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노인’된 리영희 교수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우공(愚公)이 되었다. 저항하는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그가 대담형식의 자서전 ‘대화’를 발간했다. 역대 정권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균형을 취한다. 김영삼 정권은 군부의 폭력정치를 제거하고, 김대중 정권은 남북화해공존정책의 큰길을 열고, 노무현 정권은 그런 기반 위에서 여러 개혁을 진행하고 대미 외교에 주체성을 발휘하니 그만하면 잘 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 그의 소회이다.
그는 단서를 붙였다. 사회의 중추가 된 70, 80년대 학번은 과격함, 조급증, 타협 배격의 지난 날 운동 논리를 버려야 한다고 따끔하게 침을 놓았다. 의미심장한 변화란 원래 다급하게 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여유와 너그러움, 더 큰 지혜를 가지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있다(한국일보 3월 16일자 대담 참조). 과거에 누구보다 핍박을 받은 그가 자기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다면서 대화와 지혜를 강조하고 나오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화를 연상하게 된다. 옛날에 90살 노인 우공이 일가족을 이끌고 집 앞의 산을 파서 옮기는데 지수라는 성미 급한 노인이 이를 비웃었다. 우공은 꾸짖어 가로되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다. 아들이 죽으면 또 손자가 있다. 날이 갈수록 우리 가족은 점점 많아지고 산 위의 돌은 점점 적어지는 이치를 네 어찌 모르는가.” 지수는 뒤통수를 치고 돌아갔다는 고사이다.
포용의 도리 당부한 서울대 총장
서울대 정운찬 총장도 똑같은 ‘지혜의 길’을 설파한다. 그는 졸업식사에서 사회로 나가는 제자들을 향해 남의 사고와 행동을 용인하는 ‘도량’을 배양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지금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독선과 배타, 그리고 분열의 정서를 꼽는다. 리 교수와 정 총장이 강조하는 포용과 도량의 도리(道理)는 한국 정치권 중에도 특히 집권여당 개혁파가 새겨들어야 할 경구이다.
열린우리당 당권경쟁 구도가 요동을 치고 있다. 경선 후보들은 국민이 ‘공허한 개혁론’에 염증을 느끼고 있음을 눈치 챈 모양인지 너도나도 ‘좋은 개혁은 좋은 것’이라고 입 끝으로 만 외는 헛된 염불을 하는 경우를 본다.
서울방송(SBS)이 주관한 열린우리당 당의장 경선후보합동토론회는 불꽃이 튀는 정책 공방은 거의 없고 ‘화기애애’했다. 특히 ‘민생 문제’는 토론의 도마에 한차례도 오르지 않고 ‘실용 대 개혁’의 논쟁만 무성했다. 실용파나 개혁파나 앞다퉈 ‘계파를 넘는 포용력, 통합적 지도력, 편안한 개혁, 단결 도모할 강력한 개혁’등을 말했다. 눈에 띈 것이라면 문희상 후보가 ‘개혁적 실용주의’ 곧 개혁과 민생의 동반을 주창하며 ‘개혁은 원칙이고 실용은 전략’이라고 정의한 점이다. 그는 평소에 ‘실용’(미국식 프라그마티즘의 냄새가 나는 용어)보다는 실학사상의 근간인 ‘실사구시’에 중심이 가있다고 말한 터였다. 이에 장영달 후보는 개혁을 하면 민생이 어려워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문 후보에게 응수했다. 김원웅 후보는 개혁과 거리가 먼 당의장이 나오면 실용의 이름으로 기득권을 유리하게 하지 않겠느냐고 문희상 후보에게 따졌다.
흥미있는 장면을 꼽으라면 사표가 되는 정치인을 들어보라는 진행자의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여덟 후보 모두 백범-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주류(主流)를 형성하여 한 뿌리임을 노출했다. 몇 후보의 답변을 예시하면 김두관 후보는 현실정치에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백범을, 한명숙 후보는 백범 및 대중보다 한발 앞서가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문희상 후보는 백범의 이상과 운남의 현실을 접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송영길 후보는 고난의 역사를 거친 김대중 전대통령 및 자기를 버리는 모습의 노무현 대통령을, 염동연 후보는 모든 판단기준을 국민에게 두는 노무현 대통령을 꼽았다. 유시민 후보만 차별화 하려는 듯 따로 놀았다. 그는 사적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 이해찬 총리가 자기의 사표라고 말했다.
민생경제 제쳐둔 ‘후보 토론회’
합동토론 100분을 관전한 느낌은 모두 말 잘하는 후보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후보들은 국민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민생 현안을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한명숙 후보가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노골화한 경제를 살릴 방법을 물은 것이 지정토론에서 나온 유일한 경제적 질문이었다. 마무리 발언에서는 문희상 후보가 개혁과 민생의 동반을 강조하고, 유시민 후보가 어려운 경제를 풀도록 하겠다고 한마디씩 언급한 정도가 전부였다. 역시 우리당은 개혁이념에 몰입한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우공의 지혜를 알만한 후보에게 관심이 간다. 그런 사람이라야 관용과 도량에 근거한 ‘통합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패기는 있으나 배타적 개혁에 매몰된 후보가 있다면 ‘때가 되어야 도래하는 지혜’를 배우고 오기 바란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우공(愚公)이 되었다. 저항하는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그가 대담형식의 자서전 ‘대화’를 발간했다. 역대 정권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균형을 취한다. 김영삼 정권은 군부의 폭력정치를 제거하고, 김대중 정권은 남북화해공존정책의 큰길을 열고, 노무현 정권은 그런 기반 위에서 여러 개혁을 진행하고 대미 외교에 주체성을 발휘하니 그만하면 잘 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 그의 소회이다.
