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톤 발 풍설에 휘둘려서야
임재경 (언론인)
몇 해째 공짜로 넣어주는 어느 신문의 어제 자는 평생 저널리즘을 업으로 삼는 나로서도 섬뜩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반도 허리에 째깍 거리는 시한폭탄이 묶여있는 삽화를 곁들인데다 기사의 큰 제목은 ‘꼬리 무는 6월 위기설-설-설’이고, 부제는 ‘6자회담 파국?… 안보리 회부?… 북 핵실험 강행?’ 으로 돼있었다. 제목의 ‘설’이나 의문부호(?) 따위는 열거한 사항이 미심적다는 뜻을 가리키기보다는 메시지의 흉흉한 분위기를 한층 더 증폭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던가 싶다. 독자들이 “어! 내달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데” 했더라도 전혀 이상스러울 일이 아니다. 이 신문 지면의 편집은 풍설 진원지가 의도한 효과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거대 인쇄매체들이 북핵과 관련하여 윤색해내는 워싱톤 발 각종풍설의 핵심적 시나리오는 매우 간단한 도식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유엔이 북한에 대한 제재(sanction)를 결의하게 되고 북은 이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북한과 미국은 피차 충분한 개전(開戰) 이유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전쟁게임과 비슷
컴퓨터의 전쟁게임 비슷한 것인데 이런 시나리오를 열심히 전파하는 매체들은 단순한 관전자(觀戰者)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느 한 쪽에 서서 상대방을 신나게 두들기는 가학 심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종류의 윤색기사가 아니더라도 미 대통령 부시의 북한 지도자에 대한 모욕적 공개 언사와 이에 ‘불망나니’운운한 북한의 대응은 잠재적 전역(戰域, war theatre)에 살아야할지 모르는 우리로서는 언짢기 그지없다.
전통적 맹방인 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을 강행한 부시의 미국이고 보면 한반도에서 또 한 차례 불장난을 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구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국 네오콘(neoconservative, 단어의 본래 의미는 신자유주의자지만 미국에서는 극우파를 지칭한다)의 일방적 레토릭을 미국 정부의 확정된 정책인 양 보도해놓고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논평과 해설을 일삼는 인사들은 겨레를 생각하는 지식인과는 한 참 멀고 자신의 잇속만을 노리는 상인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핵실험-유엔제재-미국 선제공격의 시나리오가 북의 6자회담 참가를 유도하는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것은 북미간의 해묵은 갈등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문제의 문맹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에도 인터넷(www.peacekorea.org)을 찾으면 네오콘의 시나리오와는 다른 의견도 있음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미 국무성 동아태 담당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전 주한 미국대사)은 5월6일 한국기자 정욱식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좋은 의도(good intention)를 갖고 있으며….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번역전문은 <오마이뉴스>5월10일자 참조)고 말했다. 특히 이제까지 미국이 북한과 대화(6자회담)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종래의 방침에서 “미국의 제안에 북한이 반응하고 북한의 반응에 미국이 반응하는 것이 협상”이라는 힐의 언명은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이행에 일보 접근한 자세다. 네오콘의 시나리오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남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북한을 더욱 경직시킨다는 면에서 절대 금물이지만 비-네오콘의 말을 항구불변의 미국 외교정책이라고 과신하는 것 역시 경솔하다.
