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북한은 ‘생존경쟁’ 중이다. 90년대 들어 경제난으로 중앙계획경제체제가 마비되고 암시장이 활성화되자 북한 당국은 2002년7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물가와 임금을 현실화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며 시장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같은 조치는 미흡하나마 북한 사회의 시장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서는 2005년 들어 ‘7·1 조치’ 이후 북한의 변화 양상과 향후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았다. 이들 보고서를 토대로 2005년 현재 북한 사회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주 1 :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장사를 한다”
‘7·1 조치’이후 북한 주민들은 누구든 장사에 뛰어들었다. 2003년9월 탈북한 한 의사는 “알사탕을 팔든지, 야채를 팔든지 누구든지 어떤 형태든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이 장사에 뛰어든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 극심해진 경제난 때문이다. 중앙계획경제제체의 붕괴로 공식적인 배급이 끊기자 ‘먹고살기 위해’ 암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것이다. ‘7·1 조치’는 이처럼 북한 사회에 만연한 암시장을 국가경제 틀 내로 흡수하기 위한 조치였다. 2003년 3월에는 암시장이었던 농민시장이 시장으로 개칭돼 합법화되기도 했다.
상업이 활성화되니 장사로 돈을 버는 사람도 생긴다. 하지만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하락했다는 것이 최근 탈북한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7·1 조치’ 이후 물가는 평균 25배 올랐지만 임금은 평균 18배 인상되는 데 그쳤고 장사가 자율화되자 경쟁이 치열해져 장사가 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돈이 최고’라는 주민들의 인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7·1 조치’ 이전 북한에서 배급체계가 유지될 때는 식량구입 등 생계비가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에 월급의 개념은 용돈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7·1 조치’ 이후 자신이 버는 돈이 생계비라는 생각이 정착되자 북한주민들 중에 직업으로서의 장사를 선택하는 ‘상인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내가 벌어 내가 먹고사는 체제’가 되자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한 탈북자는 “이제는 당원들이 출당과 책벌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당원 자격이 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대신 높아진 것은 노동의욕이다. 협동농장이나 공장에서 실적에 따른 물질적 인센티브를 주자 일하는 태도가 180。 달라진 것이다. 북한 평균임금의 4배에 달하는 연간 12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놀고 먹는 풍조’를 없애기 위해 ‘7·1 조치’를 취했다면 노동의욕 고취에서는 확실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주 2 : “세금만 내면 누구 소유든 상관없다”
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서 예외일 수 없다. ‘7·1 조치’는 공장의 독립채산제 실시를 명시하고 있다. 중앙계획경제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공장의 생산, 판매와 관련한 세부적 계획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의 임금은 “지배인과 당비서가 머리를 짜내서 종업원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공장과 기업소도 장사에 뛰어들고 있다. 소속 노동자에게 한달에 800원씩 받고 부업으로 장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소는 원자재난과 전력난으로 공장가동이 젼혀 되지 않아 개인의 부업을 관리하는 역할정도만을 하고 있다”고 한 탈북자는 전했다. 60명의 여성을 고용해 군고구마 장사를 하는 기업소도 있다.
국영상점과 식당 등 상업과 서비스업종은 빠르게 사영화돼가고 있다. 소유는 국가이지만 운영은 개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세금만 제대로 내면 누구 소유든 아무 상관 않는다”고 한다. 한 예로 지역마다 편의봉사소에서 온천목욕탕을 운영했는데 과거에는 국가 소유였지만 이제는 기업소의 자율화 방침에 따라 목욕탕의 수입 중에서 일정액의 세금을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자체로 처분하고 있다.
