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철학의 빈곤에서 벗어나자(박석무 2005.01.25)

지역내일 2005-01-24 (수정 2005-01-25 오후 1:18:53)
철학의 빈곤에서 벗어나자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

요즘 실용(實用)과 실용주의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되면서 을유년 새해 초의 화두라고 야단이다. 실용을 추구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는 방향이야 탓할 수 없이 옳은 발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용어나 단어의 본뜻이 무엇이고 그런 이론이 실현되려면 어떤 기초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의 환경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환경이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의식이 또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환경은 대체로 원론이나 원리의 탐구에 마음을 기울이기보다는 현상에 젖어들어 거기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로 여겨진다. 금전만능주의나 물신주의(物神主義)가 모든 원론이나 원리에 앞서 가장 위력을 발하는 행동의 지침이 되었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가장 많은 수익만 올리고, 가장 잘 돈만 번다면 가장 우수한 경영인이고 휼륭한 기업가로 대접받기 십상이다.

다산은 당대의 대표적 철학자
마찬가지로 현상에 가장 잘 대응하고 기발한 착상으로 당장의 난관을 순간적으로 극복하기만 요구하고 원칙과 원론에 의하여 원대하고 항구적인 계책을 수립하는 것에는 등한할 수밖에 없게 되어 간다. 품위가 있거나 격조가 높은 일이어서 얼마간의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는 일은 별로 빛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과 세태가 위세를 부리면서 세상은 갈수록 ‘철학의 빈곤’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200년 전에 우리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철학이 빈곤하고서는 실용이니 실학(實學),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높은 가치는 절대로 실현되지 못한다고 분명한 가르침을 내렸었다. 그렇게 실용과 실학을 강조하고 실사구시의 세상이 도래하기를 염원했건만, 그 실현의 전제에는 반드시 ‘철학의 빈곤’으로부터의 탈피가 앞서야 한다고 했다. “반드시 먼저 철학〔經學〕으로 밑바탕〔基址〕을 굳건히 안착〔立著〕시킨 뒤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정치의 득실(得失)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난리가 난 이유 등의 근원을 알아내야한다. 그러한 뒤에야 또 반드시 ‘실용의 학문’〔實用之學 〕에 마음을 기울이고 옛날 사람들의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저서, 즉 경제문자(經濟文字)를 즐겨 읽도록 하라”는 원론을 가르쳐 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조선 5백년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경세가(經世家)로 다산 정약용을 꼽지만, 그가 그런 높은 수준의 경세가가 되기 이전에 그는 정말로 독실하게 경학(經學)의 연구에 골몰했던 경학가(經學家), 즉 철학자였음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산은 젊은 시절 벼슬하기 전부터 성균관에서 공부하며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경학에 높은 공부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젊은 날에 시경(詩經)·대학(大學)·중용(中庸) 등에 대한 연구서를 임금에게 올려 얼마나 융숭한 칭찬을 받았는지는 기록에 자세히 남아 있다. 40세에 나라에서 버림을 받고 내침을 당해, 먼먼 바닷가 귀양지에 이르자 그는 본격적으로 경학의 연구에 18년의 긴긴 세월을 보냈다.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물이 무려 232권을 훨씬 웃돌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에서 보이듯, 너무도 크고 넓게 깊이 철학을 연구한 당대의 대표적 철학자였음은 세상이 인정하는 일이다.

“禮樂 익힌 뒤 兵農 실천해야”
우리가 흔히 일컫는 경세서인 『경세유표』·『목민심서』 등은 철학사상이 익은 뒤인 유배 말년인 마지막 해에 저술했다는 사실에서 그 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철학으로서의 경서연구, 그 결과 철학의 원리 아래에 이룩된 실용학문인 경세서, 이렇게 본(本)과 말(末)이 구비되었음을 다산 자신이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본에 대한 철학이나 실천의지는 전혀 없으면서 말인 실용만 따지고 있으니 본말의 도착이자 모순으로 귀결된다.
문학·역사·철학의 인문학의 기초가 천대받고, 자연과학의 기초분야가 설 자리가 취약해진 오늘의 뒤틀린 현상에서 어떻게 역사발전이 이룩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다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역사를 이끈다고 착각에 빠진 지도자들,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떠드는 지도자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의 가치관을 먼저 세우는 등 철학의 빈곤에서 벗어난 뒤에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아들아, 예악(禮樂)을 익힌 뒤 정형(政刑)·병농(兵農)을 실천해라”라는 다산의 가르침이 새삼스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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