그는 단서를 붙였다. 사회의 중추가 된 70, 80년대 학번은 과격함, 조급증, 타협 배격의 지난 날 운동 논리를 버려야 한다고 따끔하게 침을 놓았다. 의미심장한 변화란 원래 다급하게 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여유와 너그러움, 더 큰 지혜를 가지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있다(한국일보 3월 16일자 대담 참조). 과거에 누구보다 핍박을 받은 그가 자기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다면서 대화와 지혜를 강조하고 나오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화를 연상하게 된다. 옛날에 90살 노인 우공이 일가족을 이끌고 집 앞의 산을 파서 옮기는데 지수라는 성미 급한 노인이 이를 비웃었다. 우공은 꾸짖어 가로되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다. 아들이 죽으면 또 손자가 있다. 날이 갈수록 우리 가족은 점점 많아지고 산 위의 돌은 점점 적어지는 이치를 네 어찌 모르는가.” 지수는 뒤통수를 치고 돌아갔다는 고사이다.
포용의 도리 당부한 서울대 총장
서울대 정운찬 총장도 똑같은 ‘지혜의 길’을 설파한다. 그는 졸업식사에서 사회로 나가는 제자들을 향해 남의 사고와 행동을 용인하는 ‘도량’을 배양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지금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독선과 배타, 그리고 분열의 정서를 꼽는다. 리 교수와 정 총장이 강조하는 포용과 도량의 도리(道理)는 한국 정치권 중에도 특히 집권여당 개혁파가 새겨들어야 할 경구이다.
열린우리당 당권경쟁 구도가 요동을 치고 있다. 경선 후보들은 국민이 ‘공허한 개혁론’에 염증을 느끼고 있음을 눈치 챈 모양인지 너도나도 ‘좋은 개혁은 좋은 것’이라고 입 끝으로 만 외는 헛된 염불을 하는 경우를 본다.
서울방송(SBS)이 주관한 열린우리당 당의장 경선후보합동토론회는 불꽃이 튀는 정책 공방은 거의 없고 ‘화기애애’했다. 특히 ‘민생 문제’는 토론의 도마에 한차례도 오르지 않고 ‘실용 대 개혁’의 논쟁만 무성했다. 실용파나 개혁파나 앞다퉈 ‘계파를 넘는 포용력, 통합적 지도력, 편안한 개혁, 단결 도모할 강력한 개혁’등을 말했다. 눈에 띈 것이라면 문희상 후보가 ‘개혁적 실용주의’ 곧 개혁과 민생의 동반을 주창하며 ‘개혁은 원칙이고 실용은 전략’이라고 정의한 점이다. 그는 평소에 ‘실용’(미국식 프라그마티즘의 냄새가 나는 용어)보다는 실학사상의 근간인 ‘실사구시’에 중심이 가있다고 말한 터였다. 이에 장영달 후보는 개혁을 하면 민생이 어려워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문 후보에게 응수했다. 김원웅 후보는 개혁과 거리가 먼 당의장이 나오면 실용의 이름으로 기득권을 유리하게 하지 않겠느냐고 문희상 후보에게 따졌다.
흥미있는 장면을 꼽으라면 사표가 되는 정치인을 들어보라는 진행자의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여덟 후보 모두 백범-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주류(主流)를 형성하여 한 뿌리임을 노출했다. 몇 후보의 답변을 예시하면 김두관 후보는 현실정치에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백범을, 한명숙 후보는 백범 및 대중보다 한발 앞서가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문희상 후보는 백범의 이상과 운남의 현실을 접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송영길 후보는 고난의 역사를 거친 김대중 전대통령 및 자기를 버리는 모습의 노무현 대통령을, 염동연 후보는 모든 판단기준을 국민에게 두는 노무현 대통령을 꼽았다. 유시민 후보만 차별화 하려는 듯 따로 놀았다. 그는 사적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 이해찬 총리가 자기의 사표라고 말했다.
민생경제 제쳐둔 ‘후보 토론회’
합동토론 100분을 관전한 느낌은 모두 말 잘하는 후보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후보들은 국민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민생 현안을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한명숙 후보가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노골화한 경제를 살릴 방법을 물은 것이 지정토론에서 나온 유일한 경제적 질문이었다. 마무리 발언에서는 문희상 후보가 개혁과 민생의 동반을 강조하고, 유시민 후보가 어려운 경제를 풀도록 하겠다고 한마디씩 언급한 정도가 전부였다. 역시 우리당은 개혁이념에 몰입한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우공의 지혜를 알만한 후보에게 관심이 간다. 그런 사람이라야 관용과 도량에 근거한 ‘통합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패기는 있으나 배타적 개혁에 매몰된 후보가 있다면 ‘때가 되어야 도래하는 지혜’를 배우고 오기 바란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