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⑦ 창업점포지원 받아 굴요리전문점 낸 박서경씨

“가게 시작할때 인생도 새로 시작했죠”

지역내일 2004-12-29
박서경 씨(43세)와의 대화는 유쾌하다. 군더더기 없는 솔직한 화법 때문일까. 때론 암담하고 막막하기도 했을 실업자 시절의 이야기나 주식 투자로 큰돈을 날린 이야기도 희한하게 그의 입만 통과했다 하면 경쾌한 버전으로 바뀐다. 올 3월 그는 서울 삼성역 근처에 ‘굴사랑’이라는 굴요리 전문점을 냈다. 음식점 열 곳 중 세 곳이 문을 닫는다는 불경기에 가게 문을 열어놓고도, 그는 별로 조급한 기색이 없다. 인근의 다른 곳에 비해 장사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원체가 안달복달하는 성미가 아니다.
“살면서 돈을 벌어 보기도 하고 잃어 보기도 했지만 돈이라는 게 마음먹는다고 벌어지는 게 아니데요. 돈이 사람을 쫓아 와야지 사람이 돈을 쫓아가면 안 되더라고요.”
아직까지 ‘죽겠다’, ‘못 살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살아왔다는 박서경 씨. 그러나 2003년 느닷없이 실업자 신세가 된 그에게 창업은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박서경 씨는 자신이 식당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는 직장인이었다. 1988년 말, LG 유통 자금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6년 동안 착실히 실무 경력을 쌓았고, 우여곡절 끝에 금융사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추진력과 관리능력을 인정받아 중견 간부로 성장했다. 대기업의 안정된 일자리를 박차고 중소업체로 옮기려는 그를 의아해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보다 절박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금융사는 제조업보다 페이도 세고, 일도 깔끔하잖아요. 9시 출근 6시 칼퇴근, 아 정말 편하대요. LG에서는 자금이나 세무 업무만 했기 때문에 칼퇴근이 불가능해요. 토요일도 은행 돌고 자금 다 막고 나면 4시가 훌쩍 넘죠. 금융회사로 옮기기 전에 LG백화점 사원 1호로 백화점 설립 실무를 담당했거든요. 철야를 한 달에 보름, 스무날씩 뛰었어요. 사업 계획 짜는데 밤새워 짜놓은 거 아침에 올리면 또 새로 짜야 하고. 그걸 일 년 가까이 하니까 몸도 지치고 가정생활도 말이 아니었죠. 때마침 96년 1월에 정식금융기관으로 승인이 난 동서할부금융에서 인원을 모집한 거예요.”
그러나 그가 ‘칼퇴근’의 재미는 2년에 불과했다. IMF가 닥친 것이다.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금융회사들이 IMF 한파에 휘둘려 속속 무너지는 가운데, 비슷한 위기를 맞은 동서할부금융의 사장은 뉴욕 뉴스테이트홀딩 사에 회사를 팔았다. 그 매각 작업을 당시 관리팀장이었던 박서경 씨가 맡았다.

가는 곳 마다 ‘일복’ 터진 인생
“와이프가 나보고 ‘일복이 터졌다’고 했었어요. 매각이 결정됐다고 그 사람들이 금방 사는 게 아니거든요. 서너 번씩 와서 실사도 하고, 계속 그쪽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만들어 보내줘야 했어요. 근데 거기하고 9시간 시차가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출근해서 자료 보내달라는 전화가 오는 시간이 대략 새벽 3시, 4시예요.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팩스를 보내줘야 되거든요. 그걸 10개월을 했어요. 인수가 완료되면서, 회사 이름도 뉴스테이트캐피탈로 바뀌었죠.”
얼마 후 뉴스테이트캐피탈이 대구의 영남주택금융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인수담당자로서 대구에 파견되었던 그는 뉴스테이트캐피탈 대구지점 지점장으로 눌러앉게 된다.
“그때만 해도 돈 많은 회사가 인수를 했으니 빵빵하게 잘 나갈 줄 알았죠. 본가도 처가도 대구에 있었고. 회사에서 사택도 준대요. 그래 99년 6월부터 대구 지점장으로 한 2년 있었어요. 그런데 인수한 사람이 증자 이행을 안 한 거예요. 다른 채권단 금융기관에서 압박이 올 거 아닙니까. 조기상환이 막 들어오는데, 회사가 자기 자본이 없으니까 시들시들한 거예요. 마침 그때 산업할부금융을 인수한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죠.”
그러나 산업할부금융에서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회사 인수자 가운데 악성 사채업자가 끼어 있었던 것. 이들은 인수합병 과정에서 공동 인수자들의 지분을 야금야금 사들여 실권을 장악한 뒤 회사를 평정하였다. 가동 가능한 현금을 쏙쏙 빼먹으며 회사를 망가뜨리는 이들의 행태를 더는 지켜볼 수 없어 박서경 씨는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얼마 후 사채업자들이 구속되고 그를 스카우트했던 사장이 복권하면서 잠시 원직에 복귀했지만 회사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결국 2003년 6월 회사가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자 고액연봉자에 속했던 그는 1순위로 해고되고 말았다.
한창 일할 나이에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헤드헌터 회사에 이력서를 올리는 등 적극적으로 구직을 시도했다. 면접도 수없이 봤다. 특정한 자리와 보수를 고집할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짱짱한’ 경력은 오히려 취직에 걸림돌이 됐다. 다들 ‘우선은 급해서 할지 몰라도 조금만 좋은 데 있으면 딴 데 옮겨갈 놈’이라고 의심하는 눈치였다. 잦은 이동과 전직으로 퇴직금이라야 몇 푼 되지도 않았다. 모아놓은 돈은? 금융사 지점장과 중견 간부를 지낸 사람인데 얼마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놈의 주식’ 때문에!
“LG 유통에 들어가니까 위에서 ‘주식을 해 보라.’는 거예요. 그래야 자금 돌아가는 사정도 알고 관심도 생긴다는 거죠. 멋모르고 3백만 원 가지고 시작했어요. 88년, 89년 얼마나 좋을 땝니까. 하루에 10만 원도 벌고 20만 원도 벌고 하여간 꽤 재미를 봤어요. 계산해 보니 한 달에 한 2, 3백 벌겠더라구요. 야, 3백으로 2백 벌었으니 3천 하면 2천씩 벌 게 아닌가. 그래 빚내서 주식을 하게 된 거죠. 아, 그때 주식만 안 했어도 ….”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을 갚기 위해 ‘월급 타면 이자 갚는 인생’을 살았다는 박서경 씨. 이제 빚은 다 정리했지만 그의 앞에는 실직자의 차가운 현실이 남아 있었다. 서서히 취업은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 무렵, 근로복지공단에서 6개월 이상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1억 한도 내에서 창업점포지원을 해 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눈이 확 뜨였다. 공단에 서류를 접수한 것이 2003년 12월, 인터넷을 뒤져 유망업종을 물색하고 점포를 확정한 뒤 식당을 개업한 게 올 3월. 회사 다닐 때 사업추진력을 인정받았다더니, 실로 ‘속전속결’이 무엇인지를 실천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두둑한 밑천도, 장사 경험도 없지만 경상도 사나이의 뚝심과 추진력, 한번 시작한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열정으로 창업에 성공했다. 가게를 오픈하는 데 들어간 총 비용 2억 2천만 원 중에서 1억은 근로복지공단의 자영업 창업 지원금으로, 9천만 원은 아파트담보대출로 해결했다. 14년의 직장생활이 남긴 유일한 재산이자 가족들의 보금자리인 용인의 32평 아파트를 담보로 창업 자금을 마련하는 마음이 어찌 편하기만 했으랴.

