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올해 ‘전자재판’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대법원은 12월 현재 인터넷을 이용해 채무자들을 상대로 내는 지급명령 신청 등 ‘독촉사건’과 관련된 소송 서류를 전자파일로 접수해 재판을 진행시키기 위한 준비를 끝냈다. 종이문서만을 공식문서로 인정한 현행 민사소송법상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바로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와함께 지난 9월 5개 법원에서 ‘전자법정’을 시범운영하기 시작했다. 각종 전자장비를 이용해 재판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한층 높이기 위한 것이다. 관계자들은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재판이 가능할 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편집자 주
김 모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 모씨에게 3000만원을 빌려줬다. 하지만 박씨는 갚기로 한 날이 훨씬 지났는데도 돈이 없다면 차일피 지급기일을 미뤘다.
참다못한 김씨는 인터넷에서 독촉신청서 양식을 찾아 작성했다. 그 뒤 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소송서류를 제출했다. 인지대 역시 온라인으로 결제했다.
법원직원은 김씨가 낸 서류를 확인해 입력한 뒤 재판 기일을 잡았다. 전자파일로 된 기록을 접한 판사는 동영상 송수신이 가능한 전자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 뒤 전자파일로 판결문을 작성해 인터넷으로 관련자들에게 송달했다. 법원 서버컴퓨터에는 이들의 소송관련 자료가 전자기록으로 보존된 것은 물론이다.
‘전자재판’에 대한 가상 이야기지만 법원을 찾지 않아도 소송이 가능할 날이 멀지 않았다.
‘전자재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법정에 전자 장비를 설치하는 이른바 ‘전자법정’이다. 피고와 원고, 검사와 변호사 재판장 앞에 모니터가 있고 모니터를 통해 재판 기록 등을 확인하고 검색할 수 있다.
이 기능이 확장되면 법원에 오지 않아도 화상카메라를 통해 인터넷으로 재판진행이 가능해 진다.
또한 재판의 모든 과정을 녹화하고 성폭행과 같은 특수한 범죄의 경우 법원의 다른 장소에서 피해자가 판사와 단독으로 진술할 수 있는 화상 전송 시스템도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소송서류를 전자문서로 만들어 전산화하는 이른바 ‘전자파일링’방식이다. 재판에 관한 모든 문서가 컴퓨터 파일로 전환되기 때문에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기 전까지의 모든 사항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전자파일링’과 ‘등기전산화’ = 사법부가 인터넷 전자파일을 실용화한 것은 지난 3월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한 ‘등기부등본’ 발부 서비스다.
토지 건물의 주소만 입력하면 법적 효력이 있는 등기부등본을 인터넷을 통해 발급받게 된 것이다.
현재 기능을 더 보강해 등기부등본의 내용을 변경할 때 역시 인터넷을 통해 가능하도록 하다는 계획이다.
‘전자파일링’은 전자파일의 장점을 소송절차에 접목시킨 시스템이다. 대법원은 일단 2006년까지는 적용이 용이한 신청사건(독촉, 제증명 발급, 소액, 부동산 등기촉탁)들을 위주로, 2009년까지는 주요사건(특허본안 행정본안 민사신청)들에, 2010년 이후부터는 민사본안(가사본안 형사공판)을 포함해 ‘전자파일링’을 전면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전자파일링’이 도입될 경우 그동안 2.5개월 가량 걸렸던 독촉사건 처리기간이 1.3개월로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전자법정 = 지난 9월 성폭력사건전담재판부는 ‘전자법정’ 시연회를 가졌다.
전자법정에는 증인과 피고인, 재판부 및 검사, 변호사가 서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대형 모니터와 카메라 등 화상신문장비, 실물화상기, DVD 등 증거현출장비, 영상·음향 녹취 장비, 화상제어스시템 등이 갖춰졌다.
증인실을 별도로 설치해 법정과 쌍방향 대화가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전자파일링’이 완전 현실화되면 법관과 당사자들은 모니터를 통해 사건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자법정은 △재판진행에 있어 업무부담 증가△디지털증거의 조작가능성△첨단장비 운영의 실수가 판결에 줄 영향△사용자의 부적응 등이 이 제도를 운영 중인 선진국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외국은 어떻게 하나 = 대표적인 ‘전자파일링’ 시행 국가는 미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이다.
