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희생자 30주기 (上)

사형확정 후 곧바로 집행 ‘사법살인’ 만행

지역내일 2005-04-06
사건 증거 없고 고문 자료만 수두룩
민주화보상심의위, 몇년째 ‘심사중’

오는 9일이면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지 30년이 된다. 인혁당 사건은 그동안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고문조작 사건으로 꼽혀왔다. 관련자들 증언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던 사건 진상은 지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에 착수해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사건으로 공식 인정했다. 현재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에서도 조사를 하고 있지만 인혁당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조치와 사죄, 희생자 명예회복은 커녕 아직까지 사건 조작과정과 희생자들 활동 등 사건을 둘러싼 명확한 실체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 진상과 향후 과제를 2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1974년 4월 3일 서울대를 비롯해 이화여대와 성균관대 등 여러 대학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각 대학에 뿌려진 유인물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이란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날 박정희 정권은 대학가의 반유신 데모를 막기 위해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하고 민청학련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4월 25일 신직수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권위 조직이 민청학련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 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수립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세칭 2차 인혁당 사건의 시작이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사건 처리 = 사실 인혁당이란 이름은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10년전인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중앙정보부는 “북괴의 지령을 받은 대규모 반국가단체인 인민혁명당이 국가전복을 꾀하려 했다”며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공안부는 중정이 발표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해 기소거부 판단을 내렸다. 담당 검사 4명중 3명이 사표를 내는 ‘검찰파동’까지 불러 일으켰던 1차 인혁당 사건은 중정의 대대적인 발표와 달리 결국 13명만, 그것도 인혁당과는 상관없는 과거 사상적 경향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고 최고 형량도 3년에 그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74년 2차 인혁당 사건은 달랐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23명은 5월 27일 내란예비 음모 및 내란 선동 혐의로 기소돼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 징역 20년과 15년 등 중형이 선고됐다.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75년 2월 대부분 감형이나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인혁당 관련자들은 제외됐다.
대법원은 75년 4월 8일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등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고, 9일 새벽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확정 판결이 있은 지 채 20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공안사범이라 해도 사형선고 이후 적어도 3~4년가량 집행을 미루는 관행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제법학자협회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명명 =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를 ‘사법살인’이라 명명하고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다. 인혁당 사건은 누가봐도 조작된 것이 뻔한데다 판결에서 사형집행까지 과정도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인권유린에 항의하는 조지 오글 목사 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 등 외국 종교인까지 추방했던 박정희 정권의 폭압 속에 이 사건은 한동안 입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국가권력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사건이었다고 발표했다.
인혁당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는 증거가 될만한 강령 규약 문서 등은 어디에도 없었고, 없는 실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문과 조작을 드러내는 자료와 증언만이 있을 뿐이었다.
인혁당 관련자인 이재성씨를 집에 숨겨준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사망한 장석구씨를 조사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당시 고문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보여주었다. 중정 수사팀장이 ‘물건(사건 조작)을 만들라’고 지시하면 조사관들이 피의자들을 팔걸이 의자에 묶어 전기고문을 한 뒤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쓰도록 했다는 것. 아예 피의자들이 부인한 사실을 정반대로 기록하거나 누락하는 일도 있었다.
혹독한 고문의 진상은 이들의 상고이유서에도 잘 나와 있다. 도예종씨는 상고 이유서에서 “중정 조사기간 동안 고문으로 수차례 협심증을 일으켜 졸도하는 등 만신창이가 됐고, 검사에게 중정의 조사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면 다시 끌려가 고문당하며 조서를 재작성했다”고 주장했고, 하재완씨도 “혹독한 고문으로 창자가 다 빠져버리고 폐농양증이 생겨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가운데 취조 받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유신정권은 사형수들의 유언마저 조작하고 사형을 당한 후 가족에게 인계된 시신을 탈취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드러누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문정현 신부를 버스가 짓누르고 지나가는 일까지 있었다. 시신에 남은 고문 흔적을 없애기 위한 의도가 아니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혁신계 ‘죽일 작정’으로 조작 = 유신정권이 고문과 인권을 유린하며 인혁당 사건을 조작한 이유는 당시 유신정권은 안팎의 위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73년말부터 ‘미국이 박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더라’는 유언비어가 광범위하게 유포됐고, 재야의 유신헌법철폐와 개헌서명운동이 확산됐다. 또 74년에 접어들면서는 대학가의 대규모 학생시위가 예상되고 3~4월 위기설까지 등장했다. 64년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잠재우기 위해 1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려 했던 것처럼 정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또다시 인혁당 조작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창일 통일연대 상임고문은 유신정권이 처음부터 혁신계 인사들을 ‘죽일작정’을 하고 사건을 조작해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74년 5월 중정 사람으로부터 ‘당신은 대한민국 제거대상에서 제거됐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는 처음부터 중정이 인혁당 관련자들을 제거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유신반대에 나섰던 윤보선 전 대통령이나 지학순 주교 등 명망가나 대학생들을 제거하는 것보다 비교적 중앙무대에 덜 알려졌던 혁신계 인사들을 제거하는 게 박 정권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인혁당에 관련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왜 박 정권의 제거대상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도 더뎌지고 있다. 민주화 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에서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에 대한 판단을 몇년째 미루고 있고, 법원도 재심을 신청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재심 개시여부조차 결정하지 않고 있다.
인혁당 희생자 30주기가 됐지만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은 이제부터인 셈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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