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과거사를 푸는 외교(2005.03.29)

지역내일 2005-03-28 (수정 2005-03-29 오후 12:37:44)
과거사를 푸는 외교
장행훈 (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알제리 국민은 1945년부터 독립을 외치기 시작했다. 54년부터는 본격적인 무장 독립투쟁으로 들어간다. 프랑스 군은 알제리 독립운동 가담자들을 고문했다. 그러나 8년간의 유혈투쟁 끝에 알제리는 62년 에비앙 협정으로 독립을 달성한다. 알제리와 프랑스와의 관계는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그런데 알제리가 독립한지 근 반 세기가 지난 지금 프랑스에서 알제리에 대한 불행한 ‘과거사’를 시인하고 새로운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다.
몇 주전 알제리 주재 프랑스 대사는 수도 알지에에서 행한 연설에서 1945년 5월 프랑스 군이 세티프에서 일어난 알제리 국민의 반(反)프랑스 반란 때 1만 여명을 학살한 사건은 ‘변명할 수 없는 비극’이라고 프랑스의 잘못을 인정했다. 주한 일본 대사가 서울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발언한 것과 비슷한 때에 일어난 일이어서 프랑스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대조적인 태도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준다.

프랑스와 일본의 대조적인 태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 르몽드는 지난 18일 ‘역사와 부인(否認)’이라는 사설을 싣고 프랑스가 이처럼 역사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 범죄를 시인하는 것은 아직 아주 흔치 않은 일이지만 반 세기가 지난 이제 역사를 부정하고 프랑스 군이 자행한 과오를 부인하는 행동은 중지할 때가 됐다고 과거사 정리를 권고했다. 르몽드는 결론적으로 새로운 프랑스-알제리 우호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알제리가 이러한 과오와 탈선행위를 조사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이 역사를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지난날 다른 민족에게 저지른 잔학 행위에 대해서 온갖 둔사를 동원해 책임을 피하고 사과를 거부해 오고 있다. 이제는 과거사를 부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화하려 하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비교할 수 없는 부도덕한 행동이다. 고이즈미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는 인상이다.
그 동안 우리 대일(對日) 외교의 잘못은 박정희 정권 이래 전두환 독재에 이르기까지 친일 군사정권이 권력 유지 차원에서 경제원조나 차관을 얻기 위해 일본에 너무 속을 보이고 저자세 외교를 벌인 것이다. 한국이 독도 문제에 대해서 일본의 눈치를 보는 인상을 준 것은 역대 군사정권의 유산이다. 한국이 ‘조용한 외교’라는 이름아래 주권행사를 쉬쉬하고 있을 때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명분’을 축적해 갔다.
그러나 시마네 현의 ‘다께시마 날’ 조례 통과는 한국 외교의 잠을 깨워주는 좋은 각성제가 됐다. 한국은 이제 독도 문제를 계기로 한일관계에 관한 ‘새 독트린’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권에 비판적인 보수 신문들까지 원칙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 나오자 다시 보수 언론들이 대통령의 ‘말’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대통령의 글이 너무 비(非)외교적인 표현이라는 것, 외교정책을 최종적으로 조정할 대통령이 미리 외교의 마지노 선을 쳐버리면 잘못 됐을 때 후퇴할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동안 일본 정부 고위인사들이 한일 과거사에 대해서 함부로 뱉은 무책임한 망언이나 준비 중인 교과서 왜곡, 시마네 현 조례에 대한 고이즈미 정부의 ‘나몰라라’ 태도 등 일본의 외교 쓰나미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글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에 충격 준 노 대통령 발언
‘외교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 등 한두 군데 표현을 문제 삼을 수 있겠으나 오히려 상대방에게 충격을 줌으로써 일본에 대해서 독도 문제뿐 아니라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한 한국민의 ‘주권 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고 볼 수도 있다. 외교적 프로토콜에 문제가 있지만 효과는 극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주권 국가를 ‘악의 축’이라고 부른 부시 대통령의 발언과 일맥 상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자주 써서는 안 되겠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쓸 수 있는 처방으로 보인다.
한일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유지한다는 데 두 나라가 동의했다. 독도를 둘러 싼 한일 외교전이 일단 소강 상태에 들어간 느낌이다. 긴장을 한 단계 높임으로써 상대방의 기세를 꺾는 외교의 에스커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작전은 일단 노린 성과를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경계할 것이 있다. 일본 총리와 만나기 전에 우리의 요구 조건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것이 충족되도록 일본 정부에 계속 외교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고이즈미 총리와의 만남이 의례적인 만남으로 끝날 때 대통령이 ‘글’에서 암시했던 기대들이 공허한 공약이 돼버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의 권위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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