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과 함께 하는 박철의 금융 교실]초등학생들의 ‘외상장부’

지역내일 2005-03-29 (수정 2005-03-30 오전 11:53:49)
얼마 전 아침방송의 한 프로에서 ‘초등학생 외상장부’를 다룬 적이 있다. ‘초등학생’과 ‘외상장부’라는 어색한(?) 단어의 조합에 이끌려 TV를 보고 있자니 요즘 초등학생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외상거래를 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자가 아이들과의 외상거래를 따져 물으며 마이크를 들이 대는 데도 문방구 주인 역시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수첩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아이들의 외상목록을 보여 주며, 단골이 떨어지기 때문에 외상을 해줄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사정을 항변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초등학생 거의 대부분이 외상을 하고 있으며, 고학년으로 갈수록 외상값이 많아진다고 한다. 실제 화면 속의 아이들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외상장부에 내용을 쓰고는 물건을 가져가는 모습이었다. 이러다 보니 외상값이 문제가 되서 아이의 부모와 문방구 주인이 실랑이 벌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필자를 놀라게 한 대목은 아이들의 이런 외상거래를 권장하는 부모들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아이가 필요한 것을 언제든지 달라고 할 때 주면 자기가 와서 갚겠다고 문방구 주인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생 때는 아이가 맨 처음 독립된 경제인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기이다. 어른들도 물건을 살 때 ‘외상(신용카드)’일 때와 ‘현금’일 때가 마음이 다르다. 신용카드가 아니라 두툼한 지폐다발을 손에 쥐고 있으면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소비습관을 외상으로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얼마 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영업을 한 다단계회사가 적발되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손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간 대학생들이 수천명에, 피해 액수도 수 십 억원에 달했다.
빚을 내면서까지 다단계 사업에 뛰어들었던 이들 중 상당수는 결국 ‘신용불량자’라는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청년 실업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슬픈 단면이지만 한편으로 신용의식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외상으로 가져오는 학용품이나 준비물은 그저 ‘물건’이 아니다. 그 속에는 아이가 평생을 갖고 살아갈 경제관과 신용의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기 보다는 당장 편한 것만 생각한다.
그러는 동안 아이의 신용개념이 싹을 틔우지도 못한다는 것을 부모들은 잊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신용사회라고 한다. 이 말은 신용이 모든 경제활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 즉, 신용이 없다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경제시스템이다. 이런 신용사회에서 가장 큰 재산은 당연히 신용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용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얼마 전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길거리에서 카드를 신청하고 발급 받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신용의식의 수준일지 모른다.
“신용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집니다.” 귀에 익은 공익광고의 내용이다. 섬뜩한 느낌마저 주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마치 공기를 숨쉬듯이 우리는 신용사회 속에 살고 있다.
신용은 공기처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의 재산이 아니다. 하지만 막상 신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면 신용이 얼마나 귀중한 재산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니 신용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신용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미래에 돌아올 책임보다는 당장의 욕구 충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에 대한 신용교육의 중요성은 더더욱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초등학생들의 ‘외상장부’다.

/국민은행 연구소 금융교육 TF팀 박철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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