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태도 불변이 ‘선언’ 못나오게 만든 걸림돌
북한에 ‘우호적 협박’ ‘연착륙 보장’ 양동작전
‘베를린 선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당초의 예상과 달리 독일을 방문 중인 노 대통령은 현재까지 ‘침묵의 행진’ 중이다. 남북문제와 관련, 약간의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선언’이라고 할만한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정상 13일 슈뢰더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남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게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애초 노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구구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에 대한 내용이건, 냉전질서 변화와 관련된 내용이건 무엇인가 베를린 방문에 걸맞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겠냐는 관측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3월 ‘동북아균형자론’ 등 이른바 전후 냉전질서 변화를 의미하는 외교구상의 일단을 내비친 만큼, 베를린에서 ‘완결판’이 나오지 않겠냐고 기대(?)했던 것이다.
◆“북 개방 비용 부담스러워도 감당” = 그러나 노 대통령은 독일 방문에서 ‘말을 아낀다’ 싶을 정도로 이런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11일(이하 한국시간) 베를린 동포 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조금 높인 것, 브란덴부르크문을 다녀온 후 ‘북한이 중국·베트남처럼 정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개방으로 나가길 기대한다’는 식의 소회를 밝힌 것,
그리고 12일 메르켈 기민당 당수와 통독관련 인사를 만났을 때 ‘통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경제개혁과 개방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감당한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던졌을 뿐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이전보다 약간 강도를 더한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선언’이라고 할 만큼 무게가 실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이런 기류는 노 대통령 독일방문에 앞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출국 사흘전 청와대 정우성 외교보좌관은 독일방문과 관련한 배경 브리핑에서 “특별한 선언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북핵게임’, 북한에 의해 배척당해 = 그렇다면 처음부터 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앞뒤의 정황에 살펴보면 노 대통령이 모종의 메시지를 내려고 했지만 ‘조건’이 성숙되지 않아 그냥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관측에 동의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북한의 태도 불변’이라는 조건의 미성숙이 ‘베를린 선언’이라는 완결판을 내놓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노 대통령의 북한관련 발언과 북한의 태도를 보면 이런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난해 말 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북한이 6자회담에 곧 복귀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북한은 ‘호응’은 커녕 오히려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6자회담을 파기해버렸다. 핵문제를 매개로 한 북한과 미국의 게임에 한국은 ‘당사자’로, ‘주도적’으로 끼길 희망했지만, 북한이 한국을 외면해버린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우경화와 미국의 노골적인 일본 편들기 등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을 꺼내들지었만, 이런 동북아 신질서 구상조차 북한의 무반응이라는 벽에 부딪혀 버렸다. 동북아 신질서 구상은 펼쳐보기도 전에 한미일 삼각동맹이라는 전통적 질서와 북한의 태도불변이라는 양쪽의 벽에 끼어 질식사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실 노 대통령이 독일에서의 북한 관련 발언은 하나의 궤도 위에 있다. 베를린 방문 첫날 북한에 대해 비판수위를 높인 것은 ‘우리와 관계를 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의 ‘우호적 협박’이라면, 사흘째 되는 날의 ‘통일시기’ ‘북한 개혁·개방비용 감당’ 언급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는 연착륙 보장의 당근인 셈이다.
◆언젠가 ‘완결판’ 나올 가능성 높아 = 물론 ‘베를린 선언’을 내놓지 않은 이유로 ‘수위조절론’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동북아균형자론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미국 중심의 냉전질서 해체에 있고, 이 문제에 대해 국내에서 강도 높은 메시지를 던진 만큼 현재는 미·일의 반응을 타진하고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더구나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이 노 대통령을 근본적으로 반미·친북주의자로 보고 있거나, 아니면 ‘미국이 결코 한국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는 마당에 이런 의구심을 더 부추길 ‘선언’을 섣불리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건미성숙론’이나 ‘수위조절론’ 이나 사실 노 대통령이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관측이 사실이라면 노 대통령은 언젠가 ‘완결판’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에서의 노 대통령의 언급은 완결판을 위한 ‘운 띄우기’로 볼 수도 있다.