싱가포르는 의무적으로 모든 법원에서 사건을 전자문서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자파일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별도의 서비스 사무소에서 수수료를 내고 종이서류를 전자문서로 바꾼 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미국은 1996년에 벌써 10개의 연방 지방법원과 35개의 연방 파산법원에서 전자문서 방식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파산법원에서 전자문서 시스템의 활용도가 높다. 이와함께 미국은 몇몇 주에서 93년부터 ‘전자법정’을 운영 중이다.
영토가 넓어 법원에 직접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호주에서는 이미 우편이나 팩스를 통한 송달시스템이 발달했다.
전자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호주에서는 2000년 10월 인터넷을 통한 소장의 제출과 수수료의 신용카드 납부가 허용됐다.
인터뷰-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 최재혁 판사
“세계적 수준의 IT기술, 법체계에 접목”
보수적일 것만 같은 사법부가 세계적 수준의 첨단기술을 업무에 활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 최재혁(38·사진) 판사는 사법부의 ‘사건관리’ 등 법원 내부 전산화 작업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송절차를 전산화한 ‘전자파일링’ 시스템 도입이 약간 늦었지만 이미 구축해 놓은 전산화 기반을 통해 조만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최 판사는 “‘전자파일링’이 도입되면 국민입장에서 법원에 오지 않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소송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며 “법원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져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종이기록 매체에 기반한 소송절차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모든 기록이 전산화되면 국민들의 접근이 용이해진다는 장점뿐만아니라 법원 내부의 업무효율성 증대와 진행 사건의 투명성과 신속성이 보장되는 이점이 있다.
최 판사는 지금까지의 법원 전산화 작업의 핵심으로 내부전산 자동화를 꼽았다. 사법부내부통신망을 통해 모든 사건의 진행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하고 판결문 검색, 분야별 통계 확인 등이 가능하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 86년부터 민사소액사건 관리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일반인들의 경우 사건번호만 알면 대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건의 진행현황을 알 수 있게 만든 것도 그 중 일부다.
최 판사는 “지금까지 법원은 IT사업에 상당한 투자를 해 등기전산화, 법원 내부 전산화 절차 등을 구축해왔다”며 “이를 바탕으로 소송절차의 전산화인 ‘전자파일링’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개혁이 사법부의 국제화 세계화를 의미한다면 ‘전자파일링’은 세계적 수준에 있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정보화 인프라를 한층 끌어올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법부의 역할에도 들어맞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와함께 지난 9월 5개 법원에서 ‘전자법정’을 시범운영하기 시작했다. 각종 전자장비를 이용해 재판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한층 높이기 위한 것이다. 관계자들은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재판이 가능할 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편집자 주
김 모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 모씨에게 3000만원을 빌려줬다. 하지만 박씨는 갚기로 한 날이 훨씬 지났는데도 돈이 없다면 차일피 지급기일을 미뤘다.
참다못한 김씨는 인터넷에서 독촉신청서 양식을 찾아 작성했다. 그 뒤 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소송서류를 제출했다. 인지대 역시 온라인으로 결제했다.
법원직원은 김씨가 낸 서류를 확인해 입력한 뒤 재판 기일을 잡았다. 전자파일로 된 기록을 접한 판사는 동영상 송수신이 가능한 전자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 뒤 전자파일로 판결문을 작성해 인터넷으로 관련자들에게 송달했다. 법원 서버컴퓨터에는 이들의 소송관련 자료가 전자기록으로 보존된 것은 물론이다.
‘전자재판’에 대한 가상 이야기지만 법원을 찾지 않아도 소송이 가능할 날이 멀지 않았다.
‘전자재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법정에 전자 장비를 설치하는 이른바 ‘전자법정’이다. 피고와 원고, 검사와 변호사 재판장 앞에 모니터가 있고 모니터를 통해 재판 기록 등을 확인하고 검색할 수 있다.
이 기능이 확장되면 법원에 오지 않아도 화상카메라를 통해 인터넷으로 재판진행이 가능해 진다.
또한 재판의 모든 과정을 녹화하고 성폭행과 같은 특수한 범죄의 경우 법원의 다른 장소에서 피해자가 판사와 단독으로 진술할 수 있는 화상 전송 시스템도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소송서류를 전자문서로 만들어 전산화하는 이른바 ‘전자파일링’방식이다. 재판에 관한 모든 문서가 컴퓨터 파일로 전환되기 때문에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기 전까지의 모든 사항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전자파일링’과 ‘등기전산화’ = 사법부가 인터넷 전자파일을 실용화한 것은 지난 3월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한 ‘등기부등본’ 발부 서비스다.
