수도 있다.
다 무너져 돌무더기가 된 곳들은 그동안 우리가 역사에 얼마나 무심했던가를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전형적 고구려양식 마애불상군
봉황리 내동마을 입구에는 봉황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고 이 다리를 건너 오른쪽 제방을 따라가면 삼각형 모양을 한 햇골산밑에 이르는 데 이 산 중턱 바위에 양각된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보살상군과 마애여래좌상을 찾아볼 수 있다.
보살상군의 동쪽편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6구의 보살상이 연꽃덩굴로 표현된 좌대에 서 있는 모습이고 서쪽에는 여래좌상과 무릎을 꿇고 앉은 공양상이 조각돼 있다.
충주시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이 마애불상군은 가늘고 긴 세장형 얼굴과 원추형 좌대 등 고구려풍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고구려 장인의 작품이 아닌가 추정된다.
◆한반도 중앙, 중원 칠층석탑
중앙탑공원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탑평리 칠층석탑은 우리나라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다. 신라양식의 탑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 앞에는 석등의 아래부분이 남아 있어 절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절터임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강 옆 평원에 우뚝 솟아 있는 탓에 칠층석탑에 얽힌 전설도 많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전설은 나라의 중앙임을 표시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것. 중앙탑으로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또다른 전설은 충주지역에 왕기가 발흥하고 있어 이를 누르기 위해 건립했다는 것이다. 충주사람들은 이 때문에 자기네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는 우스개소리도 자주 한다. 이밖에 신라 명필 김생이 절을 짓고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설인데, 금가면 반송에 김생사지가 있었던 것이 드러나 사실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사리구나 유물이 같이 발견된 것으로 봐 과거 여러번 탑이 중수, 복원됐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고분군 등 삼국시대 유적 많아
이밖에도 충주시 곳곳에서 삼국시대 유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남한강변 가금면 루암리 마을 뒤쪽 해발 150m의 구릉에서는 200여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는 고분군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진흥왕시절, 영토확장에 따라 수도인 경주에서 이주해 온 신라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너져가는 조국 가야와 신흥강국 신라 사이에서 방황했을 법한 우륵의 사연이 담겨있는 탄금대는 이미 유명한 충주의 문화유산이다. 충주에서 수안보로 가는 국도변에 솟은 살미면 향산리 대림산성, 삼한시대 마고할미 전설이 깃든 충주시 안림동 충주산성,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돌로 소박하게 쌓아 올린 직동 창룡사의 청석탑 등도 삼국시대 유물이다.
◆찾아가는 길
충주 역사문화기행은 중앙탑공원에서부터 시작하면 좋다.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유적들이 주변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나들목에서 청주방향으로 가다가 우회전하면 찾아갈 수 있다. 특히 중앙탑공원에는 중원문화권 주변에 산재한 유물·유적과 민속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충주박물관 2관이 있으며 문화유산해설사를 찾으면 중원문화권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귀동냥할 수 있다.
문의 : 충주시청 문화관광과 043-850-5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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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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