대북특사 파견 서둘러야
중요한 것은 미국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어떠한 국면 전개를 꿈꾸든 간에 대한민국은 한반도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반대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작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LA 발언을 통해 한반도의 전쟁반대를 분명히 밝힌바 있으나 이 발언을 하나의 공식적인 독트린(외교원칙)으로 대내외에 각인시켜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남한에서 민족 우선주의가 굳게 자리 잡는 일이 선행되어야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은 북한이 남한의 전쟁반대 독트린을 신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민간부문의 남북교류와 협력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나가는 것은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닌데 답답한 것은 고위급 접촉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것이다. 남북의 수뇌회담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특명을 받은 중량급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이 경우에 통일부장관이나 그밖에 정부 공식 직위를 가진 사람보다는 국내정치적으로 부담이 없는 사람을 보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길이다. 이른바 대북 특사파견문제이다. 이는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평양에 가서 설혹 빈손으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엄혹한 국면을 넘기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오마이뉴스>
임재경 (언론인)
몇 해째 공짜로 넣어주는 어느 신문의 어제 자는 평생 저널리즘을 업으로 삼는 나로서도 섬뜩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반도 허리에 째깍 거리는 시한폭탄이 묶여있는 삽화를 곁들인데다 기사의 큰 제목은 ‘꼬리 무는 6월 위기설-설-설’이고, 부제는 ‘6자회담 파국?… 안보리 회부?… 북 핵실험 강행?’ 으로 돼있었다. 제목의 ‘설’이나 의문부호(?) 따위는 열거한 사항이 미심적다는 뜻을 가리키기보다는 메시지의 흉흉한 분위기를 한층 더 증폭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던가 싶다. 독자들이 “어! 내달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데” 했더라도 전혀 이상스러울 일이 아니다. 이 신문 지면의 편집은 풍설 진원지가 의도한 효과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거대 인쇄매체들이 북핵과 관련하여 윤색해내는 워싱톤 발 각종풍설의 핵심적 시나리오는 매우 간단한 도식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유엔이 북한에 대한 제재(sanction)를 결의하게 되고 북은 이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북한과 미국은 피차 충분한 개전(開戰) 이유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전쟁게임과 비슷
컴퓨터의 전쟁게임 비슷한 것인데 이런 시나리오를 열심히 전파하는 매체들은 단순한 관전자(觀戰者)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느 한 쪽에 서서 상대방을 신나게 두들기는 가학 심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종류의 윤색기사가 아니더라도 미 대통령 부시의 북한 지도자에 대한 모욕적 공개 언사와 이에 ‘불망나니’운운한 북한의 대응은 잠재적 전역(戰域, war theatre)에 살아야할지 모르는 우리로서는 언짢기 그지없다.
전통적 맹방인 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을 강행한 부시의 미국이고 보면 한반도에서 또 한 차례 불장난을 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구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국 네오콘(neoconservative, 단어의 본래 의미는 신자유주의자지만 미국에서는 극우파를 지칭한다)의 일방적 레토릭을 미국 정부의 확정된 정책인 양 보도해놓고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논평과 해설을 일삼는 인사들은 겨레를 생각하는 지식인과는 한 참 멀고 자신의 잇속만을 노리는 상인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핵실험-유엔제재-미국 선제공격의 시나리오가 북의 6자회담 참가를 유도하는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것은 북미간의 해묵은 갈등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문제의 문맹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에도 인터넷(www.peacekorea.org)을 찾으면 네오콘의 시나리오와는 다른 의견도 있음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미 국무성 동아태 담당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전 주한 미국대사)은 5월6일 한국기자 정욱식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좋은 의도(good intention)를 갖고 있으며….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번역전문은 <오마이뉴스>5월10일자 참조)고 말했다. 특히 이제까지 미국이 북한과 대화(6자회담)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종래의 방침에서 “미국의 제안에 북한이 반응하고 북한의 반응에 미국이 반응하는 것이 협상”이라는 힐의 언명은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이행에 일보 접근한 자세다. 네오콘의 시나리오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남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북한을 더욱 경직시킨다는 면에서 절대 금물이지만 비-네오콘의 말을 항구불변의 미국 외교정책이라고 과신하는 것 역시 경솔하다.
대북특사 파견 서둘러야
중요한 것은 미국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어떠한 국면 전개를 꿈꾸든 간에 대한민국은 한반도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반대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작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LA 발언을 통해 한반도의 전쟁반대를 분명히 밝힌바 있으나 이 발언을 하나의 공식적인 독트린(외교원칙)으로 대내외에 각인시켜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남한에서 민족 우선주의가 굳게 자리 잡는 일이 선행되어야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은 북한이 남한의 전쟁반대 독트린을 신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민간부문의 남북교류와 협력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나가는 것은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닌데 답답한 것은 고위급 접촉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것이다. 남북의 수뇌회담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특명을 받은 중량급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이 경우에 통일부장관이나 그밖에 정부 공식 직위를 가진 사람보다는 국내정치적으로 부담이 없는 사람을 보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길이다. 이른바 대북 특사파견문제이다. 이는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평양에 가서 설혹 빈손으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엄혹한 국면을 넘기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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