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대우종합기계 특수사업본부 김후진 명장의 ‘대단한 도전’

나는 도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역내일 2005-03-09 (수정 2005-03-18 오전 8:24:15)
입지전적인 인물의 화려한 프로필 뒤에는 대개 사람들의 누선을 자극하는 ‘시련 극복기’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그가 성취해 낸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달한 곳이 높으면 높을수록, 지나온 삶의 어느 고비에서 그를 좌절하게 했던 고난의 기억은 슬픈 드라마의 배경음악처럼 쓰라린 가락으로 재생되어 감동을 더욱 고조시킨다. 대한민국 명장, 노동부 신지식인, 용접 기술사, 용접 기능장, 기술지도사, 기계공학사 학위 취득, 대통령상 수상, 평생학습대상 수상 … 한 사람이 반평생 동안 성취해 낸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이 프로필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면서 내가 예상했던 것도 바로 그런 류의 감동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작 김후진 명장(48세)을 만났을 때는 뭔가 정곡을 찔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건 방앗간 집 아들로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이 비교적 유복했던 탓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삶을 별다른 엄살과 신파를 섞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들려줄 줄 아는 그의 독특한 화법 때문이기도 했다. 한백창원직업전문학교에서 배출한 대부분의 걸출한 인재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정규 학교는 중학교까지밖에 못 다녔다. 그러나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건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 아니었다.
“그땐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아버지가 고향인 용인에서 방앗간을 하다가 서울 신당동에서 가정표 양말 공장을 하셨거든요. 그때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이 불량서클에 들었는데, 걔들하고 어울리면서 주먹질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여튼 좀 터프가이였었죠. 중학교 졸업한 뒤에는 기타 들고 친구들과 강촌이나 춘천 같은 데 놀러 다니기 바빴어요. 나팔바지 입고 산에 놀러가서 고고도 추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방황기였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약이 됐던 것 같아요.”
2004년 평생학습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공부벌레인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치고는 다소 의외다. 1977년 초, 한백창원직업전문학교 판금용접과 1기생으로 들어가게 된 사연도 역시 그답다.
“신문에서 훈련생 모집 공고를 봤어요. 그때는 기술 배운다는 생각도 없었죠. 방랑기가 있어가지고 한백이 경상도 저 아래 창원이다 보니까 저로서는 미지의 세계잖아요. 야, 멀리 한번 가 보자 해서, 마치 여행하는 것처럼 떠났죠. 게다가 그때 마산 아가씨하고 펜팔을 했었는데,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근데 막상 내려와서 만나 보니 연상의 여인이었죠. 굉장히 동생 같이 잘 챙겨 주고 나는 누나 누나 하며 쫓아다녔는데, 사실 몇 번 못 만났어요. 한백이 군대식으로 굉장히 규율이 엄격해서 일요일밖에 외출이 허용이 안 돼요. 기능경기대회 출전팀이 꾸려지면서부터는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특수훈련을 받았거든요.”
1년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1978년 3월 대우중공업에 특채된 뒤에도 그는 회사에 적만 둔 채 그 해 말까지 각종 기능경기대회 경남대표 선수로 뛰게 된다. 경남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선수 시절을 마감하고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는 비로소 현실의 차가운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공장 현장에는 남들이 ‘3D 직종’이라고 기피하는 용접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 영예의 메달도 시상식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사무직과 현장직 사원은 월급은 말할 것도 없고, 유니폼부터가 달랐다. 그 푸른 작업복을 입고는 어딜 나서도 ‘뽀대’가 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용접공’일 뿐, 자랑스러웠던 기술이 하잘 것 없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그는 고등학교에는 가지 못했을지언정 단 한 번도 자존심이 뭉개지는 경험을 해 본 일이 없었다. 방앗간 집 개구쟁이 아들로 자란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중학 동창들 사이에서 ‘카리스마’ 있는 친구로 통했던 학창시절, 나팔바지와 통기타와 고고와 펜팔을 즐겼던 청년기의 어느 때를 돌아봐도 ‘뽀대’가 났다. 심지어 ‘빠따’ 세례를 맞으며 군대식 교육을 받았던 한백에서도 기능경기대회에 나갈 재목으로 선발된 엘리트 그룹에 속해 있었으니 몸은 힘들어도 자존심이 뭉개지는 경험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학력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 현실을 깨달았을 때 이 나팔바지 청춘의 시퍼런 자존심은 한없이 구겨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하고도 갭이 생겼어요. 나는 현장에서 차별을 당하는데 걔네들을 만나면 대학 생활 이야기를 하니까…. 한동안 방황하다 독한 마음을 먹었죠. 아, 배워야 되겠다. 그때부터 평생에 걸친 공부길이 시작된 거죠.”