뚝심과 추진력, 열정이 성공 밑천
파란 많았던 14년 직장 생활도, 녹록치 않은 40년 삶의 굴곡도 특유의 유머감각과 낙천성으로 눅여 온 그이지만, 그라고 해서 어찌 괴로움을 모르겠는가. 아내 말마따나 ‘일복 터진’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장사를 시작한 뒤로는 하루 24시간이 더욱 짧다. 오죽하면 해병대를 나온 그가 ‘군대보다 더 힘들다.’는 푸념을 할까. 아버지를 닮아 일찌감치 세기 시작한 머리가 ‘창업 스트레스’로 인해 온통 백발이 되었다. 내친 김에 길게 길러 묶어 볼 참이다.
박서경 씨는 생전 안 하던 일을 하느라 몰라보게 야윈 부인 윤은현 씨가 살 빠졌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심 가슴이 아프다. 은현 씨는 91년 환갑을 맞은 부친의 성화로 백 번도 넘게 선을 본 끝에 만났다. 선 본 날 저녁, ‘웬만하면 한 칫솔 쓰자.’고 프러포즈 해 온 이 멋대가리 없는 남자에게 ‘넘어가’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도 버리고 서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는 은현 씨는 남편이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이들 부부는 아침 8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식당 근처에 사무실이 많아 점심 손님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귀가시간은 빨라야 12시, 늦으면 1시. 늦은 밤 잠든 아이들을 내려다볼 때마다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초등학교 4학년, 3학년생인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거쳐 집에 돌아오는 시각은 저녁 7시.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지만 저녁은 저희들이 알아서 차려먹어야 한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곧바로 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해놓고 가긴 하지만 스스로 이것저것 챙겨먹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준비해 둔 음식들이 냉장고에서 썩어 가고 있는데도 김치면 김치, 카레면 카레 한 가지만 꺼내놓고 끼니를 때운 흔적이 역력한 식탁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그 미안함과 아쉬움 때문에 휴일만은 확실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집이 용인이라 에버랜드는 거의 자기 집 정원처럼 드나든다.
개업한 뒤 봄, 여름, 가을을 지났으니 올 겨울만 나면 온전히 한 바퀴를 도는 셈. 중간평가를 해 본다면 굴요리 전문점의 비수기라 할 수 있는 7, 8월경엔 가게 운영이 빠듯할 정도로 매출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봄, 가을, 특히 11월 이후 매출은 가파른 상승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성수기 월평균 매출은 2천5백~3천만 원, 비수기는 1천2백~1천5백, 순수익은 매출액의 30% 선이다. 한 달 생활비는 아이들 교육비 60만 원을 합친 210만 원. 남는 돈은 대출금 갚는 데 쓴다. 대구에 계신 부모님이 경제적 능력이 있는 편이라 명절 때 조금씩 용돈만 드린다.
가게에 매어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기도 하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운영해 나갈 수 있다는 건 자영업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깨끗하게 비운 접시들이 주방으로 들어올 때 가장 흐뭇하다는 박서경 씨는 뭐니 뭐니 해도 ‘저녁에 돈 셀 때가 가장 보람 있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 내 인생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은 할 만큼 해 봤고, 이 일은 이제 시작이니까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테마 있는 식당’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바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밥도 먹고 다양한 취미 생활도 할 수 있는 ‘즐겁고 맛있는 색다른 공간’ 있잖아요. 목하 연구 중이니까 기대해 주세요.”

/글 김기선·사진 백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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