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파는 게 없는 백화점 직원”
펀드부터 핸드폰까지 상시캠페인... 실적․자리 경쟁에 탈모증 환자 많아져
시중은행 서울 모지점에 근무하는 김 모씨는 끝없이 쏟아지는 영업할당에 정신이 없다. 카드, 대출, 예금 등은 원래 있던 것이지만 요즘엔 펀드, 보험까지 겹쳐 눈코뜰새가 없다. 그야말로 백화점 직원이나 외판원이 따로 없다. 식사시간에 잠시 숨을 돌릴때나 저녁에 동료와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는 “우리는 백화점 직원”이라는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문제는 이게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 가장 힘든 게 보험이다. 특히 요즘 같아서는 금감원 등에서 ‘꺾기’조사를 강화하고 있는 데다 인터넷이 발달돼 행여 은행이나 감독당국에 걸리게 되면 그날로 ‘끝’이다.
펀드나 보험은 정해진 전문직원들만 팔게 돼 있지만 지점마다 떨어지는 ‘할당’과 매월 그래프로 비교하는 실적평가는 몇몇 직원에게만 이를 맡길 수 없게 만든다. 전 지점원들이 발벗고 나서야 겨우 목표를 맞출 만하다.
지점장이 매주있는 지점장 회의에 갔다 오는 날이면 초상집분위기다. 실적 올리라는 ‘교시’와 함께 더 많아진 할당량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캠페인기간을 정해놓고 했다. 친구나 친척에게 일단 들었다가 해지하면 된다면서 단기실적을 올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젠 ‘상시 캠페인’이다. 일년 365일을 캠페인처럼 해야 한다. 안정적이고 편하다는 ‘은행원의 좋았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다.
◆“제발 하나만 들어주세요” = 고객에게 큰 소리를 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출을 받아가는 사람들도 꺾기엔 곧바로 거부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꺾기’는 이제 옛말이 돼 버렸다”면서 “이젠 고객에게 하나만 사달라고 애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점장에게 전결권이 있어야 대출을 해주면서 보험이라도 들게 하는데 요즘엔 대출을 모두 본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지점장의 권한이 없다. 실제로 ‘꺾기’를 하기 위한 환경이 많이 사라진 셈.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후 보험에 가입한 1500명에게 전화로 ‘강제가입’을 물었으나 1명만 그렇다고 대답했고 3000명을 대상으로 이번엔 설문을 해 봤더니 20명정도만 ‘꺾기’로 보험에 가입했다고 밝혔다”면서 “실제 꺾기 관행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자 ‘생존경쟁’= 은행과 안정직장의 사이에 등호가 빠진 지 오래다. 실적평가에 의한 임금, 인사때문이다. 지점이 꼴등을 하게 되면 연수와 교육이 이뤄진다. 임금도 크게 깎인다.
하나은행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무성과급제는 냉엄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성과에 따라 기본급이 크게 달라진다. 성과가 곧바로 임금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직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이 상시구조조정으로 변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은행은 전직프로그램도 항상 실시하고 있다. 예보와 MOU를 체결해 직원을 많이 뽑기 어려운 우리은행은 매년 명예퇴직을 받고 그만큼 신규직원을 채용할 정도다. 올해도 76명이 명예퇴직 의사를 밝혔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실적이 나쁘면 곧바로 후선으로 빼는 제도도 국민, 조흥, 우리, 하나은행 등은 노사합의로 만들어 놓은 상태다. 후선으로 일단 빠지면 회복되기 쉽지 않다.
◆야근 일요일에도 근무=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연히 야근과 일요일 근무도 마다할 수 없다. 최근 은행원들에게 탈모증이 유행하고 있다. 30대인데도 머리가 빠져 고민하는 직원들이 많다. 이를 그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시 캠페인, 실적평가, 임금차등지급 등은 말 그대로 피를 말리는 일”이라며 “직원들 내에 최근들어 더욱 탈모증세가 많아지는 것도 이런 것들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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