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을 맞이하며’ - 안철수 사장 퇴임사

지역내일 2005-03-21 (수정 2005-03-21 오후 12:04:25)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이 지난 18일 전격 퇴진하면서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안 사장의 퇴임사 전문을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주

오랜 산고를 겪고 세상에 태어난 안철수연구소가 이제 열 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5년 생존확률이 10% 정도이니 10년 생존확률은 1%일 테고, 벤처기업의 생존확률을 일반기업의 1/10 이하라고 본다면 0.1%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셈입니다. 안철수연구소가 이렇게 살아남고 자리 잡기까지는 저와 저희 임직원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저희를 지켜보고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10년 전 창업을 하면서 기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기업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소속된 구성원들이 생활을 영위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프리랜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업이나 조직을 이루어 일하는 진정한 의미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일을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창업을 하면서 ‘기업의 목적은 수익창출’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습니다. 수익창출이 목적이 되다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면서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어쩌면 인간사의 많은 갈등들은 목적과 결과의 혼동에서 빚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기업에서의 수익창출은 결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질과 과정에 충실하다면 결과는 따라오는 것이라는 믿음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하면서 지난 10년간 세 가지를 이루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첫째로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워킹 모델(working model)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지식정보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왜곡된 시장구조의 척박한 토양 하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한 가닥 희망의 빛이라도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둘째로 현재 한국의 경제 구조 하에서 정직하게 사업을 하더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투명경영,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셋째로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안철수연구소 구성원 모두가 이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노력해온 ‘존재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CEO로서 지난 10년간을 절벽을 올라가는 등반가의 심정으로 살아왔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고 무섭지만, 위를 올려다보면 구름에 가려서 정상이 어디쯤인지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힘이 빠지면 떨어져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매일 스스로에게 던졌던 두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이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가?”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둘째 질문은 다시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즉, “내게 지금의 회사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와 “내 에너지를 120% 쏟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등반가의 심정으로 끊임없이 자기 검증을 하면서 10년을 보낸 셈입니다.
이제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지난 3년간 저희 회사에서 COO로서 능력을 검증받은 부사장에게 CEO를 넘겨주고, 저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새롭게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통념상의 직접 경영에 관여하는 회장이 아니라, 신임 CEO가 경영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저는 본연의 의미에서의 이사회 의장으로서 주주 모두를 위한 좋은 지배구조를 만들고 큰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작년 초에 물러날 결심을 한 후, 지난 일년 동안 이 결심을 제 가슴속에 담아두고 차분하게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또한 CEO로서 살아왔던 지난 10년간의 경험과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일을 마무리할 때나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는 그 때까지 배운 것들을 정리해서 책을 써왔습니다. 최근에 발간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을 쓴 이유도 CEO를 마무리하면서 직원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제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편린들을 들려주고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2년 정도의 계획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CEO 자리를 넘기는 것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공부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저도 몇 년 만 지나면 노안(老眼) 때문에 돋보기가 필요하게 될 텐데, 그 전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할 생각입니다. 이제 다시 옛날 책들을 꺼내놓고 시험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부를 끝낸 후의 계획은 세워놓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의학, BT, IT, 경영 등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공부를 마친 후에는 그 때의 상황에 적합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철수연구소로 다시 복귀할 수도 있겠으며, 만약에 받아주시는 곳이 있다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일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분야의 도전에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간 변함없는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안철수연구소는 앞으로도 계속 조직 구성원 모두가 건전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3월 18일 안철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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