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다름’을 위하여, ‘같음’을 향하여(유승삼 2005.1.1)

지역내일 2004-12-30 (수정 2004-12-31 오후 1:05:39)
‘다름’을 위하여, ‘같음’을 향하여
유 승 삼 언론인

교수신문이 교수들에게 올 한 해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물은 결과 ‘같은 사람끼리 패거리 지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는 뜻의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으뜸으로 뽑혔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꼽힌 것이 ‘지리멸렬’과 ‘이전투구’였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지난 한 해를 ‘증오’로 압축했다. 또 다른 이는 ‘적개심’이라고 표현했다.
그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이런 표현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겪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흔히들 정치판에 그 책임을 돌리곤 한다. 물론 정계가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그러나 갈등과 대립의 원인을 정치판에만 돌릴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지난 한 해는 모든 국민이 정치인이 된 것 같았다. 만나면 화제가 정치였다. 어려운 경제문제조차 뒷전으로 밀렸다.

적개심으로 맞대결한 한 해
교과서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깊은 관심이 민주주의와 참여정치를 성숙하게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지난 해 공·사석에서 나타난 과잉 정치의식과 격정적인 표현에서 그런 긍정적인 요소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성이나 논리는 없고 맹목적인 증오와 적개심, 격정과 과격한 언사만이 넘쳐났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 특히 기성세대들은 역사적 격변 속에서 살아 왔다. 일제를 겪고 해방을 맞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4·19, 5·16, 5·18, 6·10 등등 숨 돌릴 틈조차 없이 격변을 겪어 왔다. 그런 세월 동안 우리들의 내면에는 이런저런 일로 해서 증오와 상처가 켜켜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랜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 때문에 그것이 발산되거나 치유되지 않아서 걸핏하면 격렬한 감정적 대립을 빚는다는 것이 정신분석학적 설명이다.
영국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인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며 1914~1992년까지를 ‘극단의 시대’라고 이름지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과 베트남전 그리고 50년간의 냉전이 전개 되었던 그 ‘극단의 시대’도 소련 체제의 붕괴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만은 여전히 ‘극단의 시대’ 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전제는 우리 모두가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세상이 변한 다는 걸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지난 87년 이래 지난 대선과 총선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변화가 말해주는 것은 빙하기의 얼음 속에 갇힌 매머드 같았던 한국 사회도 변화에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과거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홉스봄은 “바람직한 미래를 과거나 현재를 연장해서 건설할 수는 없으며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을 경우 그 결과는 암흑뿐”이라고 단언했다.
사회의 필연적인 변화에 동의한다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다름’에 대한 관용이다. 즉 다른 사람의 주장을 자신의 주장과 같은 값으로 인정하고 평가할 줄 아는 겸손과 관용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고 여겨 남들도 자신과 똑 같은 견해를 갖기를 바라는 것은 독선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낳는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그것들이 다수의 동의를 얻기 위해 규칙에 따라 평화롭게 경쟁하는 게 민주사회이다.
그렇다고 남의 주장을 폭력으로 억압하려는 극단주의까지 이해하고 관용할 수는 없다. 극단주의에는 오히려 철저히 맞서야 한다. 실은 지난 해의 대립과 갈등은 시대 변화에 불안감을 느낀 극단주의자들이 빚어낸 것이다.

공동의 목표 세워 대립 극복을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길은 생각의 차이를 뛰어 넘어 우리들이 함께 추구할 공동의 목표를 만드는 것이다. ‘차이’속에서도 추구할 목표는 ‘같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다. 서구 여러나라들이 복지사회 계획을 경제적 성장 후에 마련한 것은 결코 아니다. 1920년대~40년대에 복지사회의 청사진을 마련한 뒤 그 실현을 목표로 성장을 추구해 왔다. 우리에게는 이런 장기적 청사진이 없다. 장래가 불안하니까 불신과 반목도 커진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노사갈등이나 국민들의 부동산 집착도 따지고 보면 국가가 국민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약속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북구처럼 사회보장제가 잘 확립돼 있다면 노사가 전투적인 대결을 벌일 필요도 없고 국민이 부동산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무한한 흐름 속에 눈금을 그을 줄 아는 것은 인류의 지혜이다. 새해에는 대립과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들만이 역사의 지진아가 되어 ‘극단의 시대’에 아직도 갇혀 있는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음’을 추구하는 희망있는 새해가 되기를 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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