사영화는 정부로서는 농민, 상인, 도시기업인의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주 3 : “경제만 회복되면 과거 체제로 회복될 것”
북한 체제의 시장화는 김정일 정권의 정책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7·1 조치’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경우 과거의 계획경제체제로 되돌아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북한이 도입한 사회주의 물자교류 시장도 오늘의 조건에서 나라가 허리를 펴기 위한 잠정적 조치”라며 “앞으로 국가경제를 추켜세우면 다시 제 기능을 갖추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7·1 조치’ 이후 확산되고 있는 시장경제, 국영상점의 사영화, 임금노동제, 화폐경제, 소상품생산제 등의 추세를 역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언젠가는 개혁·개방을 않고서는 못산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증가하고 있고 북한 당국이 개혁·개방을 거스르는 정책을 취할 경우 이들의 불만이 어떻게 폭발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획기적인 경제개혁 조치가 뒤따르지 않자 주민들 사이에서 “이것은 개방도 아니다. 풀어놓지도 않고 개인농도 아니고, 배급도 안주고, 장사라도 하게 할 것이지”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결국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동아시아 모델을 따라서 사회주의시장경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제호 기자 news21@naeil.com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서는 2005년 들어 ‘7·1 조치’ 이후 북한의 변화 양상과 향후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았다. 이들 보고서를 토대로 2005년 현재 북한 사회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주 1 :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장사를 한다”
‘7·1 조치’이후 북한 주민들은 누구든 장사에 뛰어들었다. 2003년9월 탈북한 한 의사는 “알사탕을 팔든지, 야채를 팔든지 누구든지 어떤 형태든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이 장사에 뛰어든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 극심해진 경제난 때문이다. 중앙계획경제제체의 붕괴로 공식적인 배급이 끊기자 ‘먹고살기 위해’ 암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것이다. ‘7·1 조치’는 이처럼 북한 사회에 만연한 암시장을 국가경제 틀 내로 흡수하기 위한 조치였다. 2003년 3월에는 암시장이었던 농민시장이 시장으로 개칭돼 합법화되기도 했다.
상업이 활성화되니 장사로 돈을 버는 사람도 생긴다. 하지만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하락했다는 것이 최근 탈북한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7·1 조치’ 이후 물가는 평균 25배 올랐지만 임금은 평균 18배 인상되는 데 그쳤고 장사가 자율화되자 경쟁이 치열해져 장사가 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돈이 최고’라는 주민들의 인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7·1 조치’ 이전 북한에서 배급체계가 유지될 때는 식량구입 등 생계비가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에 월급의 개념은 용돈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7·1 조치’ 이후 자신이 버는 돈이 생계비라는 생각이 정착되자 북한주민들 중에 직업으로서의 장사를 선택하는 ‘상인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내가 벌어 내가 먹고사는 체제’가 되자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한 탈북자는 “이제는 당원들이 출당과 책벌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당원 자격이 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대신 높아진 것은 노동의욕이다. 협동농장이나 공장에서 실적에 따른 물질적 인센티브를 주자 일하는 태도가 180。 달라진 것이다. 북한 평균임금의 4배에 달하는 연간 12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놀고 먹는 풍조’를 없애기 위해 ‘7·1 조치’를 취했다면 노동의욕 고취에서는 확실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주 2 : “세금만 내면 누구 소유든 상관없다”
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서 예외일 수 없다. ‘7·1 조치’는 공장의 독립채산제 실시를 명시하고 있다. 중앙계획경제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공장의 생산, 판매와 관련한 세부적 계획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의 임금은 “지배인과 당비서가 머리를 짜내서 종업원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공장과 기업소도 장사에 뛰어들고 있다. 소속 노동자에게 한달에 800원씩 받고 부업으로 장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소는 원자재난과 전력난으로 공장가동이 젼혀 되지 않아 개인의 부업을 관리하는 역할정도만을 하고 있다”고 한 탈북자는 전했다. 60명의 여성을 고용해 군고구마 장사를 하는 기업소도 있다.
국영상점과 식당 등 상업과 서비스업종은 빠르게 사영화돼가고 있다. 소유는 국가이지만 운영은 개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세금만 제대로 내면 누구 소유든 아무 상관 않는다”고 한다. 한 예로 지역마다 편의봉사소에서 온천목욕탕을 운영했는데 과거에는 국가 소유였지만 이제는 기업소의 자율화 방침에 따라 목욕탕의 수입 중에서 일정액의 세금을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자체로 처분하고 있다.
사영화는 정부로서는 농민, 상인, 도시기업인의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주 3 : “경제만 회복되면 과거 체제로 회복될 것”
북한 체제의 시장화는 김정일 정권의 정책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7·1 조치’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경우 과거의 계획경제체제로 되돌아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북한이 도입한 사회주의 물자교류 시장도 오늘의 조건에서 나라가 허리를 펴기 위한 잠정적 조치”라며 “앞으로 국가경제를 추켜세우면 다시 제 기능을 갖추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7·1 조치’ 이후 확산되고 있는 시장경제, 국영상점의 사영화, 임금노동제, 화폐경제, 소상품생산제 등의 추세를 역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언젠가는 개혁·개방을 않고서는 못산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증가하고 있고 북한 당국이 개혁·개방을 거스르는 정책을 취할 경우 이들의 불만이 어떻게 폭발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획기적인 경제개혁 조치가 뒤따르지 않자 주민들 사이에서 “이것은 개방도 아니다. 풀어놓지도 않고 개인농도 아니고, 배급도 안주고, 장사라도 하게 할 것이지”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결국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동아시아 모델을 따라서 사회주의시장경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제호 기자 news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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