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논란 무익하다
국방부가 다음달 발행할 2005년도판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主敵)이라 해온 표현을 삭제키로 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또다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늦었지만 잘한 일로 당연하다고 환영하는 반면 한나라당측에서는 북한이 대남 적화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고 북의 군사적 위협이 엄연한데 ‘주적’을 삭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논란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며 소모적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오는 배경을 모르는바 아니다. ‘주적’삭제 여부가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국방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문제가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 즉 이데올로기적 상징성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정부가 이를 애써 삭제키로 한 것 또한 이데올로기적 상징성 때문임을 이해하고 있다.
세계에서 ‘주적’을 따로 명시하는 나라는 없어
우리는 삭제 반대 논리를 수긍할 수 없다. 우선 군대를 갖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도 ‘주적’을 따로 명시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군대란 국토를 방위하는 게 기본 임무이므로 국방을 위협하는 어느 나라나 적인 것이지 주적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주적이 있다면 종적(從敵)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의 종적은 누구인가.
다음으로는 백서에 ‘주적’이 삽입된 경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0여년 전인 94년 3월 남북이 특사교환을 위해 판문점에서 실무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북측대표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한 발언을 계기로 95년도 국방백서에서부터 북한〓주적이란 표현이 백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95년 이전에는 북한은 우리에게 무슨 적이었는가. 그리고 ‘주적’이후 북한은 우리에게 ‘주적’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가. ‘주적’ 이전의 우리의 반공태세는 ‘주적’이후 보다 취약 했는가. 주적이란 말은 북한의 핵문제로 해서 양측의 심사가 몹시 사나울 때 불바다 발언이 튀어 나왔고 그런 분위기에서 일시적으로 들어간 표현 일뿐 그것이 따로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런 단어 하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정신적 미숙을 새삼 들춰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런 논란을 예감했음인지 새 ‘국방백서’에서 ‘주적’대신 북한이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군사위협”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이런 것도 삭제 반대만큼이나 미숙한 대처라 생각한다.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위협이란 단서를 달았다고 해서 북한이 위협이 되며 이런 말꼬리가 없다고 해서 북한이 위협이 아닐 리도 없는 것 아닌가. 주적 표현을 삭제하면 했지 또 무슨 꼬리를 달아 놓는다는 것인가.
물론 군대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다. 군내 일부의 불평을 아우르고 정치권 보수세력의 입막음을 하려는 의도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우리 군의 의식이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상정하는 것도 어쩌면 국방부 지도부의 착각일지 모른다. 일부 보수정치권은 예외지만 말이다.
칙칙한 냉전의 누더기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
북한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대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통일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군사적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지만 북한군에도 현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남북 해군간에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북한 경제수역에서 발생한 우리 선박의 조난에 북한이 우리 경비정과 항공기의 진입을 전격적으로 허용할 정도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부에서는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남한이 북한에 적화통일 되리라고 믿는 사람이 정치권 말고 우리 국민 중에 과연 몇이나 되는 것일까.
주적논란이나 국가보안법 개폐논란 같은 것들이 문제되는 것은 그것 자체보다 국민사고의 틀을 냉전시대에 묶어두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21세기에 살고 있으면서 사고는 20세기 식으로 하게 되면 머리와 손발이 맞지 않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이제 우리도 그 칙칙한 냉전의 누더기를 훌훌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임 춘 웅 객원논설위원
국방부가 다음달 발행할 2005년도판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主敵)이라 해온 표현을 삭제키로 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또다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늦었지만 잘한 일로 당연하다고 환영하는 반면 한나라당측에서는 북한이 대남 적화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고 북의 군사적 위협이 엄연한데 ‘주적’을 삭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논란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며 소모적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오는 배경을 모르는바 아니다. ‘주적’삭제 여부가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국방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문제가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 즉 이데올로기적 상징성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정부가 이를 애써 삭제키로 한 것 또한 이데올로기적 상징성 때문임을 이해하고 있다.
세계에서 ‘주적’을 따로 명시하는 나라는 없어
우리는 삭제 반대 논리를 수긍할 수 없다. 우선 군대를 갖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도 ‘주적’을 따로 명시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군대란 국토를 방위하는 게 기본 임무이므로 국방을 위협하는 어느 나라나 적인 것이지 주적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주적이 있다면 종적(從敵)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의 종적은 누구인가.
다음으로는 백서에 ‘주적’이 삽입된 경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0여년 전인 94년 3월 남북이 특사교환을 위해 판문점에서 실무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북측대표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한 발언을 계기로 95년도 국방백서에서부터 북한〓주적이란 표현이 백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95년 이전에는 북한은 우리에게 무슨 적이었는가. 그리고 ‘주적’이후 북한은 우리에게 ‘주적’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가. ‘주적’ 이전의 우리의 반공태세는 ‘주적’이후 보다 취약 했는가. 주적이란 말은 북한의 핵문제로 해서 양측의 심사가 몹시 사나울 때 불바다 발언이 튀어 나왔고 그런 분위기에서 일시적으로 들어간 표현 일뿐 그것이 따로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런 단어 하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정신적 미숙을 새삼 들춰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런 논란을 예감했음인지 새 ‘국방백서’에서 ‘주적’대신 북한이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군사위협”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이런 것도 삭제 반대만큼이나 미숙한 대처라 생각한다.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위협이란 단서를 달았다고 해서 북한이 위협이 되며 이런 말꼬리가 없다고 해서 북한이 위협이 아닐 리도 없는 것 아닌가. 주적 표현을 삭제하면 했지 또 무슨 꼬리를 달아 놓는다는 것인가.
물론 군대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다. 군내 일부의 불평을 아우르고 정치권 보수세력의 입막음을 하려는 의도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우리 군의 의식이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상정하는 것도 어쩌면 국방부 지도부의 착각일지 모른다. 일부 보수정치권은 예외지만 말이다.
칙칙한 냉전의 누더기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
북한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대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통일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군사적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지만 북한군에도 현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남북 해군간에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북한 경제수역에서 발생한 우리 선박의 조난에 북한이 우리 경비정과 항공기의 진입을 전격적으로 허용할 정도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부에서는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남한이 북한에 적화통일 되리라고 믿는 사람이 정치권 말고 우리 국민 중에 과연 몇이나 되는 것일까.
주적논란이나 국가보안법 개폐논란 같은 것들이 문제되는 것은 그것 자체보다 국민사고의 틀을 냉전시대에 묶어두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21세기에 살고 있으면서 사고는 20세기 식으로 하게 되면 머리와 손발이 맞지 않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이제 우리도 그 칙칙한 냉전의 누더기를 훌훌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임 춘 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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