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검찰의 미묘한 갈등이 마침내 폭발했다. 검찰이 수사기록과 증거 등을 재판부와 변호인 측에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비록 검찰 전체 의견은 아닐지라도 재판과정의 불문율을 깬 파격적 행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판중심주의’와 최근 영장기각률이 높아지는데 따른 반발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 “공소유지에 적정하기 때문” =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남기춘 부장검사)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최완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서울 강동시영아파트 재개발비리 사건과 관련 수사기록과 증거 등을 변호인측은 물론 법정에도 제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남기춘 부장검사는 “법정에서 부인만하면 조서의 증거능력이 상실되는 만큼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방침을 따른다는 차원에서 일단 이 사건에 한해 사건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증인신문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사기록을 볼 수 없어 재판은 길어지겠지만 피고인측이 조서를 열람한 뒤 참고인에게 위증을 교사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남 부장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전제를 강조했다.
검찰 상부와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내린 판단이며, 일단 이번 사건에 한해서만 적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이준보 3차장 검사도 “법정에서 부인할 것이 명백한 사건에 있어서는 그와 같이 증거들을 분리해서 제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면서 “담당 검찰이 이번사건 공소유지에 적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 검찰 전체 입장은 아니다”고 못 박았다.
◆법원 “귀찮을 뿐 변화 없어” = 법원 입장도 의외로 담담하다. 담당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최완주 부장판사는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도 “검찰이 법원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데 말릴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한 부장판사도 “모든 사건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판검사수가 부족해 수사검사가 공판에 참석하는 사건에 한 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판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그는 “재판 지연 이외에 큰 변화는 없고 판사의 판단에도 무리는 없다”면서 “단지 귀찮을 뿐이지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다”고 말했다.
◆영장 둘러싼 갈등이 촉발제 = 이처럼 법원과 검찰 모두 이번 사안의 의미를 확대하지 않으려 애쓰는 빛이 역력하다. 자칫 조직간 감정대립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일선 검찰의 초강수 행보에는 그간의 불만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찰의 불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증폭돼 왔다. 하나는 지난 12월 대법원의 판례변경이다. ‘검사가 작성한 조서라도 법정에서 당사자가 부인하면 증거능력을 상실케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결정은 검찰에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특수부 강력부 등 일선 수사검찰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수사를 하라는 것이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불만은 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다. 법원은 불구속 수사를 대원칙으로 갈수록 영장기각율을 높이고 있다. 검찰은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파문의 발단이 된 사건도 대표적인 경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는 재건축조합비리 관련 혐의로 조합장에 대해 세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대신 뇌물공여 혐의자에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를 두고 검찰관계자들은 “돈을 준 사람은 구속되고 받은 사람은 기각되는 일을 납득할 수 없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또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성시웅 부장검사)도 유독성 농약이 함유된 중국산 홍삼을 유통시킨 업자들을 적발한 사건을 발표하면서 영장에 대한 법원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성시웅 부장검사는 “1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13명이나 기각됐다”면서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독약을 판매해도 구속되지 않는 나라가 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되레 “검찰이 과거처럼 구속영장만 신청하면 발부되는 향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여기에 최근 급증하는 뺑소니 사범에 대한 영장기각율 등 법원과 검찰의 영장을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결국 검찰의 이번 자료제출 거부결정은 해묵은 갈등이 증폭되면서 불거진 것이라는 평가다.
사법개혁의 대원칙 속에서 기록과 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정재철 이경기 기자 jcjung@naeil.com
◆검찰 “공소유지에 적정하기 때문” =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남기춘 부장검사)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최완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서울 강동시영아파트 재개발비리 사건과 관련 수사기록과 증거 등을 변호인측은 물론 법정에도 제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남기춘 부장검사는 “법정에서 부인만하면 조서의 증거능력이 상실되는 만큼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방침을 따른다는 차원에서 일단 이 사건에 한해 사건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증인신문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사기록을 볼 수 없어 재판은 길어지겠지만 피고인측이 조서를 열람한 뒤 참고인에게 위증을 교사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남 부장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전제를 강조했다.
검찰 상부와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내린 판단이며, 일단 이번 사건에 한해서만 적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이준보 3차장 검사도 “법정에서 부인할 것이 명백한 사건에 있어서는 그와 같이 증거들을 분리해서 제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면서 “담당 검찰이 이번사건 공소유지에 적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 검찰 전체 입장은 아니다”고 못 박았다.
◆법원 “귀찮을 뿐 변화 없어” = 법원 입장도 의외로 담담하다. 담당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최완주 부장판사는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도 “검찰이 법원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데 말릴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한 부장판사도 “모든 사건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판검사수가 부족해 수사검사가 공판에 참석하는 사건에 한 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판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그는 “재판 지연 이외에 큰 변화는 없고 판사의 판단에도 무리는 없다”면서 “단지 귀찮을 뿐이지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다”고 말했다.
◆영장 둘러싼 갈등이 촉발제 = 이처럼 법원과 검찰 모두 이번 사안의 의미를 확대하지 않으려 애쓰는 빛이 역력하다. 자칫 조직간 감정대립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일선 검찰의 초강수 행보에는 그간의 불만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찰의 불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증폭돼 왔다. 하나는 지난 12월 대법원의 판례변경이다. ‘검사가 작성한 조서라도 법정에서 당사자가 부인하면 증거능력을 상실케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결정은 검찰에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특수부 강력부 등 일선 수사검찰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수사를 하라는 것이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불만은 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다. 법원은 불구속 수사를 대원칙으로 갈수록 영장기각율을 높이고 있다. 검찰은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파문의 발단이 된 사건도 대표적인 경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는 재건축조합비리 관련 혐의로 조합장에 대해 세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대신 뇌물공여 혐의자에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를 두고 검찰관계자들은 “돈을 준 사람은 구속되고 받은 사람은 기각되는 일을 납득할 수 없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또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성시웅 부장검사)도 유독성 농약이 함유된 중국산 홍삼을 유통시킨 업자들을 적발한 사건을 발표하면서 영장에 대한 법원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성시웅 부장검사는 “1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13명이나 기각됐다”면서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독약을 판매해도 구속되지 않는 나라가 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되레 “검찰이 과거처럼 구속영장만 신청하면 발부되는 향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여기에 최근 급증하는 뺑소니 사범에 대한 영장기각율 등 법원과 검찰의 영장을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결국 검찰의 이번 자료제출 거부결정은 해묵은 갈등이 증폭되면서 불거진 것이라는 평가다.
사법개혁의 대원칙 속에서 기록과 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정재철 이경기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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