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관련 NGO(국제비정부기구)를 운영하고 싶어 국내 대학 갑니다.”
조기유학, 학부과정 외국대학 진학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해외진학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한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이 국내 대학 진학을 선언해 주변의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김지은(대원외고 3학년)양.
김양의 이름 앞에는 몇 가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유명 외국어고 재학 중, 토플 만점, 텝스 965점(990점 만점), 미국거주 10년 등이 김양의 경력이다. 이 정도 경력이면 일반적으로 대부분 학생이나 부모는 외국대학 진학을 희망한다. 그러나 김양은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김양의 결정이 눈길을 끄는 것은 경력 때문이 아니라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한 이유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양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을 위한 NGO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라며 “NGO 운영을 잘하기 위해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최종의 목표는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대학원은 외국으로 나가 로스쿨에 다닐 계획”이라면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권리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양이 이처럼 NGO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한 장애인복지단체와의 인연 때문이다.
김양은 어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던 서울 관악구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고1학년 2학기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양의 봉사활동은 경력만큼이나 특이하다. 김양은 매일 다양한 자료를 영문으로 컴퓨터에 입력해 복지관에 전자우편(이메일)으로 보낸다. 김양이 입력한 영문 자료는 일정한 과정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활용하게 된다. 거의 매일 조금씩 해온 봉사활동 시간도 쌓여 총 350여시간에 달한다.
이에 대해 김양은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덕분에 익힌 영문타자 실력을 나보다 어려운 여건의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고 한다.
김양은 박사과정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0살 때까지 9년을 생활했다. 그러나 미국생활 중에도 김양 가족은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원칙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킨 덕분에 귀국 후 국내 적응이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한다.
NGO 활동가로 세계무대를 누비는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김양의 모습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조기유학, 학부과정 외국대학 진학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해외진학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한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이 국내 대학 진학을 선언해 주변의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김지은(대원외고 3학년)양.
김양의 이름 앞에는 몇 가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유명 외국어고 재학 중, 토플 만점, 텝스 965점(990점 만점), 미국거주 10년 등이 김양의 경력이다. 이 정도 경력이면 일반적으로 대부분 학생이나 부모는 외국대학 진학을 희망한다. 그러나 김양은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김양의 결정이 눈길을 끄는 것은 경력 때문이 아니라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한 이유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양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을 위한 NGO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라며 “NGO 운영을 잘하기 위해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최종의 목표는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대학원은 외국으로 나가 로스쿨에 다닐 계획”이라면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권리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양이 이처럼 NGO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한 장애인복지단체와의 인연 때문이다.
김양은 어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던 서울 관악구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고1학년 2학기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양의 봉사활동은 경력만큼이나 특이하다. 김양은 매일 다양한 자료를 영문으로 컴퓨터에 입력해 복지관에 전자우편(이메일)으로 보낸다. 김양이 입력한 영문 자료는 일정한 과정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활용하게 된다. 거의 매일 조금씩 해온 봉사활동 시간도 쌓여 총 350여시간에 달한다.
이에 대해 김양은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덕분에 익힌 영문타자 실력을 나보다 어려운 여건의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고 한다.
김양은 박사과정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0살 때까지 9년을 생활했다. 그러나 미국생활 중에도 김양 가족은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원칙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킨 덕분에 귀국 후 국내 적응이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한다.
NGO 활동가로 세계무대를 누비는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김양의 모습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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