토지 건물의 주소만 입력하면 법적 효력이 있는 등기부등본을 인터넷을 통해 발급받게 된 것이다.
현재 기능을 더 보강해 등기부등본의 내용을 변경할 때 역시 인터넷을 통해 가능하도록 하다는 계획이다.
‘전자파일링’은 전자파일의 장점을 소송절차에 접목시킨 시스템이다. 대법원은 일단 2006년까지는 적용이 용이한 신청사건(독촉, 제증명 발급, 소액, 부동산 등기촉탁)들을 위주로, 2009년까지는 주요사건(특허본안 행정본안 민사신청)들에, 2010년 이후부터는 민사본안(가사본안 형사공판)을 포함해 ‘전자파일링’을 전면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전자파일링’이 도입될 경우 그동안 2.5개월 가량 걸렸던 독촉사건 처리기간이 1.3개월로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전자법정 = 지난 9월 성폭력사건전담재판부는 ‘전자법정’ 시연회를 가졌다.
전자법정에는 증인과 피고인, 재판부 및 검사, 변호사가 서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대형 모니터와 카메라 등 화상신문장비, 실물화상기, DVD 등 증거현출장비, 영상·음향 녹취 장비, 화상제어스시템 등이 갖춰졌다.
증인실을 별도로 설치해 법정과 쌍방향 대화가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전자파일링’이 완전 현실화되면 법관과 당사자들은 모니터를 통해 사건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자법정은 △재판진행에 있어 업무부담 증가△디지털증거의 조작가능성△첨단장비 운영의 실수가 판결에 줄 영향△사용자의 부적응 등이 이 제도를 운영 중인 선진국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외국은 어떻게 하나 = 대표적인 ‘전자파일링’ 시행 국가는 미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이다.
싱가포르는 의무적으로 모든 법원에서 사건을 전자문서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자파일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별도의 서비스 사무소에서 수수료를 내고 종이서류를 전자문서로 바꾼 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미국은 1996년에 벌써 10개의 연방 지방법원과 35개의 연방 파산법원에서 전자문서 방식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파산법원에서 전자문서 시스템의 활용도가 높다. 이와함께 미국은 몇몇 주에서 93년부터 ‘전자법정’을 운영 중이다.
영토가 넓어 법원에 직접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호주에서는 이미 우편이나 팩스를 통한 송달시스템이 발달했다.
전자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호주에서는 2000년 10월 인터넷을 통한 소장의 제출과 수수료의 신용카드 납부가 허용됐다.
인터뷰-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 최재혁 판사
“세계적 수준의 IT기술, 법체계에 접목”
보수적일 것만 같은 사법부가 세계적 수준의 첨단기술을 업무에 활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 최재혁(38·사진) 판사는 사법부의 ‘사건관리’ 등 법원 내부 전산화 작업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송절차를 전산화한 ‘전자파일링’ 시스템 도입이 약간 늦었지만 이미 구축해 놓은 전산화 기반을 통해 조만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최 판사는 “‘전자파일링’이 도입되면 국민입장에서 법원에 오지 않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소송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며 “법원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져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종이기록 매체에 기반한 소송절차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모든 기록이 전산화되면 국민들의 접근이 용이해진다는 장점뿐만아니라 법원 내부의 업무효율성 증대와 진행 사건의 투명성과 신속성이 보장되는 이점이 있다.
최 판사는 지금까지의 법원 전산화 작업의 핵심으로 내부전산 자동화를 꼽았다. 사법부내부통신망을 통해 모든 사건의 진행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하고 판결문 검색, 분야별 통계 확인 등이 가능하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 86년부터 민사소액사건 관리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일반인들의 경우 사건번호만 알면 대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건의 진행현황을 알 수 있게 만든 것도 그 중 일부다.
최 판사는 “지금까지 법원은 IT사업에 상당한 투자를 해 등기전산화, 법원 내부 전산화 절차 등을 구축해왔다”며 “이를 바탕으로 소송절차의 전산화인 ‘전자파일링’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개혁이 사법부의 국제화 세계화를 의미한다면 ‘전자파일링’은 세계적 수준에 있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정보화 인프라를 한층 끌어올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법부의 역할에도 들어맞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