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무서워
아이들의 눈망울에 비친 봄빛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맑다. 학교에서 그 아이들의 시선은 늘 선생님에게 머문다. 그렇게 아름다워야 할 사제지간에 요즘 이상 징후가 보인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15.3%의 초중고생이 교사가 무서워 학교에 가기가 싫다고 응답했다. 교육청과 학교장이 교사를 임의로 통제하듯이 교사 역시 아이들에게 절대 권력으로 군림한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한다. 새학기에 우리는 교사의 생활주기(life cycle)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지시에 참 민감하다. 특히 일관성이 결여되고 진정성이 없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학교의 공식적인 등교시간을 고무줄 늘이듯이 마음대로 줄여서 10분, 30분씩 일찍 오라는 교사일수록 자신이 스스로 정한 규칙에 대해서 엄격하다. 당연히 어기는 아이들에게는 체벌과 모욕이 가해진다. 언어폭력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체벌이 줄어든 대신 상식적인 수위를 넘는 교사의 욕설이 문제가 되고 있다. "너를 낳고도 네 엄마가 미역국을 먹었니?", "네가 그 따위인데 네 아빠는 어떨지 알만하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어떠한 장치로도 검증된 바 없는 교사의 언행에 속수무책이기 일쑤다. 왕따 피해를 당한 아이와 부모가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네가 당할만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는 담임교사의 선언이다. 가해아이들이 무서운판국에 정작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일한 담임교사가 양비론을 펼 때는 억장이 무너진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떠드는 것은 못본 채 넘어가도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미운 털이 박히는 선생님의 차별대우는 이미 공! 식처럼 인식되고 있다.
어른인 교사는 아이들과 공감능력이 다르다. 딴짓을 하는 아이들은 앞에 앉은 아이의 등뒤에 숨으면 교단에 선 선생님이 못 보는 줄 안다. 떠드는 아이들이 작게 속삭이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선생님이 어떻게 듣고 적발했는지 기가 막혀한다. 교단에 서면 선생님은 아이들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만 아이들은 앉은자리에서 오직 선생님만이 눈에 들어온다. 공감능력이 다른 어른과 아이가 느끼는 갈등은 쉽게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OECD국가들은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적어도 생활문제에 있어서 교사와 아이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학생회를 법제화하여 학칙제정에 참여하게 한다. 잔인한 달 4월이 오고 있다. 소중한 선생님들이 더 이상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김대유(서울 서문여중 교사)
아이들의 눈망울에 비친 봄빛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맑다. 학교에서 그 아이들의 시선은 늘 선생님에게 머문다. 그렇게 아름다워야 할 사제지간에 요즘 이상 징후가 보인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15.3%의 초중고생이 교사가 무서워 학교에 가기가 싫다고 응답했다. 교육청과 학교장이 교사를 임의로 통제하듯이 교사 역시 아이들에게 절대 권력으로 군림한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한다. 새학기에 우리는 교사의 생활주기(life cycle)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지시에 참 민감하다. 특히 일관성이 결여되고 진정성이 없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학교의 공식적인 등교시간을 고무줄 늘이듯이 마음대로 줄여서 10분, 30분씩 일찍 오라는 교사일수록 자신이 스스로 정한 규칙에 대해서 엄격하다. 당연히 어기는 아이들에게는 체벌과 모욕이 가해진다. 언어폭력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체벌이 줄어든 대신 상식적인 수위를 넘는 교사의 욕설이 문제가 되고 있다. "너를 낳고도 네 엄마가 미역국을 먹었니?", "네가 그 따위인데 네 아빠는 어떨지 알만하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어떠한 장치로도 검증된 바 없는 교사의 언행에 속수무책이기 일쑤다. 왕따 피해를 당한 아이와 부모가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네가 당할만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는 담임교사의 선언이다. 가해아이들이 무서운판국에 정작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일한 담임교사가 양비론을 펼 때는 억장이 무너진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떠드는 것은 못본 채 넘어가도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미운 털이 박히는 선생님의 차별대우는 이미 공! 식처럼 인식되고 있다.
어른인 교사는 아이들과 공감능력이 다르다. 딴짓을 하는 아이들은 앞에 앉은 아이의 등뒤에 숨으면 교단에 선 선생님이 못 보는 줄 안다. 떠드는 아이들이 작게 속삭이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선생님이 어떻게 듣고 적발했는지 기가 막혀한다. 교단에 서면 선생님은 아이들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만 아이들은 앉은자리에서 오직 선생님만이 눈에 들어온다. 공감능력이 다른 어른과 아이가 느끼는 갈등은 쉽게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OECD국가들은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적어도 생활문제에 있어서 교사와 아이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학생회를 법제화하여 학칙제정에 참여하게 한다. 잔인한 달 4월이 오고 있다. 소중한 선생님들이 더 이상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김대유(서울 서문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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