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독립은 민족 합심에 달렸나니”'본래 우리의 독립은 평화회의나 모종의 유력한 단체로부터 승인
을 받던지, 첩지(帖紙)를 내어주듯 할 것이 아니오. 우리의 최고기관으로부터 각 단체 또는 전 민족
의 합심과 준비 여하에 달렸나니, 이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독립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파멸이 있을
따름이오'
이는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이 1921년 상해 환영회 석상에서 밝힌 연설내용이다.
국가보훈처는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와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
로 선정 발표했다.
김규식 선생은 1881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이후 네 살때 미국으로 입양돼 일찍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았다. 이후 독립신문사와 독립협회에서 활동했고, 1913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 1919년 파리강화
회의에 국민대표로 파견되기도 했다.
1930년초에는 민족통일전선 운동을 전개했으며, 1944년에는 임시정부 부주석에 선임돼 김구 선생과 조
국의 독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6·25한국전쟁 당시 남북된 이후 1950년 50세 일기로 생을 마감했
다.
12월의 문화인물 장승업
조선화단 거장, 근대 회화의 토대문화관광부는 조선 화단의 거장으로 우리 근대회화의 토대를 이룬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을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장승업은 1843년 대원(大元) 장(張)씨 집안에서 태어난 이후 일찍 부모를 잃고 이응헌(李應憲)의 집에
서 더부살이를 했으나 그림을 좋아하던 주인 이응헌의 눈에 그의 재능이 띄어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
었다.
뛰어난 기량과 넘치는 신운, 그리고 왕성한 창작력에 기인해 곧 명성을 얻은 장승업은 마침내 그의
명성이 궁중에까지 알려져 고종(高宗)의 어명에 의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장승업은 일체의 세속적인 관습에 구애받기 싫어하고, 술에 의존해 예술의 영감을 얻은 것으
로 알려졌다. 그는 그림을 구하는 사람들의 사랑방과 술집을 전전하며 뜬구름 같은 일생을 보내다
1897년 광무(光武) 원년(元年) 생을 마쳤다.
대표작으로는 '삼인문년도', '산수도', '귀거래도' 등이 있다.
문화관광부는 장승업의 생애와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9일 기념학술대회(정신문화연구원), 지난 11
월 16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서울대 박물관에서 장승업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9일에는 정신문화
연구원과 공동으로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한다.
/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독립은 민족 합심에 달렸나니”'본래 우리의 독립은 평화회의나 모종의 유력한 단체로부터 승인
을 받던지, 첩지(帖紙)를 내어주듯 할 것이 아니오. 우리의 최고기관으로부터 각 단체 또는 전 민족
의 합심과 준비 여하에 달렸나니, 이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독립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파멸이 있을
따름이오'
이는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이 1921년 상해 환영회 석상에서 밝힌 연설내용이다.
국가보훈처는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와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
로 선정 발표했다.
김규식 선생은 1881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이후 네 살때 미국으로 입양돼 일찍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았다. 이후 독립신문사와 독립협회에서 활동했고, 1913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 1919년 파리강화
회의에 국민대표로 파견되기도 했다.
1930년초에는 민족통일전선 운동을 전개했으며, 1944년에는 임시정부 부주석에 선임돼 김구 선생과 조
국의 독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6·25한국전쟁 당시 남북된 이후 1950년 50세 일기로 생을 마감했
다.
12월의 문화인물 장승업
조선화단 거장, 근대 회화의 토대문화관광부는 조선 화단의 거장으로 우리 근대회화의 토대를 이룬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을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장승업은 1843년 대원(大元) 장(張)씨 집안에서 태어난 이후 일찍 부모를 잃고 이응헌(李應憲)의 집에
서 더부살이를 했으나 그림을 좋아하던 주인 이응헌의 눈에 그의 재능이 띄어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
었다.
뛰어난 기량과 넘치는 신운, 그리고 왕성한 창작력에 기인해 곧 명성을 얻은 장승업은 마침내 그의
명성이 궁중에까지 알려져 고종(高宗)의 어명에 의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장승업은 일체의 세속적인 관습에 구애받기 싫어하고, 술에 의존해 예술의 영감을 얻은 것으
로 알려졌다. 그는 그림을 구하는 사람들의 사랑방과 술집을 전전하며 뜬구름 같은 일생을 보내다
1897년 광무(光武) 원년(元年) 생을 마쳤다.
대표작으로는 '삼인문년도', '산수도', '귀거래도' 등이 있다.
문화관광부는 장승업의 생애와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9일 기념학술대회(정신문화연구원), 지난 11
월 16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서울대 박물관에서 장승업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9일에는 정신문화
연구원과 공동으로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한다.
/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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