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와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논문만 제출하고는 허겁지겁 귀국한 지 벌써 15년이 흘렀습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도쿄에 와 있던 운동권 출신 한국 유학생들을 챙겨 주시던 선생님의 넉넉한 마음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도서관에서 한국 관계 책을 찾다가 없으면 선생님께서 대출해 가신 것으로 알던 기억이 납니다.
2월 28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좌담 기사를 통해 한일관계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보았습니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비등하는 한국의 여론에 대해 일본에 건강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조용한 다수를 믿어 달라고 호소하시는 선생님의 뜻은 저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주재하고 있을 때 일본연구자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인사와 대화를 나누려 노력하시던 데라다 데루스케 전 주한대사도 같은 의견이시더군요.
눈치도 없이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던 학생 시절의 버릇대로 오늘도 이상한 문제를 하나 여쭈어 보겠으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을 한국의 식자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한국에서는 시민만이 아니라 정부측으로부터도 일본을 통째로 규탄할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 세력이나 엔지오(NGO)를 친구로 삼아 오해를 풀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도 이러한 발상은 타당한 일이고 선생님이나 데라다 전대사의 의견과도 일치됩니다. 따라서 한일 양국간에는 영토와 역사 해석을 둘러 싼 갈등은 본래 존재하지도 않으며 소수의 일본 우익 보수 세력만 제풀에 지쳐 조용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이니 한국 정부와 시민은 냉정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현재 일본에 보수파의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독자적 시민사회 세력이 존재하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일본에 독자적 시민세력 있는지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1980년대를 일본에서 보낸 저의 직감으로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고 한일관계의 앞날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몇 년 사이에 일본에서 들려오는 소식에는 이전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각급 학교 행사에서 일장기 게양과 천황을 기리는 기미가요의 제창이 강요되고 있으며 교원노조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모습이 단적인 예입니다.
2002년 2월에 잠시 도쿄에 들렀을 때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공격 가능성이 논의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는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의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 것이 아니었는가’ 라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당시에도 군부의 총칼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침략에 가담한 사람은 소수였고, 광활한 만주에서 새 땅을 가질 수 있고 동남아에서 석유도 확보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선전을 믿고 열광해 자발적으로 국가와 천황에게 충성을 바친 ‘풀뿌리 보수주의자’가 다수가 아니었던가요? 물론 일본은 전후 60년간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체제를 운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끄러운 소수의 우파’에게 ‘침묵하는 다수의 양식파’가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외부에서 관찰하기에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사회학자라는 직업의 특성 탓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사회구조적인 변화의 산물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카야마 리카씨가 쓴 ‘프티 내셔날리즘’이라는 책에서 장기불황 속에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안고 있는 청년층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소(小)민족주의 정서가 프랑스에서 국민전선을 이끄는 르펭과 같은 극단적인 국수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석을 보았습니다. 이 책의 행간에서 저는 계층 격차의 심화, 청년의 좌절감, 잘 나가는 소수의 맹목적 미국 추종, 믿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중년 가장의 답답함이 모두 뭉쳐 사회적 유대감이 깨져 나가는 위기가 진행되고 있고, 이를 수습해야 하는 정부도 뚜렷한 대책이 없으니 애국심이라는 접착테이프로 일단 얽어 매놓고 보자는 상황이라는 진단을 읽었습니다. 이는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대중적 지지에 기반을 둔 독재 정권인 현대 파시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보아도 맞는 것이 아닌가요 ?
일본 보수 우경화에 대한 경고음
물론 저도 와다 선생님과 같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지식인들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진 이후에 겪는 곤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선생님께서 한국의 민주화를 돕는 이유를 묻는 저에게 하신 “일본 사회를 좋게 만들기 위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대한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한국의 민주화 운동 세력은 집권에 성공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둡고 괴로웠던 군사정권 시절에 보내주신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보수 우경화에 대한 경고음을 보내는 것이 저희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현실 정치적으로도 활성화된 주도세력으로 전환되는 날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와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논문만 제출하고는 허겁지겁 귀국한 지 벌써 15년이 흘렀습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도쿄에 와 있던 운동권 출신 한국 유학생들을 챙겨 주시던 선생님의 넉넉한 마음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도서관에서 한국 관계 책을 찾다가 없으면 선생님께서 대출해 가신 것으로 알던 기억이 납니다.
