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장 설치 반대시위에 초등학생을 동원해 일단 시선을 끌어 볼까.’, ‘기상이 악화돼 비행기가 안 떠도 항공사에 일단 항의한 뒤 해결책을 모색해보자.’
참여정부 들어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해져 시위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시위만능주의’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최근 발생한 초등학생 등교거부 시위나 공인중개사 시험 무효화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기상악화로 항공기가 뜨지 못한다고 시위하는 경우도 있다.
법과 제도를 통하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일단 시위를 해서 사회적 관심을 끌어야 쉽게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이 생겨난 것은 정부의 민생 위기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집단행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시위만능주의’ 사례 늘어 = 특정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님비현상’은 ‘시위만능주의’의 대표적인 형태다. 최근 울산시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동원되는 웃지못할 사태가 발생했다. 학부모들이 학교 인근에 음식물 자원화 시설(소각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리자 소각장 반대집회에 자녀 600여명을 앞세워 시위에 참여시킨 것. 초등학교 측과 울산 북구청은 “아이들의 교육을 어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등교거부 철회를 호소했지만 학부모들은 꿈쩍도 안했다.
자격시험내용이 어렵게 나왔다고 시험무효화를 주장하는 시위도 나타났다. 지난달 14일 시행된 제15회 공인중개사시험 응시자들은 “생계형 자격증시험을 사법시험처럼 어렵게 냈다”며 시험무효를 요구했다. 여러 차례의 시위 끝에 정부는 ‘추가시험’ 대책을 내놓아 가까스로 시위가 무마됐다. 정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기는 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각종 자격시험에서 이런 유형의 시위가 발생했을 경우 비슷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항공편이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연착하거나 뜨지 못할 경우 승객들의 잦은 항의도 이 같은 사례 중 하나. 한 항공사 관계자는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경우는 항공사의 잘못이 아닌데도 전후사정을 따져보지 않고 항의성 시위를 벌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이런 사례만 일년에 수십 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지난달 2일에는 3만명의 전국 식당 주인들이 여의도 한강둔치에 모여 솥단지 시위를 벌였다. 집회를 주최한 측은 “극심한 내수침체와 조류독감 파동 등으로 전국 음식점의 80%가량이 적자운영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식당주인들이 한참 장사할 시간에 정부에 경제 불황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생계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금계산서 없이 음식점 농산물 구입액의 일정액을 세금에서 깎아주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참여정부 들어 새롭게 자리잡을 집회와 시위의 풍속도이다.
실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집단민원이나 혐오시설 설치 반대 등 사회분야 시위가 늘어났다.
전체 시위 2만4000여건 중 사회분야 시위는 8200건으로 34%를 차지했다. 지난해 29%에 비하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노사분규보다도 200건이나 많은 수치다. 수치가 늘어난 것은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생계형 시위’가 늘어난 것과 민원성 집단시위가 늘어난데 힘입은 것이다.
사회분야의 시위의 급증에 힘입어선지 참여정부 들어 감소세를 보이던 집회신고건수도 올 들어 대폭 증가했다. 올해 10월말까지 집회신고건수는 2만4000여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만건에 비해 20%나 늘었다. 집회 참가인원도 올해 10월까지 25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가량 늘었다.<표 참조="">
◆민생문제 위기관리시스템 시급 = ‘시위만능주의’ 유형의 시위나 집회가 많아지면서 막대한 국가비용이 지출되고 있는 만큼 정부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칫 저효율 국가시스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이 같은 경향성에 대해 “민생문제에 대한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이 원인”이라고 꼬집고 있다.
경실련 박병옥 사무총장은 “무분별한 시위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의 시위는 정부와 사회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부분을 미리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 않고 집회와 시위만을 문제 삼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도 일부분 공감하고 있다. 정부 관련부처 한 관계자는 “위기관리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행정부처 내 혁신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져야 한다”면서 “정부의 이런 노력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협력지원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의 자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정부는 시민단체와 각종 이익집단과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요구를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집단이기주의에 근거한 방어적 시위까지 정부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해 ‘시위만능주의’와는 선을 그었다.
