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본주의 동무, 어서 오시오”
북 사회 새 물결 주도하는 세 집단은 ‘일본계·중국계·중국 친척둔 한국인’
지역내일
2005-01-13
(수정 2005-01-13 오전 11:50:31)
호주국립대학교의 안드레이 랜코브 교수는 노틸러스연구소 기고문을 통해 “북한은 이미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으며 이 흐름은 북한정부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됐다”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세 집단을 소개했다. 랜코브 교수의 의견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북한에서는 느리기는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변화는 1990년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북한경제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1991~99년 북한의 GDP가 반으로 줄어들면서 배급경제가 사실상 중단되자 북한 주민들은 개인적인 영리행위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소규모의 시장이 급속도로 형성되었고 정부도 국내여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어서 소규모 무역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이새로운 비즈니스에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자들이 실직을 두려워하여 국영기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여성들은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섰다.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자 새로운 서비스산업이 발달했다. 음식점과 여관이 시장 근처에 생기기 시작했고 1950년대 이후 북한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직업여성들과 개인금융업자들도 나타났다. 북한으로서는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상황으로 정부가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는 사이에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는 세 집단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계 한국인, 중국계 한국인 그리고 중국에 친척을 둔 한국인들이다.
일본계 한국인이라 함은 1960년대의 북송교포들과 그들의 자녀들이다. 당시 약 9만5000명이 북한으로 이주 했는데 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20~25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은 일본의 친척으로부터 자금을 제공 받아왔다. 과거 이들은 북한정권의 감시 대상이었지만 주요한 외화 소득원이었기 때문에 활동이 비교적 자유스러운 편이었다.
이들은 북한의 경제질서가 바뀌기 시작하자 재빨리 일본의 친척이 보내주는 자금을 무역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북송교포 1세들은 친척들이 보내주는 자금과 그들이 일본에 있을 때 배웠던 자본주의 경제지식을 결합시켜 북한 자본주의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두번째 집단은 화교출신 북한인들이다. 이들은 중국경제의 성장과 함께 중국의 친척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화교들이 친척들로부터 받는 가장 큰 도움은 현금지원이 아니라 사업과 무역기반 구축을 위한 간접적 지원이었다. 그리고 화교집단은 지난 수십년 동안 북한주민 가운데서 개인자격으로 해 외여행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집단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물결이 일기 전에도 소규모의 밀수를 통해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독특한 계층이었다. 90년대 들어 화교의 무역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교역규모를 갑자기 늘일 수 있었던 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지만 어쨌던 이들은 90년대 이후 중국 내의 친척들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해 가고 있다.
세번째 집단은 중국에 친척을 둔 북한주민들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과의 접경지대에 살면서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소규모 밀거래를 하고있다. 이들도 친척들로부터 현금지원은 거의 못 받았지만 자본주의 경제원리를 배우고 중국 내 시장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정부는 이 자본주의 물결을 이끈다기 보다 단순히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2년 경제개혁 조치를 실시한 것은 이런 사회현상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90년 이후 스탈린주의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먼 길을 왔던 북한은 2002년 조치로 인해 이제는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김광호 리포터 holhol@naeil.com
북한에서는 느리기는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변화는 1990년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북한경제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1991~99년 북한의 GDP가 반으로 줄어들면서 배급경제가 사실상 중단되자 북한 주민들은 개인적인 영리행위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소규모의 시장이 급속도로 형성되었고 정부도 국내여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어서 소규모 무역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이새로운 비즈니스에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자들이 실직을 두려워하여 국영기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여성들은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섰다.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자 새로운 서비스산업이 발달했다. 음식점과 여관이 시장 근처에 생기기 시작했고 1950년대 이후 북한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직업여성들과 개인금융업자들도 나타났다. 북한으로서는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상황으로 정부가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는 사이에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는 세 집단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계 한국인, 중국계 한국인 그리고 중국에 친척을 둔 한국인들이다.
일본계 한국인이라 함은 1960년대의 북송교포들과 그들의 자녀들이다. 당시 약 9만5000명이 북한으로 이주 했는데 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20~25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은 일본의 친척으로부터 자금을 제공 받아왔다. 과거 이들은 북한정권의 감시 대상이었지만 주요한 외화 소득원이었기 때문에 활동이 비교적 자유스러운 편이었다.
이들은 북한의 경제질서가 바뀌기 시작하자 재빨리 일본의 친척이 보내주는 자금을 무역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북송교포 1세들은 친척들이 보내주는 자금과 그들이 일본에 있을 때 배웠던 자본주의 경제지식을 결합시켜 북한 자본주의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두번째 집단은 화교출신 북한인들이다. 이들은 중국경제의 성장과 함께 중국의 친척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화교들이 친척들로부터 받는 가장 큰 도움은 현금지원이 아니라 사업과 무역기반 구축을 위한 간접적 지원이었다. 그리고 화교집단은 지난 수십년 동안 북한주민 가운데서 개인자격으로 해 외여행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집단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물결이 일기 전에도 소규모의 밀수를 통해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독특한 계층이었다. 90년대 들어 화교의 무역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교역규모를 갑자기 늘일 수 있었던 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지만 어쨌던 이들은 90년대 이후 중국 내의 친척들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해 가고 있다.
세번째 집단은 중국에 친척을 둔 북한주민들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과의 접경지대에 살면서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소규모 밀거래를 하고있다. 이들도 친척들로부터 현금지원은 거의 못 받았지만 자본주의 경제원리를 배우고 중국 내 시장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정부는 이 자본주의 물결을 이끈다기 보다 단순히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2년 경제개혁 조치를 실시한 것은 이런 사회현상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90년 이후 스탈린주의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먼 길을 왔던 북한은 2002년 조치로 인해 이제는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김광호 리포터 holh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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