일단 목표를 정한 뒤부터는 피나는 훈련과 고행의 연속이었다.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공부하면서 책과 씨름을 한 끝에 1981년에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86년에는 창원기능대학 산업설비학과를 졸업했다. 기술을 향한 집념과 늦깎이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에는 주변 사람들 모두 혀를 내둘렀다. ‘나의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 죽게 된다’는 생각에 직장에서 늘 파김치가 되도록 일했다. 그 덕분에 그가 속한 부서는 단 한 번도 1등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었고, 결국 1994년엔 대우종합기계로 명칭이 바뀐 그의 회사에서 ‘장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론서적을 탐독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실제 업무와 접목시켜 보고 싶어 앉아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때도 있었어요. 특수용접 관련 미국 원서를 보려고 영어 공부를 했는데 그 덕분에 이제 영어에는 자신이 생겼어요.”
기술 개발에도 열정을 쏟아 91년에는 용접기능장, 92년에는 기술지도사 자격을 얻었으며, 99년에는 마침내 용접기술 부문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최고 기술인 반열에 올랐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실력으로 방산 분야 알루미늄 용접 공정을 체계화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전문기술을 응용하여 방위산업체인 그의 회사가 추진하는 첨단 반도체부품과 초경량 알루미늄 차체 개발 등 다수의 신기술 개발 사업에 기여했다.
1995년에는 특수용접 분야에서 체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특수 용접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으로 엮어 냈다. 국내에는 몇 권의 번역서만 나와 있을 뿐 대학교수들도 집필할 엄두를 못 내는 특수용접 전문서적을 일개 ‘용접공 출신’이 썼다 하여 특히 화제가 된 이 책은 출간되기도 전에 전국 7개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이 될 정도로 관련 분야 최고의 기술서적으로 인정받았다. 2001년에는 산업자원부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고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그이지만, 배움의 갈증은 아직도 그를 목마르게 한다. 지난 해 8월 학점은행을 통해 기계공학사 학위를 받은 그는 올해 국립 창원대 산업정보대학원 석사과정에 등록했다.
김후진 명장은 경남 창원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한 오피스텔에서 혼자 산다. 아내와 딸은 각기 자신의 일터와 학교인 진해와 부산에 거주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만나 사랑과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들 가족이 이렇게 ‘독립적’인 삶의 외형을 갖게 된 데는 딸의 대학 입학이 큰 계기가 되었다. 일하랴, 책 쓰랴, 강의하러 나가랴, 늘 새로운 도전에 골몰해 있는 남편을 대신하여 든든한 벗이 되어 주었던 딸이 동아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하자 아내 역시 일을 갖겠다고 나선 것이다. ‘따로 또 같이’ 생활하는 이런 삶의 방식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른바 ‘김후진 식’의 도전이 몸에 밴 이들 가족에게는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익숙해 보인다.
새벽에 일어나 수영으로 몸을 푼 김후진 씨는 가까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한 뒤 8시에 출근한다. 퇴근은 4시 50분. 퇴근 후에도 강의, 집필, 모임 등의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 시작한 공부다. 그는 올해 국립 창원대 산업정보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강의는 일주일에 두 번, 평생을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으로 살아 온 그에게는 ‘쉬어 가면서 하는’ 일이다.
“저는 살면서 꾸준히 제 삶을 업그레이드시켜 왔는데 최근 한 2년 동안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낭비했어요. 이럴 땐 빨리 ‘병원’에 가서 정신 차려야죠. 석사 과정도 그래서 시작했어요.”
그가 ‘낭비’했다고 말하는 그 2년이란 시간 속에는 보통 사람들이 ‘성취’라고 말할 법한 다양한 활동들이 들어 있다. 모모한 단체나 기관의 전문위원·자문위원·심사위원 등의 자격으로 전국에 강의하러 다니고, 기계공학사 학위 취득하고, 제1회 평생학습대상 수상하고…. 그러나 이 욕심 많은 사람에게 시간이란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이고, 편안함의 유혹과 싸워 이겨야 하는 전쟁터다.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어떤 일을 해 냈다는 만족감, 또 한 단계 올라섰다는 성취감 … 그것이 김후진 명장이 말하는 ‘업그레이드’요, ‘도전’인 것이다.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는 게 내 삶의 아주 중요한 키워드예요. 물론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해야 되니까 고통이 따르죠. 근데 내가 좀 집착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죠. 하다가 중단하면 아깝잖아요. 그렇게 안주하지 않고 달리다 보니 기능장도 되고 기술사도 되고 명장도 되고 신지식인도 된 거죠. 이제 국내에서 도전할 건 ‘닥터’밖에 없어요. 박사 학위만 따면 기능계·기술계·학계를 휩쓰는 3관왕이 되는 거고, 지식과 실무를 겸비한 국내 최고의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는 거죠.”
마라톤처럼 달려온 그의 삶도 이제 반환점을 바라보고 있다. 직장인·기능인으로서 배우며 일하는 학습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한 결과물들이 많은 이들의 표상이 된 지금, 그는 무얼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애초에 그가 목표로 했던 바로 그 삶일까?

“해 놓은 일에 대해서는 뿌듯하지만 반대급부가 없을 수는 없죠. 이룬 만큼 잃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열심히 산 만큼 남들보다 시간적으로 더 많이 살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도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 왔다고 생각하면 허전하죠. 남들이 보면 성공했다고 이야기할지는 모르지만 저 자신은 내심 뭔가 허무하고 외로울 때가 있죠.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요? 그래서 ‘지금, 현재’를 충족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죠.”
‘지금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일과 학습 못지않게 여가 생활도 충실히 즐긴다. 주말에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수영도 4개 종목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수준급이지만 최근에는 인라인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공부에 지친 밤시간이면 간편한 복장으로 가까운 종합운동장에 나가 인라인을 즐긴다. 술과 담배는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술을 먹으면 노화가 촉진되잖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주름 생기는 거, 배 나오는 거거든요. 특히 남자들…. 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정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몸을 마구 굴리지 말고 제대로 관리해 줘야죠. 수영하고 인라인을 타면서 건강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도 결국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거거든요.”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는 그의 긴 프로필을 읽으며 어둠이 내린 운동장에서 홀로 인라인을 타는 김후진 명장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그의 남은 꿈들이 실현되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날이 오면, 슬그머니 그의 이야기 속에서 유난히 자주 등장하던 ‘시간’이라는 단어와, 그가 취미로 수집한다는 시계들을 떠올리며 볼록 튀어나온 뱃살과 주름진 얼굴과 게으른 나의 ‘지금 현재’를 자책하게 되지나 않을까.

/글 김기선·사진 백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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