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 격투기에 왜 열광하나

“상상의 벽 허문 스포츠 비즈니스 극치”

지역내일 2005-02-24
“아얏, 퍽, 퍽,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스포츠. 튀기는 핏방울도 아랑곳 않고 달려드는 저돌성. 끝나고 나면 서로 위로해 주는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 같은 경기가 이종 격투기다. 시원하고 화끈하다는 팬들의 반응과 잔인하고 원시적이다는 논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뒤로 하고 이미 이종 격투기는 인기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매일 밤 강남의 호텔에선 실전 이종 격투기 경기가 펼쳐지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케이블 TV를 통해 방송되는 이종 격투기 경기에 밤을 설치는 마니아들도 수두룩하다. 오는 3월 중순에는 세계적인 이종 격투기 대회인 ‘K-1’이 서울에서 개최된다. 남성 스포츠로 알려진 이종 격투기에 최근 여성팬들까지 가세해 남녀 노소 모두가 즐기는 경기로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 카페는 600여개가 넘고 회원수는 30만명 정도 추산된다.
이런 열기를 반영하듯 이름도 낯선 무에타이, 유술, 극진 가라테 도장도 생겨나고 있다.

◆태권도와 유도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 = 이종 격투기 여성팬인 김진순(31 주부)씨는 “처음 남편이 밤마다 이종 격투기를 시청했는데 옆에서 볼 땐 정말 끔찍하고 징그러웠다”며 “몇 번 보니까 재미있어지고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쓰러뜨릴 땐 이상한 쾌감도 들고 짜릿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종 격투기는 한 번 빠져 들면 쉽게 헤어 나오기 어려운 늪과 같다.
그렇다면 왜 현대인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열광할까. 건국대 서희진 교수는 “볼거리를 통한 대리만족과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포츠가 인간의 본능적인 전투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 준다고 볼 때 이종 격투기는 기존의 권투나 레슬링 보다 더욱 강렬한 볼거리로 장식돼 있다. 강자에 의해 지배되지만 제한되지 않는 조건, 즉 이종 격투기라는 같은 이름으로 서로 다른 종목이 부딪쳐 불확실성을 극대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문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가상을 현실화 시켜 흥미를 끈 점이다. 서 교수는 “‘최강의 무술은 무엇인가, 레슬링과 권투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등과 같이 영화나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단골 메뉴를 현실화 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아대 정희준씨(석사과정)는 학회지에서 “미국과 일본이 이종격투기의 상업화를 위해 종목과 경기 규칙, 경기 요소들을 혼합해 국가적 경계를 잠식시켰다”며 “세계화에 있어 장애물이 될 만한 요소를 배제시켜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또 “근대의 일원화 된 가치체계의 붕괴가 점차 다원화된 가치체계로 진행됐다”며 “중심 스포츠만이 아닌 주변 스포츠도 인정받게 되면서 야성과 인간적인 정이 넘치는 이종 격투기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경향에 자본이 붙으면서 이종 격투기는 단숨에 발전해 왔다. 메이저급 대회들은 엄청난 규모와 기획력 연출력을 바탕으로 현실과 허구, 사실과 환상 사이 경계를 허물었다.

◆국가와 민족 경계 허물어 = 스포츠는 민족과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른 국가와 차별 또는 우월의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민족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여하는 도구였다. 하지만 이종 격투기는 이런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종 격투기 네오파이트의 김성희 선수(33)는 “이종 격투기는 강한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패자에게 격려를 보내는 스포츠”라며 “때리고 치면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면 정작 아무런 문제없이 서로 껴안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된다”고 말했다.
이종 격투기 마니아인 김 모씨는 “어느 나라 출신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국가나 인종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실전에서도 나타난다. 국내에서 열린 이종 격투기 대회에서 일본선수가 우세했음에도 한국선수의 판정승으로 끝나자 대다수의 관중들은 심판에게 야유와 질책으로 비야냥 거리기도 했다. 이는 스포츠 한-일전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일본에서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K-1 스타 앤드훅이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일본과 스위스에서 장례식이 두차례나 열려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처럼 이종 격투기에는 시공간적 경계를 뛰어넘는 영웅들이 탄생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세대·스포츠 삼박자 = 이종 격투기에 열광하는 세대는 대부분 인터넷 세대이다. 이 국경없는 세대들은 ‘국경없는 가상 공동체’에 의해 탄생된 이종 격투기에 열광한다. 이들은 ‘민족적 영웅’ 탄생보다는 ‘개인적 영웅’을 창조하는 세대들로 불리워진다.
동아대 박수정씨(석사과정)는 “인터넷과 글로벌리즘으로 무장한 세대에게 국가적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정체성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이들에게 스포츠는 사회 통합적 기능이 아니라 하나의 감성적 삶의 철학이다”고 분석했다. 또 “이종 격투기는 고급 저급의 이분법적 경계를 떠나 문화적 다원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 격투기가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하이브리드성 새로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란 서로 다른 종이나 계통이 교배를 통해 여러 가지가 섞인 잡종을 말한다. 이종 격투기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요소를 혼합하여 재창조해 버무려 놓았다. 이에 시청자와 관객은 열광하는 것이다. 조선대 이옥주씨(석사과정)는 “이종 격투기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지만 스포츠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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