/홍범택 윤영철 김남성기자 ycyun@naeil.com표>
참여정부 들어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해져 시위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시위만능주의’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최근 발생한 초등학생 등교거부 시위나 공인중개사 시험 무효화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기상악화로 항공기가 뜨지 못한다고 시위하는 경우도 있다.
법과 제도를 통하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일단 시위를 해서 사회적 관심을 끌어야 쉽게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이 생겨난 것은 정부의 민생 위기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집단행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시위만능주의’ 사례 늘어 = 특정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님비현상’은 ‘시위만능주의’의 대표적인 형태다. 최근 울산시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동원되는 웃지못할 사태가 발생했다. 학부모들이 학교 인근에 음식물 자원화 시설(소각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리자 소각장 반대집회에 자녀 600여명을 앞세워 시위에 참여시킨 것. 초등학교 측과 울산 북구청은 “아이들의 교육을 어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등교거부 철회를 호소했지만 학부모들은 꿈쩍도 안했다.
자격시험내용이 어렵게 나왔다고 시험무효화를 주장하는 시위도 나타났다. 지난달 14일 시행된 제15회 공인중개사시험 응시자들은 “생계형 자격증시험을 사법시험처럼 어렵게 냈다”며 시험무효를 요구했다. 여러 차례의 시위 끝에 정부는 ‘추가시험’ 대책을 내놓아 가까스로 시위가 무마됐다. 정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기는 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각종 자격시험에서 이런 유형의 시위가 발생했을 경우 비슷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항공편이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연착하거나 뜨지 못할 경우 승객들의 잦은 항의도 이 같은 사례 중 하나. 한 항공사 관계자는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경우는 항공사의 잘못이 아닌데도 전후사정을 따져보지 않고 항의성 시위를 벌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이런 사례만 일년에 수십 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지난달 2일에는 3만명의 전국 식당 주인들이 여의도 한강둔치에 모여 솥단지 시위를 벌였다. 집회를 주최한 측은 “극심한 내수침체와 조류독감 파동 등으로 전국 음식점의 80%가량이 적자운영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식당주인들이 한참 장사할 시간에 정부에 경제 불황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생계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금계산서 없이 음식점 농산물 구입액의 일정액을 세금에서 깎아주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참여정부 들어 새롭게 자리잡을 집회와 시위의 풍속도이다.
실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집단민원이나 혐오시설 설치 반대 등 사회분야 시위가 늘어났다.
전체 시위 2만4000여건 중 사회분야 시위는 8200건으로 34%를 차지했다. 지난해 29%에 비하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노사분규보다도 200건이나 많은 수치다. 수치가 늘어난 것은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생계형 시위’가 늘어난 것과 민원성 집단시위가 늘어난데 힘입은 것이다.
사회분야의 시위의 급증에 힘입어선지 참여정부 들어 감소세를 보이던 집회신고건수도 올 들어 대폭 증가했다. 올해 10월말까지 집회신고건수는 2만4000여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만건에 비해 20%나 늘었다. 집회 참가인원도 올해 10월까지 25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가량 늘었다.<표 참조="">
◆민생문제 위기관리시스템 시급 = ‘시위만능주의’ 유형의 시위나 집회가 많아지면서 막대한 국가비용이 지출되고 있는 만큼 정부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칫 저효율 국가시스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이 같은 경향성에 대해 “민생문제에 대한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이 원인”이라고 꼬집고 있다.
경실련 박병옥 사무총장은 “무분별한 시위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의 시위는 정부와 사회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부분을 미리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 않고 집회와 시위만을 문제 삼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도 일부분 공감하고 있다. 정부 관련부처 한 관계자는 “위기관리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행정부처 내 혁신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져야 한다”면서 “정부의 이런 노력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협력지원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의 자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정부는 시민단체와 각종 이익집단과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요구를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집단이기주의에 근거한 방어적 시위까지 정부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해 ‘시위만능주의’와는 선을 그었다.
/홍범택 윤영철 김남성기자 ycyun@naeil.com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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