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근로복지공단 안산어린이집 방연실 씨

“어린이들의 해맑은 꿈 지켜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지역내일 2005-03-30
탐스런 눈이 하얗게 세상을 덮은 날, 어린 제자들에게 “얘들아, 눈사람 만들자!”고 소리치며 마당으로 달려가는 선생님, 드넓은 대학 캠퍼스를 볼 때마다 상가주택이나 손바닥만한 놀이터가 달린 곳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떠올리며 가슴아파하는 선생님, 보육교사인 자신의 직업을 ‘어린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선생님, 처음 만난 이에게 예쁘게 코팅한 ‘어린이 권리 선언문’을 선물할 줄 아는 선생님, 한복이 썩 잘 어울릴 것 같은 희고 단아한 얼굴에 한 점 미소가 달덩이처럼 환하게 떠오르는, 이런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은 부모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이런 선생님 (혹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근로복지공단 안산어린이집 원감 방연실 씨는 바로 그런 선생님이다.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는 몸도 마음도 ‘환한’ 사람이다. 그에게 선물 받은 ‘어린이 권리 선언문’을 되풀이해서 읽는 동안, 그리고 그가 싸이월드에 꾸며놓은 아기자기한 미니홈피를 들락거리는 동안,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그리 환해 보이게 하는 것일까. 정결함이다. 그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닦아 낸다. 성당에 다니며 마음을 닦고, 봉사 활동으로 욕심을 닦고,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며 타성을 닦고, 순수한 아이들을 돌보며 세상의 때를 닦는다.
근로복지공단 안산어린이집의 개원 멤버인 그는 올해 초, 원감으로 ‘승진’했다. 돌아오는 것에 비해 책임만 무거운 자리지만, 보육교사 생활 10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기쁘게 그 ‘선물’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 안산어린이집은 그에게, 직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 소중한 곳이다. 어린이집이 개원한 1997년 7월부터 지금까지 20대의 혼과 열정을 온통 쏟아 부은 곳이기도 하거니와, 저소득층 아이들을 우선 보육하는 어린이집의 교사로서 아동복지와 사회복지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 준 곳이기 때문이다.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뒤늦게 불타오른 그의 향학열은 20대를 넘긴 후에도 좀체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주경야독으로 덕성여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다시 한국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 모두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헌신적으로 일하세요. 일하면서 대학원 다니시는 분도 있고요. 일의 강도나 중요성에 비해 보수며 사회적 지위가 좀 낮은 편이지만,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직업’이라는 자부심만은 다들 대단하죠.”
신문의 인터뷰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좀 민망한지, 방연실 씨는 동료에 대한 칭찬으로 슬쩍 화제를 돌린다. 그래서 그의 입사 동기이자 8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해 온 김지수 원장에게 ‘방샘에 대한 촌평’을 부탁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신조인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힘든 일이 닥쳐도 피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는 스타일이죠. 우리 어린이집은 맞벌이 가정이 많아서 보육 시간도 길고 노동 강도가 센 편이거든요.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들죠. 그런 면에서 방 선생님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교직원 간의 융화에도 관심이 많아 원만하게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이죠. 무엇보다 성실하세요. 일직인 날은 7시 반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방 선생님은 신림동에서 안산까지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하잖아요. 여러 모로 조직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죠.”

