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으로 갈까요?

김미경의 소설요리(3)

지역내일 2001-01-11
만약 소풍갈 때 도시락을 가져가는 학교와 밥 해 먹는 재료를 가져가는 학교가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따라 갈 것인가?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추위에 젬뱅이었지만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이라 감색 모직 원피스에 머리는 양 갈래로 단단히 땋고 하얀 손수건을 왼쪽가슴에 단 채 덜덜 떨며 기나긴 줄 속에 서 있었다. 같이 간 할머니를 연신 훔쳐보며 많은 사람들 속에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긴장해 있는데 돌연 머리가 뒤로 재껴졌다.
뒤에 서 있던 마귀할멈같이 생긴 여자애가 내 땋은 머리를 쌔게 잡아 당겼다. 갑자기 기습에 놀라 아프기도 하고 화가 나서 금방 '으앙∼' 하고 울어 재꼈다. 당연히 응원군인 할머니 쪽을 보고. 동네에서 말 잘하기로 유명한 할머니가 냅다 달려와 날 안으며 그 애를 혼쭐냈다.
요즘 같으면 그 애 보호자가 '뭐, 그럴 수도 있지. 왜 우리 애를 뭐라 그러냐?' 고 따질 지도 모른다. 하기야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그런 이상한 상황이 벌어져도 우리 할머니는 일거에 게임 끝을 낼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어쨌든 그 애는 머리를 푹 숙이고 그 애 엄마는 미안해하는 걸로 끝이 났다.
그때 학교란 어느 순간에 무방비한 날 공격할 수도 있겠구나, 조심해야 하는 곳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늘 어떻게 하면 학교를 빠질까하며 흥미를 잃은 채 대학까지 꾸준히도 지겨워하며 다녔다. 죽이 맞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옥 같은 시절이었을 게다. 빈틈없는 틀 속에 끼워 맞추다보니 일그러진 부분이 내 속에 잔뜩 있었다. 학교에서 멀어지고 세월이 흘러 흘러 사라진 부분도 있지만 아직도 초·중·고 시절을 돌이켜보면 도무지 정이 들지 않는다.
<창가의 토토="">에 나오는 토토는, 개성적이며 감성이 풍부하고 티없이 발랄한 성격의 소녀다. 이런 소녀가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산만하고 통제력이 부족한 아이로, 다른 아이들 학습에 지장을 준다하여 입학한지 몇 달만에 퇴학을 당한다. 하지만 토토를 잘 이해하는 엄마덕분에 퇴학에 대한 상처 없이 대안학교인 도모에 학원으로 옮긴다.
도모에 학원의 교육시스템은 충격적이다. 교실은 노후한 전차를 이용했는데, 아이들로서는 일반적인 건물보다 전차 속에서 여행하는 듯한 기분으로 공부를 하는 게 오히려 즐거운 모양이다. 물론 교사를 지을 돈이 없어 전차를 활용한 것이겠지만 놀라운 리싸이클 개념이다. 게다가 수업시간표도 없다. 그날 공부할 전 과목을 적어 둔 칠판을 보고 각자 순서를 정해 먼저 좋아하는 과목부터 하면 된다.
자리도 자기가 앉고 싶고 싶은 대로 앉는다. 도모에 학원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면 안돼, 이런 말을 하는 선생도 없다. 지내다 보면 아이라도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 학교 학생들은 낙서를 아무 데나 하지 않는다. 음악시간에 분필을 들고 마루 바닥에 피아노 소리에 맞춰 음표를 적는데(공책에 적다 보면 공간이 좁아 책상에 삐져나가게 쓰게되니 불편해 바닥에 크게 적는 것이다), 넓은 공간에 신나게 적다가 수업이 끝나 걸레로 분필을 지워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낙서는 하는 건 즐겁지만, 지우는 건 대단히 귀찮은 거라는 걸 깨닫게 되어 아무 데나 낙서하는 짓은 안 하게 된다.
도모에 학원의 점심은 늘 산과 들, 바다의 음식으로 싼 도시락이다. 각각의 영양도 골고루 섭취하면서도 알기 쉽게 정의한 것이다. 산은 육류나 버섯 류 등. 들은 야채, 바다는 생선이나 해초류 등.
그러니까 밥과 반찬 세 가지, 즉 돼지고기 볶음은 산이고 시금치무침은 들이 되고, 미역튀김은 바다가 된다. 이렇게 식탁 위에도 산, 들, 바다만 외치면 만사형통입니다. 자, 실천합시다. 게다가 먹을 때는 꼭 이 노래를 부른다.
'꼭꼭 씹어요. 모든 음식을.
씹어요. 씹어요. 씹어요. 씹어요. 모든 음식을.' (도도도자로 끝나는 말은 ∼도 ∼도 ∼도 ∼도 ∼도 이 노래를 개사한 것)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모든 음식을 꼭꼭 씹는 게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기도를 잘해도 후다닥 3분도 안돼 먹어치우거나 편식이 심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많이 다니는 보통학교에서 오랫동안 공부하신 분들도 이런 학교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애가 더 이상해지는 것 아니냐, 사회질서는 제대로 익히겠는가, 공부는 못하는 거 아니냐, 등등.
걱정하지 마시길.
도모에 학원의 토토는 커서 언론인이 되었고, 오랫동안 TV에서 자기 이름을 건 '테츠코의 방'이라는 대담프로를 하고 있다. TV에서 어른이 된 토토를 봤을 때 '음, 여걸 같은 걸.' 대단히 강한 이미지를 느꼈다. 마치 보스같다고나 할까. 그런 그이가 초등학교 일 학년 때 퇴학당한 일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만약 도모에 학원과 만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테츠코의 방'도 없었으리라.
학교 소풍이라면 으레 김밥 도시락 정도 일테지만 도모에 학원 소풍은 재료를 가지고 가 식사준비와 요리를 직접하는 실습 소풍이다. 그때 토토가 어른스럽게 만든 야채 절임을 소개한다. 밑반찬으로 일품입니다. 꼭 만들어 먹어 보세요.

토토가 만든 야채 절임
학교 소풍 때 토토가 멋지게 만들어 우쭐해했던 절임입니다.
1. 기본은 오이.
토토처럼 가지, 아니면 무, 양배추, 당근, 배추 등.
좋아하는 야채를 얇게(3mm) 썰거나 채쳐 둔다.
2. 볼에 담아
소금을 적당히 뿌린 뒤 조물럭조물럭 골고루 간이 배게 버무린다.
※ 이때 다시마나 빨간 고추, 생강, 유자껍데기 등을 채쳐 같이 버무리면 더 맛있다.
3. 10분 정도 지나면 물기를 꼭 짠 뒤 아삭아삭한 맛을 본다.
그러면 토토가 왜 의기양양했는지 알 수 있다.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키 테츠코 지음·이와사키 치히로 그림/김난주 옮김/프로메테우스 출판사/7,500원
지난해 12월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다. 최근 나온 일본작가 구로야나기 테츠코(62)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토토가 다녔던 학교는 일종의 대안학교인 셈이다. 보통 학교에선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던 아이들이 대상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아이들 누구도 자신이 이전의 학교에서 퇴학당해 왔다 곤 생각지 않는다. 이들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한 수업 방식, 자연과 친구를 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82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1년만에 460만 부가 팔려 <20세기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이란 영광을 얻었다. 국내에는 이제야 김난주씨에 의해 처음 완역됐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