/베를린 =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북한에 ‘우호적 협박’ ‘연착륙 보장’ 양동작전
‘베를린 선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당초의 예상과 달리 독일을 방문 중인 노 대통령은 현재까지 ‘침묵의 행진’ 중이다. 남북문제와 관련, 약간의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선언’이라고 할만한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정상 13일 슈뢰더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남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게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애초 노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구구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에 대한 내용이건, 냉전질서 변화와 관련된 내용이건 무엇인가 베를린 방문에 걸맞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겠냐는 관측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3월 ‘동북아균형자론’ 등 이른바 전후 냉전질서 변화를 의미하는 외교구상의 일단을 내비친 만큼, 베를린에서 ‘완결판’이 나오지 않겠냐고 기대(?)했던 것이다.
◆“북 개방 비용 부담스러워도 감당” = 그러나 노 대통령은 독일 방문에서 ‘말을 아낀다’ 싶을 정도로 이런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11일(이하 한국시간) 베를린 동포 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조금 높인 것, 브란덴부르크문을 다녀온 후 ‘북한이 중국·베트남처럼 정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개방으로 나가길 기대한다’는 식의 소회를 밝힌 것,
그리고 12일 메르켈 기민당 당수와 통독관련 인사를 만났을 때 ‘통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경제개혁과 개방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감당한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던졌을 뿐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이전보다 약간 강도를 더한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선언’이라고 할 만큼 무게가 실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이런 기류는 노 대통령 독일방문에 앞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출국 사흘전 청와대 정우성 외교보좌관은 독일방문과 관련한 배경 브리핑에서 “특별한 선언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북핵게임’, 북한에 의해 배척당해 = 그렇다면 처음부터 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앞뒤의 정황에 살펴보면 노 대통령이 모종의 메시지를 내려고 했지만 ‘조건’이 성숙되지 않아 그냥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관측에 동의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북한의 태도 불변’이라는 조건의 미성숙이 ‘베를린 선언’이라는 완결판을 내놓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노 대통령의 북한관련 발언과 북한의 태도를 보면 이런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난해 말 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북한이 6자회담에 곧 복귀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북한은 ‘호응’은 커녕 오히려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6자회담을 파기해버렸다. 핵문제를 매개로 한 북한과 미국의 게임에 한국은 ‘당사자’로, ‘주도적’으로 끼길 희망했지만, 북한이 한국을 외면해버린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우경화와 미국의 노골적인 일본 편들기 등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을 꺼내들지었만, 이런 동북아 신질서 구상조차 북한의 무반응이라는 벽에 부딪혀 버렸다. 동북아 신질서 구상은 펼쳐보기도 전에 한미일 삼각동맹이라는 전통적 질서와 북한의 태도불변이라는 양쪽의 벽에 끼어 질식사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실 노 대통령이 독일에서의 북한 관련 발언은 하나의 궤도 위에 있다. 베를린 방문 첫날 북한에 대해 비판수위를 높인 것은 ‘우리와 관계를 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의 ‘우호적 협박’이라면, 사흘째 되는 날의 ‘통일시기’ ‘북한 개혁·개방비용 감당’ 언급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는 연착륙 보장의 당근인 셈이다.
◆언젠가 ‘완결판’ 나올 가능성 높아 = 물론 ‘베를린 선언’을 내놓지 않은 이유로 ‘수위조절론’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동북아균형자론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미국 중심의 냉전질서 해체에 있고, 이 문제에 대해 국내에서 강도 높은 메시지를 던진 만큼 현재는 미·일의 반응을 타진하고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더구나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이 노 대통령을 근본적으로 반미·친북주의자로 보고 있거나, 아니면 ‘미국이 결코 한국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는 마당에 이런 의구심을 더 부추길 ‘선언’을 섣불리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건미성숙론’이나 ‘수위조절론’ 이나 사실 노 대통령이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관측이 사실이라면 노 대통령은 언젠가 ‘완결판’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에서의 노 대통령의 언급은 완결판을 위한 ‘운 띄우기’로 볼 수도 있다.
/베를린 =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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