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좋은 학생과 우수한 학생
성 한 표 (언론인)
노무현 대통령은 며칠 전 “우수한 학생을 키우는 일보다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는 데만 치중하는 일부 대학교의 욕심이 우리 공교육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 말 자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과 구별된 ‘우수한 학생’은 어떤 학생을 말하며,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입시에서 가려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대학입학 시험’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험 성적’을 학생선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문제는 어떤 시험을 통해 성적을 매겨야 우수한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고교 내신 성적이라는 것이고, 대학의 대답은 대학에서 실시하는 본고사라는 것이다. 본고사로 당락을 가리면, 고교 평준화와 사교육 억제라는 교육정책의 기조가 흔들린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고, 내신은 평가과정의 엄정한 관리를 믿을 수도 없고, 변별력도 없다는 것이 대학의 주장이다.
입시 갈등의 뿌리는 교육철학
그러나 대학입시를 둘러싼 갈등이 이 정도라면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본고사의 내용을 단순한 영어 수학 실력이 아니라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초 학력과 자질을 평가할 수 있도록 심화시키거나, 반대로 내신 평가과정을 엄정히 관리함으로써 문제의 상당부분은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갈등의 뿌리는 나라의 발전에 대학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며, 대학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교육철학에까지 이어져 있다.
이와 같은 갈등의 뿌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대 개혁론’이다. 서울대가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제대로 못 가르쳐 둔재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에서부터, 강남에서 부유한 가정과 우수한 과외선생들 덕분에 영어 수학을 잘 하게 된 학생들에게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까지 제공하여 이들이 사회의 노른자위는 다 차지하게 만들었다는 문제 제기, 그리고 아예 서울대라는 특권적 대학사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개혁론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런 갈등이 당장의 취업은 물론, 평생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꼭 일류대학으로 가야 한다는 학생 및 부모들의 비정상적인 교육열과 맞물려 대학입시 제도를 역대 어느 정권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해법을 찾아 헤매는 문제로 악화시키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부터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력과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그리고 대학 졸업생들의 눈높이와 취업가능한 일자리 사이의 불일치라는 문제가 대학정책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경제부총리로 기용했던 김진표씨를 교육부총리로 다시 불러 “청년실업 문제는 대학교육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대안을 내라”고 지시했었다. 노 대통령은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대학교육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부총리는 “산업과 연계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미래 기술 인력을 예측하여 이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대학정책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청년실업이 경기불황보다 구조적인 문제, 곧 대학 및 대학생의 수가 일자리에 비해 너무 많기 때문에 악화되고 있다는 인식은 바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학생 수를 줄이고, 학과별 정원조정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정책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구조조정을 완강한 저항을 뚫고 어떻게 밀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지식인·신지식인 모두 필요
그러나 이것이 대학을 직업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정책으로 굳어진다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대학정책은 청년실업을 구조적으로 해소하는 목표와 함께 나라의 미래를 맡길 동량을 길러낸다는 원대한 목표까지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어떤 학생을 ‘우수한 학생’이라고 보고 있는가 하는 점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때 유행했던 ‘신지식인’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크다. ‘지식인’이라는 말을 꼭 학자들이나, 펜대를 잡는 사람들이 독점해야 하느냐, 누구든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그 역시 지식인이라고 부르자는 발상은 참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라를 경영하는 데는 이른바 ‘신지식인’도 필요하지만 학문을 사랑하고, 학문 연구에 장기를 가진 사람들도 필요하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도 필요하지만, 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등 원리를 파고드는 과학자도 필요하다. 대학입시가 가려내는 우수한 학생은 아무래도 학문적 기질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성 한 표 (언론인)
노무현 대통령은 며칠 전 “우수한 학생을 키우는 일보다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는 데만 치중하는 일부 대학교의 욕심이 우리 공교육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 말 자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과 구별된 ‘우수한 학생’은 어떤 학생을 말하며,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입시에서 가려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대학입학 시험’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험 성적’을 학생선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문제는 어떤 시험을 통해 성적을 매겨야 우수한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고교 내신 성적이라는 것이고, 대학의 대답은 대학에서 실시하는 본고사라는 것이다. 본고사로 당락을 가리면, 고교 평준화와 사교육 억제라는 교육정책의 기조가 흔들린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고, 내신은 평가과정의 엄정한 관리를 믿을 수도 없고, 변별력도 없다는 것이 대학의 주장이다.
입시 갈등의 뿌리는 교육철학
그러나 대학입시를 둘러싼 갈등이 이 정도라면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본고사의 내용을 단순한 영어 수학 실력이 아니라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초 학력과 자질을 평가할 수 있도록 심화시키거나, 반대로 내신 평가과정을 엄정히 관리함으로써 문제의 상당부분은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갈등의 뿌리는 나라의 발전에 대학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며, 대학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교육철학에까지 이어져 있다.
이와 같은 갈등의 뿌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대 개혁론’이다. 서울대가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제대로 못 가르쳐 둔재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에서부터, 강남에서 부유한 가정과 우수한 과외선생들 덕분에 영어 수학을 잘 하게 된 학생들에게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까지 제공하여 이들이 사회의 노른자위는 다 차지하게 만들었다는 문제 제기, 그리고 아예 서울대라는 특권적 대학사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개혁론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런 갈등이 당장의 취업은 물론, 평생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꼭 일류대학으로 가야 한다는 학생 및 부모들의 비정상적인 교육열과 맞물려 대학입시 제도를 역대 어느 정권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해법을 찾아 헤매는 문제로 악화시키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부터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력과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그리고 대학 졸업생들의 눈높이와 취업가능한 일자리 사이의 불일치라는 문제가 대학정책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경제부총리로 기용했던 김진표씨를 교육부총리로 다시 불러 “청년실업 문제는 대학교육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대안을 내라”고 지시했었다. 노 대통령은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대학교육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부총리는 “산업과 연계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미래 기술 인력을 예측하여 이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대학정책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청년실업이 경기불황보다 구조적인 문제, 곧 대학 및 대학생의 수가 일자리에 비해 너무 많기 때문에 악화되고 있다는 인식은 바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학생 수를 줄이고, 학과별 정원조정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정책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구조조정을 완강한 저항을 뚫고 어떻게 밀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지식인·신지식인 모두 필요
그러나 이것이 대학을 직업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정책으로 굳어진다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대학정책은 청년실업을 구조적으로 해소하는 목표와 함께 나라의 미래를 맡길 동량을 길러낸다는 원대한 목표까지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어떤 학생을 ‘우수한 학생’이라고 보고 있는가 하는 점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때 유행했던 ‘신지식인’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크다. ‘지식인’이라는 말을 꼭 학자들이나, 펜대를 잡는 사람들이 독점해야 하느냐, 누구든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그 역시 지식인이라고 부르자는 발상은 참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라를 경영하는 데는 이른바 ‘신지식인’도 필요하지만 학문을 사랑하고, 학문 연구에 장기를 가진 사람들도 필요하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도 필요하지만, 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등 원리를 파고드는 과학자도 필요하다. 대학입시가 가려내는 우수한 학생은 아무래도 학문적 기질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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