방연실 씨는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신림동인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가는 시간은 1시간 40분. 전철 안에서는 책을 읽거나, 수면을 취하기도 한다. 정식 출근시간은 8시 40분이만,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이른 시간에 직장에 도착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안산역에 내려 지하도를 건너면 이제는 눈에 익숙해진 원곡동 거리가 펼쳐진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다수가 동남아인이나 아랍인, 조선족, 몽골인이다. 상가에 나붙은 간판도 중국, 아랍, 영어로 돼 있는 이곳은 ‘국경 없는 마을’.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팻말조차 영어와 중국어로 돼 있다. 그러나 이곳은 안산에서 좀 산다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주거지 1순위다.
이런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듯 근로복지공단 안산어린이집에도 조선족 자녀나 외국인 자녀들이 십여 명 있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어린이집의 설립 목적 자체가, 전국에 있는 영세 중소기업체 밀집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보육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간혹 ‘이들을 받지 말았으면’ 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실제로 이들 때문에 보육의 질이 떨어지거나 말썽이 빚어진 적은 거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인 것 같아요. 가난해도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외국인 자녀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라거나, 엄마가 도망갔다거나, 부모가 모두 병에 걸려 아이를 돌볼 수 없다거나, 늙은 할머니에게 맡겨진 아이들의 처지를 보고 있으면 정말 안타까워요. 보육교사로서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목욕을 시켜 주거나 먹여 주거나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지만 일단 아이가 어린이집 문을 나서면 집에서의 생활까지 책임져 줄 수 없으니까요.”
근로복지공단 안산어린이집의 시설과 환경은 전국의 어느 사설 어린이집에 견주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질 높은 보육에, 널찍한 실외 놀이터와 자연학습장, 실내 체육실과 수영장, 자전거 놀이터와 의무실까지 갖춘 이런 어린이집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창원, 안산, 구로, 인천 등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밀집된 전국 21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은 올해도 3곳의 개원이 예정돼 있으며, 저소득 근로자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근로복지공단의 영유아보육사업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의 설비 개선이나 교구 마련을 위한 비용 등은 공단에서 제공하지만, 교사들의 월급은 시에서 지급된다. 2004년 주 5일제 근무가 도입된 뒤부터는 일주일이 한결 가뿐해졌다. 입사 9년차에 접어든 그의 연봉은 2천만 원 선. 그저,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과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견디라고 하기에는 다소 낮은 액수다. 그래도 그는 저소득층 노동자 자녀의 보육에 힘쓰는 공단이 고맙기만 하단다.
“사립 어린이집 선생님들에 비하면 나은 경우잖아요. 어린이집 분위기도 좋고요. 힘든 건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모습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아이들의 말 한 마디, 표정, 선생님에게 건네는 아주 작은 선물들, 거짓말을 해도 금세 티가 나는 그 천진한 아이다움 같은 것이 정말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보육교사들만이 느끼는 작은 행복이죠.”

방연실 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사를 꿈꿨다. 교사가 아닌 미래의 삶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교사 중에서도 보육 교사가 된 것은 (그의 말에 의하면) 순전히 ‘공부 안 한 탓’이다. 그러나 지금 그이는 보육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일이 즐겁고 재미나기 때문이다. 교사 생활 10년이 하루처럼 흘러갔는데, 지난 세월이 그리도 빠르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즐거웠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매일같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을 책으로 엮으면 족히 ‘전집’이 될 거라고, 종종 그는 동료들과 농담을 한다. 자신이 키운 아이들이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고,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 평범한 가정의 일들을 지켜보면서 그는 삶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됐다.
그의 마음에 교사의 상을 심어 준 이는 96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안산의 선산에 묻혀 있다. 그가 8년 동안 안산을 떠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곳이 아버지가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이들 속에서 늙지 않는 것처럼, 아버지는 젊은 그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50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늙은 친구’ 같은 존재였다. 자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비오는 날엔 수제비를 끓이고, 서예 하는 어머니를 위해 한지에 줄을 그어주던 자상한 아버지가 돌연 가족들의 곁을 떠났을 때 그의 가족은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특히 어머니의 상심이 컸다.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 있던 다정한 부부였어요. 늘 엄마 옆자리에서 마늘 까고, 주방일을 같이 하시곤 했죠. 우리들이 샘을 낼 정도였어요. 엄마한테 한 달 용돈을 주실 땐 봉투에 ‘당신을 사랑하는 여보, 백발소년이’란 글귀를 써넣으시곤 했죠.”
유난히 일찍 머리가 세어 ‘백발소년’이란 호를 달았던 아버지, 가족 문화재단을 만들어 십일조를 걷고 가족여행을 주선했던 아버지. 어쩌면 그이는 아버지에게서 넘치도록 받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보육교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이의 결혼이 늦은 것 역시 이 ‘마음속 백발소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가야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봐야 좀더 푸근하고 따뜻한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요. 아직 남자친구는 없지만, 미래의 가정을 위해 매달 60만 원씩 저축하고 있어요.”
그러나 방연실 씨가 벌여놓은 일로 봐서는 언제 결혼을 할지 장담할 수가 없을 듯하다. 새로 시작한 사회복지학 공부도 마쳐야 하고, 성당에서 성서 연구모임도 해야 하며, 틈나는 대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 녹음봉사를 나가야 한다. 녹음봉사란 글을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우를 위해 녹음을 통해 책을 읽어 주는 봉사다. 평소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그는 ‘이 목소리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년에 자원봉사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때 자원봉사가 얼마나 삶에 가치를 주는지 왜 필요한지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일인데 마음먹은 만큼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보다 더 꽉 채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그이는 서른을 넘기면서 ‘세상은 변화하는데 나만 정체돼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인다고 한다.
“가끔 내가 걸어온 시간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 시간에 내가 어떤 일을 했고 누구와 함께 했던가를 떠올리죠. 그러면 시간을 마음속에 저축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뒤늦게 공부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살아 있는 이 시간을 마음 안에 저축하려구요. 그래야 훗날 행복하게 이 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저의 꿈은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랍니다.”

/글 김기선·사진 백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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