2월 28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좌담 기사를 통해 한일관계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보았습니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비등하는 한국의 여론에 대해 일본에 건강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조용한 다수를 믿어 달라고 호소하시는 선생님의 뜻은 저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주재하고 있을 때 일본연구자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인사와 대화를 나누려 노력하시던 데라다 데루스케 전 주한대사도 같은 의견이시더군요.
눈치도 없이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던 학생 시절의 버릇대로 오늘도 이상한 문제를 하나 여쭈어 보겠으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을 한국의 식자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한국에서는 시민만이 아니라 정부측으로부터도 일본을 통째로 규탄할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 세력이나 엔지오(NGO)를 친구로 삼아 오해를 풀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도 이러한 발상은 타당한 일이고 선생님이나 데라다 전대사의 의견과도 일치됩니다. 따라서 한일 양국간에는 영토와 역사 해석을 둘러 싼 갈등은 본래 존재하지도 않으며 소수의 일본 우익 보수 세력만 제풀에 지쳐 조용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이니 한국 정부와 시민은 냉정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현재 일본에 보수파의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독자적 시민사회 세력이 존재하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일본에 독자적 시민세력 있는지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1980년대를 일본에서 보낸 저의 직감으로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고 한일관계의 앞날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몇 년 사이에 일본에서 들려오는 소식에는 이전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각급 학교 행사에서 일장기 게양과 천황을 기리는 기미가요의 제창이 강요되고 있으며 교원노조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모습이 단적인 예입니다.
2002년 2월에 잠시 도쿄에 들렀을 때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공격 가능성이 논의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는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의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 것이 아니었는가’ 라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당시에도 군부의 총칼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침략에 가담한 사람은 소수였고, 광활한 만주에서 새 땅을 가질 수 있고 동남아에서 석유도 확보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선전을 믿고 열광해 자발적으로 국가와 천황에게 충성을 바친 ‘풀뿌리 보수주의자’가 다수가 아니었던가요? 물론 일본은 전후 60년간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체제를 운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끄러운 소수의 우파’에게 ‘침묵하는 다수의 양식파’가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외부에서 관찰하기에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사회학자라는 직업의 특성 탓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사회구조적인 변화의 산물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카야마 리카씨가 쓴 ‘프티 내셔날리즘’이라는 책에서 장기불황 속에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안고 있는 청년층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소(小)민족주의 정서가 프랑스에서 국민전선을 이끄는 르펭과 같은 극단적인 국수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석을 보았습니다. 이 책의 행간에서 저는 계층 격차의 심화, 청년의 좌절감, 잘 나가는 소수의 맹목적 미국 추종, 믿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중년 가장의 답답함이 모두 뭉쳐 사회적 유대감이 깨져 나가는 위기가 진행되고 있고, 이를 수습해야 하는 정부도 뚜렷한 대책이 없으니 애국심이라는 접착테이프로 일단 얽어 매놓고 보자는 상황이라는 진단을 읽었습니다. 이는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대중적 지지에 기반을 둔 독재 정권인 현대 파시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보아도 맞는 것이 아닌가요 ?
일본 보수 우경화에 대한 경고음
물론 저도 와다 선생님과 같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지식인들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진 이후에 겪는 곤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선생님께서 한국의 민주화를 돕는 이유를 묻는 저에게 하신 “일본 사회를 좋게 만들기 위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대한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한국의 민주화 운동 세력은 집권에 성공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둡고 괴로웠던 군사정권 시절에 보내주신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보수 우경화에 대한 경고음을 보내는 것이 저희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현실 정치적으로도 활성화된 주도세력으로 전환되는 날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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